고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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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고약해
  • 입력 : 2022. 09.21(수) 16:46
  • 홍성장 기자

조선시대 '고약해(高若海)'라는 인물이 있었다. 별명이 아니다. 실제 인물이며 두루 벼슬을 거친 문신이다. 그는 태조부터 세종까지 4명의 임금을 섬긴 충신이다. 도 관찰사와 사헌부 대사헌 등을 거친 명재상이기도 하다. 고약해는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하지 못할 때,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건 '아닌 건 아니다'라는 직언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고약해가 이름값을 제대로 발휘한 시기는 세종 때다. 그가 호조 참판이었던 세종 22년(1440년) 3월의 일이다. '수령육기법(지방 수령의 임기를 6년으로 정하는 법)'을 놓고 어전회의에서 세종과 고약해가 논쟁을 벌였다. 세종은 임기를 6년으로 늘리려 했지만 고약해는 반대했다. 고약해는 '수령 임기가 3년에서 6년으로 늘어남으로써 수령으로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많다'는 이유 등을 들며 임금이 뜻을 굽히기를 청했다. 하지만 세종도 굽히지 않으면서 논쟁이 격렬해졌다. 급기야 고약해는 세종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끼어드는 등 모질게 대들었다. 고약해는 지엄한 임금에게 '실망했습니다'라고 말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불충'까지 저질렀다. 격노한 세종은 그를 파직했다. 하지만 세종은 1년 뒤 고약해를 다시 불러 중요한 관직에 앉혔다. 고약해의 파면으로 자칫 신하들이 직언이나 간언을 못 하게 될까 하는 우려에서다. 다른 신하들도 마음껏 말문을 열라는 세종의 큰 뜻이기도 했다.

문득 고약해와 세종을 떠올리는 요즘이다. 고약해 같은 이는 없을까. 윗사람의 잘못을 과감하게 지적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그저 윗사람 비위만 맞추는 그런 이들만 득실댄다. 요즘 특히 그렇다. '영빈관 신축 논란' 이야기다. 말단 행정관에게서 시작해 비서관, 수석비서관, 비서실장 그리고 대통령까지 대통령실의 의사결정에는 일련의 과정이 있을 터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영빈관 신축을 두고 누구도 대통령에게 '아니 되옵니다' '이거 큰일 납니다'라는 쓴소리를 못 한 꼴이 됐다. 그게 아니라면 '묵살'당했거나. 여하튼 씁쓸하다. 자신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영빈관 신축 예산이 안건으로 통과됐음에도 언론 보도를 통해 관련 사실을 알았다는 국무총리, 참 한심한 대한민국이다.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했던 고약해와 그를 품은 세종대왕의 통솔력이 그립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