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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수레가 요란하고, 속에 든 것 없는 사람이 거드름을 부린다. 아는 것 많은 사람은 결코 남 앞에서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속이 꽉 찬 사람은 부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어디서나 빛이 나는 법이다. 지역도 매한가지다. 인지상정이다. 장흥 만수마을은 속이 꽉 찬 마을이다.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알려진 마을이 아니다. 70년 가까이 안중근 의사를 모시는 제사를 지내면서 결코 요란을 떨지 않았다. 알아달라고 티를 내지도 않았다. 내 식구 밥그릇도 챙기기 버거운 시절부터 지금껏 말 한마디 없이 해왔다. 소리?소문 없이 우...
2023.03.16 17:26말이 많은 세상이다. 내뱉는 말도 거칠고 격하다. 행동은 따르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지적해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요즘 정치인과 일부 지식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매천 황현(1855∼1910)이 떠오르는 이유다. 황현은 매사에 진지하고 엄격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풍자한 문장가로, 시대를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록한 역사가로 살았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의 선비로 살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을 졌다.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선비의 자존심을 지키며 목숨을 ...
2023.03.02 15:12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의 흔적을 찾아간다.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지동마을이다. 지동마을은 만지산과 조봉산, 안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10여 가구 30여 명이 살고 있는 산골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마을 주변에 지동제 등 큰 저수지가 있어 물 걱정도 없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 앞에 큰 연못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자로 연못 지(池)를 써서 ‘지동(池洞)’이다. “괸돌바위 앞에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연못에서 물놀이를 하고, 괸돌바위에 앉아 낚시질도 즐겼겠죠.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고 ‘못골’로...
2023.02.16 11:17학창시절 방학 때면, 가장 큰 숙제가 일기쓰기였다. 일기(日記)는 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을 날마다 적어야 한다. 하지만 방학숙제였던 일기는 개학을 앞두고 한꺼번에 쓰기 일쑤였다.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억나지 않는 지난날의 날씨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심지어 한 달 전의 날씨도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내용도 문제였다. 날마다 자고 일어나서, 먹고, 놀고, 다시 자는 거 외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재밌는 하루였다’ ‘어제보다 더 재밌는 하루였다’는 말이 되풀이됐다. 선생님의 검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2023.02.02 13:27무등산은 남도사람들의 정신적인 지표다. 등급이 없는 무등(無等)은 민주주의 정신에 비유된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분연히 일어섰던 호남의병들의 흔적도 곳곳에 배어 있다. 무등산이 품은 입석대와 서석대, 규봉은 바위 예술품이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관이 수려하고,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역사문화 유적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2013년에 국립공원, 2014년엔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2018년 4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 무등산의 허리춤을 따라가는 둘레길이 ‘무돌길’이다. 무등산의 옛...
2023.01.19 17:16온정과 나눔, 배려가 필요한 겨울에 더욱 빛나는 마을이 있다. 우리에게 가진 자의 도리를 일깨우는 표상이 된 곳이다. 옛집 운조루(雲鳥樓)가 있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마을이다. 운조루의 안채를 다 뜯어내고 다시 짓는 공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연말연시에 꼭 가봐야 할 곳이다. “그동안 조금씩 기운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대로 뒀다가는 붕괴 위험까지 있다고 해서, 해체하고 다시 짓고 있습니다. 기존의 건축재료도 최대한 다시 써서, 옛 모습을 살리기로 했어요. 복원 공사는 7∼8월까지 끝낸다고 합니다.” 곽영숙 씨의 말이다...
2022.12.29 16:0113번 국도를 타고 '땅끝' 해남으로 가는 길,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대형 무궁화 조형물도 보인다.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무궁화로 꽃천지를 이뤘던 곳이다. 도로변에 '덕촌 양득중의 실사구시 마을'과 함께 '지강 양한묵 생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해남 영신마을이다. 양득중과 양한묵은 의로운 길을 걸었다. 200여 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양득중은 실사구시를, 양한묵은 인내천을 주창했다. 성리학을 이념으로 한 사회에 반기를 든 인물이었다. 덕촌 양득중(1665∼1742)은 조선 중후기에 실학을 불러들이고, 정치의 한가운데로 ...
편집에디터2022.12.15 15:28왕버들나무가 있다. 수령 400년은 거뜬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른 서너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듯한, 나무의 우람한 기둥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눈과 비바람은 얼마나 맞았고, 햇볕은 얼마나 받았을지, 천둥소리와 번개는 또 얼마나 듣고 맞았을지…. 세월이 빚어낸 주름이 큰 물결처럼 나무에 새겨져 있다. 풍수지리로 볼 때 비보림(裨補林)이다. 지형의 약점을 보완했다. 자연유산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충효마을의 왕버들은 본디 다섯 그루였다고 전해진다. 소나무와 매실나무도 한 그루씩 있었단다. 1송 1매 5류로, 마...
편집에디터2022.12.01 17:14상구마을의 한낮 풍경. 상구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이돈삼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의 빨강 열매가 유난히 빛난다. 먼나무, 이나무, 호랑가시 등 감탕나무에 속하는 열매들이다. 울타리로 심어놓은 남천도 있다. 자연스레 '사랑의 열매'가 떠오른다. 호랑가시나무를 찾아간다. 목적지는 나주시 공산면 상구마을이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는 별나게 생겼다. 한쪽은 열매가 무성하게 달리는데, 다른 쪽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두 얼굴의 나무다. 올해는 유난히 열매가 더디 달리고 있다. "햇빛이 많이 비치고 안 비치고 차이도 아니고, 흙이 다른 것...
편집에디터2022.11.17 17:20공북리 2구 효대마을 풍경. 노거수와 어우러져 멋스럽다. 이돈삼 가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나뭇잎은 울긋불긋 단풍 들게 하고, 국화는 형형색색으로 꽃을 피웠다. 산과 들이 온통 가을빛으로 가득하다. 차를 타고 강변을 드라이브하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산자락의 밭에서 감을 따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감나무에 감도 주렁주렁 걸렸다. 가지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정겹다. 빨갛게 물드는 감잎도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감이 많이 달렸습니다. 때깔 좋고, 튼실해 보이는데요." "예, 올해 풍년입니다. 맛도 좋아요. 하나 드셔 보셔요. 약 안 했으니, 그냥 드셔도 돼요." 감 따던 농군이 길손의 말을 받아준다. 염치 생각하지 않고, 감 하나를 덥석 베어 물었다. 입안으로 만추가 전해진다. 맛있고, 달다. 감이 '종합비타민제'라는 말을 실감한다. 문득, ...
편집에디터2022.11.03 17:08도로변에서 본 쌍봉마을 풍경. 벼가 누렇게 익으면서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이돈삼 산이 높고 골이 깊다. 육봉, 대산 등 여러 산봉우리가 첩첩으로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맑은 물이 흐른다. 풍광이 아름답다. 한눈에 봐도 명당이다. 사람이 살기에도 좋아 보인다. 역사와 전통도 묻어난다. 경험칙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두 봉우리가 있다고, 마을을 둘러싼 산들이 쌍쌍을 이룬다고 '쌍봉(雙峰)'으로 이름 붙었다. 인근에 있는 절집 쌍봉사의 이름을 따왔다는 얘기도 있다. 쌍봉사는 철감선사 도윤(798∼868)이 창건했다. 마을의 역사가 쌍봉사와 엮인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도 쌍봉사가 세워지면서다.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사는 마을로 바뀌었다. 김해김씨, 제주양씨, 하동정씨가 연달아 들어오면서 마을이 달라졌다. 마을 입구에 김해김씨 충신각이 서 있다...
편집에디터2022.10.20 16:02경렬사. 정지 장군을 비롯 전상의, 정충신 등 8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돈삼 또 사흘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연휴는 한글날 덕분이다.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마을'을 찾아간다. 나주 금안마을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 세종의 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보급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보한재 신숙주(1417∼1475)다. 신숙주의 태 자리가 금안마을이다. 금안마을을 '한글마을'로 부르는 이유다. 금안마을은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에 속한다. 신숙주는 1417년 금안마을에 있는 외갓집에서 태어나 7년 동안 살았다. 마을 한가운데에 신숙주의 생가 터가 있다. 집은 혼자 살던 할머니가 작고한 뒤 수년째 비어 있다. 처마엔 거미줄이 걸리고,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다. 나주시에서 생가 복원 방침을 밝힌 지 오래지만, 진척이 안 되고 있다. 신숙주에 대한 평가...
편집에디터2022.10.06 16:10강항 동상. 내산서원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 성회를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자는 것이오,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이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 우리 광주시민 아니, 전라남도 도민 아니, 우리나라 대한민국 모든 민족이 온누리에 횃불을 밝히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1980년 5월 16일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민족민주화성회 때, 박관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의 연설이다. 말 그대로 열변을 토한 사자후였다. 광주시민의 심금을 울린 그는 이 집회를 이끌면서 '광주의 아들'로 거듭났다. 박관현동상. 그의 태 자리에서 가까운 불갑테마공원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박관현(1953∼1982)은 영광군 불갑면 쌍...
편집에디터2022.09.22 16:33법화마을 표지석.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장성에선 인물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벌교에 가면 주먹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말이다.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다가 넓은 여수는 고기잡이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다. 장성은 학덕 높은 하서 김인후와 고봉 기대승, 노사 기정진의 영향이 크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벌교는 주먹과 무슨 상관이 있지? '벌교 주먹'에는 왠지 좋지 않은 이미지가 앞선다. 벌교에 폭력을 쓰며 행패를 부리는 깡패가 많았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말이나 행동이 거친 왈패가 많았을까? 궁금증이 에서 풀린다. 일제강점기 의병들의 투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벌교주민(한만호, 손공현)의 구술이었다. '장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께. 일본 헌병들이 조선사람 장사...
편집에디터2022.09.01 16:29탑동마을 전경. 영랑생가 뒤편 세계모란공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돈삼 이 새끼, 저 새끼, 내부총질 등 비속어가 일상으로 들려온다. 정제되지 않은 저급한 언어들이 정치권에서 난무한다. 말의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옛말에 '벼슬이 높은 1품은 아홉 번 생각한 다음 한마디 말을 하고, 9품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 이상의 말을 뱉어내고 행동하는 것만 같다. 우리말을 잘 다듬어 쓴 '언어의 정원사'를 만나러 간다. 언어의 정원사는 내면의 서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영랑 김윤식(1903∼1950)을 가리킨다. 목적지는 '남도답사 일번지' 전라남도 강진이다. 강진은 김종률․정권수․박미희 트리오가 부른 '영랑과 강진'의 노랫말처럼, 영랑의 글이 음악이 되어 흐르는 곳이다. 감성길로 단장된 탑동마을의 골목길...
편집에디터2022.08.18 1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