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 평야를 달리는 말들. |
'나폴레옹'의 저자인 앤드류 로버츠가 '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에 대해 남긴 추천평이다.
책은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군주인 '칭기스 칸'을 둘러싼 편견을 벗겨내고 그의 영웅적 면모와 사상을 복원해냈다.
칭기스 칸은 몽골 스텝 오지의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적 부족에게서 추방돼 죽을 운명에 처한적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100만 명에 달하는 몽골의 유목민 부족을 지배하게 됐다. 그가 그 자리에 올랐을 때 나이는 44세였다.
몽골 제국의 영광은 그가 살아있었을 때만 지속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죽은 뒤 수십년이 지날 때까지도 확장을 거듭했다.
그는 10만 명의 군대를 가지고 수백만의 적을 무찔렀고, 수억 명에 달하는 백성을 복속시켰다. 그는 로마 제국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모든 황제가 정복했던 것보다 더 많은 땅과 백성을 정복했다.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칭기스 칸'을 다룬 책들은 그의 정복자ㆍ전략가로서의 면모를 주로 다루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수성가한 점을 부각해 자기계발서의 소재로 삼았다. 그의 무자비함이나 우수한 전략ㆍ전술만으로 거대한 영토를 유지했다는 사실까지 설명하기는 부족한 점이 많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건 필수지만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선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칭기즈 칸은 말했다. 전사는 반드시 널리 지혜를 찾고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언변이 유창해야 하며, 새로운 국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11장 운명의 엄지손가락, 본문 293p)
책에서 언급했 듯 실제로 칭기스 칸이 평생 동안 가장 고심한 문제는 많은 부족, 도시, 국가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정부가 지배하는 단합된 사회 안에서 '평화롭게' 살게 하는 일이었다.
책은 이런 점에 주목했다. 칭기스 칸은 그의 목표를 위해 많은 것을 연구했다. 그는 과학과 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인재 선발ㆍ활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투를 담당하는 분야에서는 몽골 기병이 주력을 이뤘으나 재무나 조세 분야에는 무슬림들을 발탁했고 기술과 의학 분야에는 중국인들을 폭넓게 임용했다. 특히 몽골 조정에 종사한 중국인으로 '야율초재'와 '이지상'이 유명하다. 이런 인물들은 중국의 문물을 몽골에 도입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점점 더 문명화한 세계 제국으로 나가는 데 기여했다. 또 칭키스 칸은 제국 내에서 물자가 잘 교류되도록 무역로를 확보하는 데도 힘썼다.
저자는 이처럼 편견으로 잘못 인식됐던 칭기스 칸의 통치자와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설명했다. 당시는 다양한 종교가 세계 각국의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칭기스 칸에게 있어 자신의 제국 안의 수많은 종교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책에서도 이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칭기스 칸은 종교적 열기와 갈등이 아주 치열하던 시기에 살았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로 갈등을 겪으면서 고민했다. 신앙의 자유와 광신자들의 행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가, 서로 자신만이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고 주장하며 경쟁하는 종교들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책은 종교적 근원을 추적하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족에서 추방된 그의 가족은 부르칸 칼둔 산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데 이때부터 칭기스 칸은 산의 기운이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점차 몽골 부족을 통합하고 몽골국의 최고 통치자로 등극하면서 그는 자신의 성공이 결국 하늘의 뜻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다. 이 신념은 더욱 커져 세상 밖으로 나가 올바른 종교의 길을 가지 않는 모든 나라를 정복해 하늘의 뜻을 알려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한다.
이 신념은 그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사람을 평가할 대 말보다는 행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내는 밑바탕은 종교적인 가르침이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사상은 나의 종교가 중요하면 너의 종교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으로 확대됐고, 제국 형성 과정에서 종교적 관용을 도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러한 그의 사상적ㆍ종우적 관용 정책은 현대 세계에 매우 넓고 깊은 영향을 줬다. 유럽은 계몽주의 시대에 그 정신이 점차 발현됐고,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는 미국 헌법 수정 1조 내용의 일부를 통해 알 수 있다. "의회는 종교의 수립과 관련된 법률이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 종교와 사상의 극단주의로 혼란을 겪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칭기스 칸의 열린 사상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세계 각국의 문헌을 찾아 읽고 비교하며 몽골에서 눈과 발로 직접 고증한 역사적 사실들과 저자만의 분석ㆍ평가를 풍성하게 담았다. 칭기스 칸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소개했다. 이 책은 칭기스 칸의 생애와 사상을 집요하게 탐구한 저자의 오랜 여정이며 가장 방대하면서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칭기스 칸의 일대기를 담았다.
오민지 기자 mj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