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파 맨몸으로… 길고도 막막한 노숙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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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겨울 한파 맨몸으로… 길고도 막막한 노숙인의 밤
광주다시서기센터 동계 보호활동 ||영하 날씨에 박스·담요 하나 의지 ||지원센터 입소 권유 대부분 거절 ||지하철 역사·천변 등 노숙인 밀집 ||전문가 “경계심 높아 접근법 고민”
  • 입력 : 2022. 12.07(수) 17:12
  • 강주비 수습기자
늦은 저녁 광주 서구 한 역사 지하보도에서 밤을 보내는 한 노숙인에게 광주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사회복지사가 음식을 건네고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영하 18도에요 지금. 너무 추워서 5시부터 내려와 있었어."

지난 1일 오후 10시 광주 서구 농성역. 인근에서 노숙 생활을 하는 60대 박모씨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 계단 옆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이날 광주의 최저 기온은 -2.5도였지만 박씨에게는 -18도만큼이나 매섭게 느껴진 듯했다.

허름한 외투를 연신 추슬러봐도 차가운 냉기가 막아지지 않는지 박씨의 몸은 떨림이 멎지 않았다. 조심스레 '시설에 가지 않겠냐' 물었지만 박씨는 힘없이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된 12월을 맞아 현장보호활동을 나선 광주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센터) 관계자와 함께 지하철 역사, 천변 등 노숙인 밀집 지역을 둘러봤다.

지난 1일 늦은 저녁 광주 서구에서 한 노숙인이 벤치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이날 본 노숙인 대부분은 추위를 잊기 위해 빠르게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이들이 몸을 눕힌 곳은 버려진 노란 박스나 차갑고 딱딱한 나무 벤치 위, 높게 쌓아 올린 출처 불명의 잡동사니와 쓰레기 속이었다.

몇몇은 낡고 해진 솜이불을 구해 덮고 있었지만, 구멍이 뚫린 이불은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돼 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노숙인들에겐 간절한 물품이었다.

대부분은 어깨에 두른 얇은 담요나, 여러 겹의 헐어진 옷가지로 영하의 밤을 견뎠다. 양말을 몇 켤레씩 겹쳐 신고, 모자를 귀까지 푹 눌러 써 봐도 쉴 새 없이 불어 닥치는 칼바람에 그저 몸을 움츠리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역사 내 벤치에서 발견한 60대 노모씨도 얇은 점퍼와 모자 하나로 추위를 버티고 있었다. 찬 바람에 부르튼 그의 손에는 편의점 김밥 하나가 들려있었다. 노씨는 "이거라도 먹어야 체온이 오른다"며 딱딱하게 굳은 김밥을 물도 없이 꾸역꾸역 삼켰다.

센터 관계자가 입소를 권유하자 노씨는 2분가량의 침묵 끝에 "다음에 가면 안 될까요"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에 음식만 들려주고 나온 센터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이주영 사회복지사는 "노숙인들은 금주나 취침 시간 등 규율을 지키기 힘들다는 이유로 맹추위에도 센터 시설 이용을 거부한다. 정신질환으로 소통이 어렵거나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늦은 저녁 광주 서구 한 역사에서 발견한 노숙자에게 광주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사회복지사가 음식을 건네고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남광주시장 인근에서 만난 박모(53)씨와 홍모(74)씨도 이 같은 이유로 계속 센터 입소를 거부하고 있었다. 박씨는 몇 년 전 시설에서 생활하다 적응하지 못하고 재노숙을 택했는데, 그 기억이 좋지 않게 남은 탓인지 더욱 완강했다.

우산을 지붕 삼아 벤치에서 잠을 자던 홍씨도 센터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인기척에 "뭐야!"라며 날을 세운 홍씨는 춥지 않냐는 걱정스러운 질문에 "안 춥다"고 퉁명스럽게 답했지만, 음식을 받아 든 그의 손은 빨갛게 얼어있었다.

센터에 따르면 광주의 거리 노숙인은 대략 30명으로 추정된다. 타 시·도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아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윤종철 센터장은 "노숙인들이 처음에는 극도로 경계했지만 1년 동안 꾸준히 대화를 시도한 결과, 음식이나 물품 등은 거리낌 없이 받는 수준까지 왔다. 하지만 센터 입소는 여전히 다들 거부한다"면서 "동절기를 맞아 집중적으로 현장보호활동에 나서 노숙인들을 최대한 살피고 보호할 계획이다. 시민들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보기보다는 같은 시민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위험한 상황으로 보인다면 센터에 신고하는 등 이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함께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늦은 저녁 광주 동구 한 벤치에서 한 노숙인이 우산을 펼쳐 바람을 막은 채로 잠을 자고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강주비 수습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