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희 열사, 헌혈차량 안에서 총격당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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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희 열사, 헌혈차량 안에서 총격당해 숨졌다"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 ||당시 학생들 증언·자료 등 책 발간 ||친구 “계엄군, 차량에 난사” 증언 ||기존 헬기 사격 사망설 바로잡아야
  • 입력 : 2022. 12.05(월) 17:15
  • 양가람 기자
광주시교육청이 지난 2020년 발간한 책자 '오월, 청소년을 기억하다'에는 박금희 열사가 계엄군의 헬기 사격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광주시교육청 제공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가 내년에 발간하는 증언록 '오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에 박금희 열사가 헌혈차량 안에서 총기 사격을 당해 숨졌다는 목격자 증언이 담겼다. 광주시교육청이 펴낸 5·18 교재에는 박 열사가 헬기 사격에 의해 숨진 것으로 기술돼, 관련 자료들의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4일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 등에 따르면, 1980년 5·18 당시 사망하거나 구속·부상당한 광주·전남 초·중·고등학생 총 268명에 대한 증언록이 순차적으로 제작된다. 먼저 고(故) 박금희 열사 등 학생 30여명에 대한 증언이 담긴 '오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이 내년 2월 발간돼 각급 학교로 배포된다.

이번 증언록은 5·18로 인해 피해입은 광주·전남지역 학생들에 대한 증언, 자료들이 43년 만에 총망라돼 발간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학생 신분이라 사인이나 행적이 불분명한 점이 많았는데, 주변인 등의 입을 빌려 새로운 진실과 그날 이후 삶의 행적들이 드러나게 됐다.

무엇보다 박금희 열사가 헌혈차를 타고 가다 계엄군의 총기 난사로 중상을 입고 숨진 사실이 친구의 목격담으로 실려,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현 전남여상) 3학년이었던 박 열사는 1980년 5월21일 친구 문순애와 함께 헌혈차를 타고 기독병원에 도착해 헌혈을 했다. 당시 혈액 보관하는 병이 다 차서 문순애는 헌혈하지 못했고, 두 소녀는 타고 왔던 헌혈차에 다시 올랐다. 얼마 뒤 계엄군이 탄 군용트럭 예닐곱 대가 헌혈차를 향해 계속 총을 쐈다.

증언자로 나선 문순애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지원동 쪽이 (시내버스) 1번 종점이었어요. 거기서 유턴을 하는데 그때 마침 군인 트럭 있잖아요. 위에 다 열려있고 군인들이 이렇게 옆으로 2열로 쭉 앉아 있는 그런 차가 지나갔어요. 그런데 누가 "엎드려!" 이러는 거에요. 그러면서 막 콩 볶는 소리가 다다다다 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저도 모르게 의자 밑으로 들어갔던 거 같아요. … 제가 일어나서 이제 "금희야, 내려가자" 이러고 봤어요. 금희가 등에, 허리 척추 있는데 정중앙 허리쯤에 총을 맞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차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내려가야 된다고 그래서 금희를 잡고 내려갔어요. 그런데 피가 나올 법한데 피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피는 나오지 않는데 거기에서 막 하얀 게 꽃처럼 피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이게 뭐지?' 싶었는데 사람들이 내장이 나오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날 총격으로 헌혈차에 타고 있던 20여 명 중 세 사람이 총상을 입었는데, 박 열사가 가장 중태였다. 시민들에 의해 다시 버스에 태워진 박 열사는 급히 기독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한 시간 만에 숨졌다.

그동안 박금희 열사의 죽음은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관련있을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고은 시인은 그의 시 '만인보 단상 3689'에서 박 열사가 양림 다리에서 헬기에 탄 계엄군의 총을 맞고 숨졌다고 표현했고, 전남여상 교정에 세워진 박금희 순의비에도 '양림 다리를 건너던 중 상공에 떠 있던 헬기에서 발사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광주시교육청이 지난 2020년 교육용 자료로 발간한 '오월, 청소년을 기억하다' 책자에도 '광주 상공을 날며 시민군의 무장해제를 종용하던 헬기에서 금희를 향해 총알이 날아들었다'고 설명돼 있다.

이번 증언록을 통해 박 열사가 헌혈차 안에서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격에 의해 숨졌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5·18기념재단 관계자 역시 "박 열사는 헌혈 후 지원동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증언은 진실"이라고 언급해, 관련 자료들의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최치수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장은 "3년 전부터 본인 혹은 가족 등 주변인 작성을 원칙으로, 녹취와 구술을 진행해왔다.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으니 당시 상황 자료와 비교해 가면서 신뢰도를 높였다"며 "기존에 알려진 내용과 다른 사실들도 담겨 진실 규명에도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당시 학생들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지침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증언록 첫 시리즈는 △1부 별이 된 소년들(사망자) △2부 시민군이 된 소년들(구속/부상자들) △3부 동지가 된 소년들(전남 지역)로 구성됐다. 부록으로 전주 신흥고에서 진행된 5·27신흥민주화운동에 관한 증언도 실렸다.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에도 사망자, 구속·부상자 30명에 대한 증언이 각각 두번째, 세번째 시리즈 책자로 제작돼 세상에 나온다.

광주시교육청은 이번에 발간된 책자를 각급 학교로 발송하고 5·18 교재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또 관련 예산을 증액해 후속 증언록 발간 시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필요하다면 증언 당사자들을 강연자로 섭외해 학생들에게 그날의 기억을 생생히 전달하려 한다.

이정선 시교육감은 "1980년 5월을 지킨 광주 학생들의 이야기가 43년만에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늦게 빛을 보았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제라도 증언록이 나온 게 너무 소중하다"며 "이 책자가 오늘을 사는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5·18교과서가 되리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