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유토피아'로 떠난 과학기술, 도착한 곳이 '디스토피아'라면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이버펑크
사이버펑크> '유토피아'로 떠난 과학기술, 도착한 곳이 '디스토피아'라면
  • 입력 : 2022. 11.03(목) 18:18
  • 도선인 기자

서여운 편집에디터.

한국 SF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젊은 소설가 김초엽 작가는 아득히 떨어진 머나먼 미래와 우주에서 정상성의 개념을 묻고 있다. 과학기술이 더 발전한 그곳에서는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 외계인과 교류할 수 있고, 태어나기 전부터 인간의 외모 성격, 특기를 디자인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의 생전 기억을 데이터로 변환해 영원히 만날 수도 있으며 힘들고 위험한 일은 로봇이 대신한다.

상상만으로도 신비한 미래의 공간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마음만 먹으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있는 그곳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그곳에도 이들이 있을까? 더 발전된 과학기술은 이들에게 차별, 소외, 억압과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해줬을까?

어쩌면 이 물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디스토피아로 규정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그 방향성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정상으로 규정된 것들의 가치를 찾아내고,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다고 규정한 존재들과 공존의 필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아득히 먼 미래에서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해온다.

김초엽 작가. 뉴시스

김초엽 작가의 첫 단편소설 모음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방향성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찬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돼있다. 책에서 네 번째로 수록된 단편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가족이 있는 제3행성 슬렌포니아에 가기 위해 100년 넘게 우주정류장에서 혼자 우주선을 기다리는 170세 안나의 이야기다. 무력할 만큼 긴 100년이라는 기다림은 경제적 효율에 의해 잊힌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과 같다.

'기억'은 결과물이 없는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안나가 인체를 냉동 수면하는 딥프리징 기술로 생명을 연장하면서, 결국 스렌포니아에 도달한다 해도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만 년이 걸릴지 모르는 스렌포니아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슬프고도 아득한 안나의 기다림은 결코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안나에게서 끊임없이 목적지를 명징하는 삶의 방향성을 엿본다. 안나의 방향성에서 망각의 힘을 거스르고 지켜낸 '진실'의 소중함과 의미를 깨닫는다.

이 책의 첫 번째 순서로 등장하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비교적 쉽게 '잊힘'의 대상이 되는 비정상성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성년을 맞이하기까지 몇 년 남지 않은 '데이지'는 지구 밖 마을에서 산다. 가족의 형태 없이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그곳의 인간들은 발전된 과학기술 덕에 절망, 슬픔, 고통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행복만 가득한 지구 밖 마을에서 데이지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맞닥트린다.

이곳의 아이들은 성년이 되는 해에 지구로 순례를 떠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망각의 차를 마시는 아이들은 되돌아오는 성년 중 일부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일기를 쓰는 데이지만이 유일하게 이 사실을 알아채고 지구 밖 마을의 유래를 쫓는다.

데이지가 사는 시대보다 과거인 2035년, '릴리'라는 성공한 과학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릴리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유전병을 치료하지 못했고, 얼굴에 흉측한 흉터를 가지고 있다. 혐오스러운 시선을 견디는 릴리는 이 사회의 소수자였고, 아름답고 완전한 몸을 가진 인간들만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인간배아 디자인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빈부격차에 따라 개조인과 비개조인의 위계서열이 심해지자, 릴리는 결함이 있는 아이들만 구성돼 차별과 배제가 없는 지구 밖 마을을 건설했다.

차별과 배제가 없는 지구 밖 마을이 유토피아라면, 성년의식을 치르기 위해 매년 지구로 떠난 아이 중 일부는 항상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데이지의 물음에 대한 해답은 장애와 일반, 사랑과 배제, 완벽과 고통을 분리하지 않는 삶으로 귀결된다. 지구 밖 마을의 유래를 찾는 과정에서 데이지는 자신이 살던 곳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지구에서 공존의 삶을 추구한다. 릴리가 폐기해야 할 것은 소수자들의 결함이나 질병이 아니라, 정상성을 규정하는 개념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머나먼 미래, 김초엽 작가는 그곳에서 현재를 공유하는 우리들의 삶을 비춰내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실현하게 하는 과학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과정이다. 고통과 불행, 이별의 연속일지라고 누군가를 분리하거나 배제하려 하지 않는 삶의 방향성을 유지하는 곳. 김초엽 작가가 가상의 공간을 창조하면서까지 말하고 싶었던 유토피아에서 발전된 과학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공생을 위해 평화로운 마을 떠나 차별과 소외가 있는 곳을 찾아간 소설 속 인물 데이지는 말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