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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烟霞)가 난몰(難沒)하는 옛 인연의 터에/ 중 살림할 만큼 몇 칸 집을 지었네/못을 파서 달이 비치게 하고/ 간짓대 이어 백운천(白雲泉)을 얻었으며/ 다시 좋은향과 약을 캐나니/ 때로 원기(圓機)로써 묘련(妙蓮)을 펴며 /눈 앞을 가린 꽃가지를 잘라버리니/ 좋은 산이 석양 노을에 저리도 많은 것을. 초의선사가 일지암을 짓고 지은 시다. 내 심중에 담아두었다가 가끔 꺼내 노래하는 시이기도 하다. 나 또한 무안군 삼향읍 초의의 생가터 아래, 책 몇 권 보관할 만한집을 지어 사는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지암을 아...
2023.09.21 15:53지난 4월 14일 본 지면을 통해 내가 왜 갱번에 주목했는가를 소개했다(남도인문학 342). 오늘은 갱번이라는 호명의 출처에 대해 을 인용해 살펴본다. 접두어나 활용형을 다 살필 수 없으므로 일부만 추린다. 물론 이외의 용례도 방대하다. 따옴표를 일일이 붙일 수 없으므로 전부 생략한다는 점 이해 바란다. 구례군 용방면 신지리를 갱변들, 갱변똠, 선월이라고 한다. 곡성군 현정리에는 갱변들, 갱변보가 있다. 곡성군 농소리에 갱변들, 갱변보가 있다. 곡성군 율사리에 갱변들, 갱변보가 있다. 구례군 죽마리에 진등 갱변이 있다. 모두 내륙의...
2023.09.14 12:35“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비애와 수심에 가득 찬 아리랑 한 대목, 님웨일즈가 김산의 구술을 받아 쓴 책 『아리랑』에서 몇 구절 가져왔다. 만주로 중앙아시아로 뿔뿔이 흩어져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마지막 넘었던 고개다. 일본으로 미국으로 산산이 흩어져 넘어야 했던 또 다른 문경 고개다. 떡 바구니를 인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팔다리를 떼어주고 목숨까지 바치며 넘어야 했던 스무고개다. 아리랑 노래의 ...
2023.09.07 14:35지난 1세기 수많은 장르가 쟁패를 거듭했다. 역사, 종교, 사회, 문화, 풍속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친 파란이었다. 내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열강들의 각축이라는 외부 충격이 컸다. 하나의 양식이 바뀌기까지 수 세기가 소요된 이전의 사회에 비한다면 불과 한 세기에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음악 장르라고 다를 바 없다. 간단없는 파고를 일반인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승자가 갈렸다. 오늘날 우리 음악에서 어떤 장르가 득세하는가를 보면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전통음악 쪽에서는 판소리와 산조가 국악계...
2023.08.31 14:47~간다 간다 나는 간다/에이야라 술비야/ 울릉도로 나는 간다/에이야라 술비야/ 울릉도로 향해보면/에이야라 술비야/ 고향생각 간절하네/에이야라 술비야/ 고향산천 돌아오면/에이야라 술비야/ 부모처자식 반가와라/에이야라 술비야~ 거문도 술비소리 중 한 대목이다. 놋소리, 월래소리, 가래소리, 썰소리 등을 포함하여 거문도 뱃노래라 한다. 1972년 전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남도 민요 중에서 첫 번째로 지정한 의미가 있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술비소리를 거문도 뱃노래의 하나로 설명한다. 하지만 ...
2023.08.24 12:48현재 ‘남도’라는 용어 혹은 개념은 광주와 전라남도에 한정해 사용된다. 지금의 용처로만 따지면 남도가 곧 광주와 전라남도다. 그중에서도 전라남도에 비중이 있다. 하지만 출처는 다르다. 그간 ‘남도 인문학’을 표방하고 수년간 남도의 범주나 범위에 대해 밝혀두었다. 그러함에도 오늘 다시 일러두는 까닭은 남도가 결코 광주와 전라남도에 한정되는 지리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도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온 말이고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남도’라는 이름의 출처와 고 지춘상의 기억 국어사전에서는 ‘남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
2023.08.17 15:15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야심 차게 복원했던 ‘조선통신사선’이 드디어 일판을 냈다. 대한해협을 건너 쓰시마섬에 정박한 것이다. 해방 이후 일어난 괄목할 만한 사건이다. 배 한 척 쓰시마섬에 갔다 오는 게 아니다. 전통적인 위상보다 장차 이룰 한일간의 관계를 기대한다. 해양문화재연구소 홍순재 학예관이 중심이 되어 진행한 사업이다. 강원도 심심산골에서 황장목 900여 그루를 베어다 건조하였다. 『계미수사록』(1763년 부산포에서 출발한 통신사의 사행록)이나 『통신사등록』(조선 후기 통신사 행차 기록) 등을 참고하여 최대한 당시의 실물에 가...
2023.08.10 12:53오리지널 K-팝(Pop)스타는 누구일까? 라스베가스 스토리(Library District)에 소개된 2023년 5월 4일 기사 “Sue Kim of the Kim Sisters-The Original K-Pop Stars” 얘기다. 슈킴은 그룹리더 김숙자이고 김시스터즈는 한국 최초 미국 진출 걸그룹이다. 네온뮤지엄(Neon Museum/blog)의 2023년 3월 15일자 History Month 기사에서도 60여 년 전에 미국으로 진출한 한국의 첫 그룹이라며 제목을 오리지널 K-팝(Pop) 스타라고 뽑고 있다. 우후죽순 세...
2023.08.03 14:01“우리는 봄과 여름의 축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리할 수 있다. 우리 미개한 선조들은 식물이 지닌 힘을 남성과 여성으로 인격화하고, 동종 주술 또는 모방 주술의 원리에 따라 숲의 신들의 결혼은 오월절의 왕과 여왕, 또는 성령강림절의 신랑과 신부 따위로 의인화하여 표현함으로써 나무와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려고 시도했다. 따라서 그런 표현들은 단순히 시골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가르치기 위해 만든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드라마나 목가적 연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숲이 푸르게 자라게 하고, 싱싱한 풀이 돋게 하고, 밀이 싹트게 하고 꽃이 피어...
2023.07.27 14:03“옛날 고군산 선유도에 나주 임씨(林氏) 부부가 살았다. 아이를 얻지 못하다가 나이가 든 후에야 딸 하나를 얻었다.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왼손을 꼭 쥐고 태어나 한 번도 펴질 않았다. 아이가 장성하여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다. 어느 날 혼처를 구하여 혼인 날짜를 받았는데 혼인 전날 밤 처녀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망주봉 오룡당 안에서 죽어있는 처녀를 찾았다. 펴진 왼손바닥에 왕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룡묘 뒤에 당집을 짓고 임씨 처녀를 위해 해마다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고군산 선유도에 있는 오룡당(五龍堂...
2023.07.20 14:18자신의 죽음을 예정해두고 장차 묘지에 묻을 말을 스스로 쓰니 자찬묘지명(自銘)이다. 고려시대 김훤(1258~1305)의 글이 가장 오래되었다 하고,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의 글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좁은 의미에서는 한문 글쓰기의 형식에 제한하여 논하지만, 더욱 확대해 말할 수 있다. 지(誌)와 명(銘)을 합하니 묘지명이다. 전통적으로 지는 산문이고 명은 운문(詩文)이다. 이 장르로 다룰 수 있는 것들이 자일시(自挽詩), 자제문(自祭文),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자서전(自敍傳) 등인데, 화상자찬(畵像自撰) 즉 그림을 그려 자신의...
2023.07.13 12:42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내가 자라면서 늘 접하던 풍경이다. 누군가 돌아가신 상황, 상가(喪家)판이 왁자지껄하다. 마당에는 차일(遮日)을 둘렀다. 굵고 진한 글씨로 장식된 병풍이 오칸접집을 가리기라도 할 듯 둘러쳐진다. 그 아래 갖가지 제사 음식들이 즐비하다. 일군의 당골들이 씻김굿을 한다. 수려한 무가와 갖은 악기의 반주들이 마당을 가득 채운다. 일군의 사람들이 중간중간에 마당으로 나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재담을 한다. 등이나 배꼽에 박바가지를 넣고 곱사춤이나 배둥이춤을 춘다. 굿판의 주역이 아니지만, 초대 없이도 마땅히 참...
2023.07.06 15:40어느 날 거문도 서도 덕촌 마을 해변으로 바위 하나가 떠밀려 왔다. 무심코 바다로 떠밀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바다로 떠밀수록 다시 해안으로 밀려왔다. 필시 연유가 있겠다 싶었다. 촌로들이 모여 의논했다. 틀림없이 상서로운 조짐 아니겠는가? 궁리 끝에 이 돌을 거문도 남쪽 관문인 ‘안노루섬(內獐島)’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마침 고기가 안 잡혀 어민들의 고민이 깊었던 터였다. 거문도 안팎 바다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보태졌다. 안노루섬 꼭대기에 당집을 짓고 매년 음력 정초와 추석에 제를 지냈다. 영기(令...
2023.06.29 12:37‘이슬털이의 두 출처’,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연재하는 내 칼럼 ‘진도의 상장례 다시 읽기’ 세 번째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호남학진흥원 연재를 시작한 까닭은 한국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좀 더 명료히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안동국학원에 대응하여 장차 이를 바를 내 방식으로 풀어내는 셈이랄까. 내 속셈은 이름도 빛도 없이 스러지고 일어나던 기층문화의 맥락 추적에 있다. 겹치고 포개져 마치 일노래의 후렴처럼 늘 반복되는 말들이, 귀한 지면을 소비하는 말의 성찬이 아니라, 고된 노동에서 돌아와 찐 감자와 신 김치, 막걸리 한 ...
2023.06.22 14:42조선이 일본으로 보낸 외교사절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라 한다. 고종 때는 이름을 수신사(修信使)로 고쳐 부른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풀이다. “통신사는 조선시대 조선 국왕의 명의로 일본의 막부장군에게 보낸 공식적인 외교사절이다. 사절의 명칭은 조선측은 통신사, 일본측은 일본국왕사라 했다. 태종 때부터 통신사의 파견이 정례화되어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총 20회(조선 전기 8회, 조선 후기 12회)가 이루어졌다.” 이에 비교되는 것이 연행사(燕行使)이다. 연나라의 수도가 연경(燕京)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청나라의 수도, 지금의...
2023.06.15 1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