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 할머니 인권상 취소에 "뭐가 부끄럽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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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양금덕 할머니 인권상 취소에 "뭐가 부끄럽냐"
1994년 日 근로정신대 강제동원||'女근로정신대' 사회 알리기도||외교부 "부처 간 협의 필요" 해명
  • 입력 : 2022. 12.08(목) 17:38
  • 김혜인 기자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9월 2일 광주 서구 양동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자택을 방문,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일본에 가서 죽어라 일만 하다가 돌아온 이후 내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의 오해로 고통 받아 온 세월을 바로잡으려고 30년 가까이 노력한 덕분에 최근에서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고 있을 뿐이다."

일본 정부에 맞서 사죄와 강제동원 피해배상을 요구해 온 양금덕 할머니가 2022 대한민국 인권상에 추천됐지만 외교부의 개입으로 수상이 최종 보류됐다.

8일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상훈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라서 협의가 이뤄지고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양 할머니는 "도대체 뭐가 부끄럽냐"며 강하게 질타했다.

●일본에서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

양 할머니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4년 나주공립보통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학교에서 "일본에 가서 일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중학교에도 진학시켜 준다"며 10명을 뽑았고 이 중 학교생활 내내 반장을 도맡던 양 할머니 또한 있었다. 함께 떠난 친구들과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는 비행기 공장(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배치돼, 종일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공부는커녕 열악한 환경에서 죽도록 일했지만 임금 한 푼 없었다.

"배식을 기다리던 나는 사범학교 학생들이 버린 음식물 통에 손이 갔고, 누가 볼까 봐 얼른 옷자락에 음식을 숨겼다. 그런데 그걸 발견한 일본인이 다가와 음식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하고는 발로 짓이겨 버렸다. 그러면서 '더러운 조센징'이라고 욕을 했다."

●인권 회복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990년대부터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을 상대로 본격적인 인권 회복 투쟁을 시작했다. 양 할머니도 용기를 내 1992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에 문을 두드렸고, 그 해 8월 '광주천인소송' 을 시작으로 '관부재판소송', 1999년 일본 정부 및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세 번째 소송까지 제기했으나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 기각을 끝으로 모두 패소했다.

그러던 중 2009년 미쓰비시가 광주시청 맞은편에 자동차 전시장을 열어 차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한 양 할머니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이렇게 뻔뻔하게 장사를 하려고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며 연이은 패소로 포기하려고 했던 마음에 다시 불이 붙었다.

할머니는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하며 미쓰비시 전시장 철수를 위한 1인 시위를 열어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렸다. 그런데 이후 일본 정부가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한화 약 1000원)을 지급했다. 양 할머니는 "75년 전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일을 부려먹었으면서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고 분노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독립투사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며 '양관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대법원 승소… 세상이 변하기까지

위안부 피해자 지원법은 1993년도에 제정됐지만 당시 여자근로정신대는 포함되지 않았다. 양 할머니의 숱한 노력 끝에 여자근로정신대의 실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2012년 광주시는 전국 최초로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 사례가 전국으로 확산돼 현재 전국 7개 지자체에서 여성 노무동원 피해자 지원 조례를 만들어 피해자 보호에 나서는 등 많은 사회적 변화를 일으켰다.

양 할머니는 2012년 변호사들과 시민단체 지원에 힘입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패소만이 가득했던 지난날의 곤욕을 견디며 소송 6년 1개월 만인 2018년 11월29일 마침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일본을 상대로 첫 소송에 나선 지 26년 만의 역사적 결실이었다. 여자근로정신대 사건으로도 최초였다.

대법원 배상 판결 3년이 넘었지만 미쓰비시는 판결 이행은커녕 사죄 한마디 없는 상황에서 양 할머니는 "하루빨리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이뤄지길 바란다. 나의 간절한 마지막 소원이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