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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영웅들
노병하 사회부장
  • 입력 : 2018. 11.26(월) 18:38
  • 노병하 기자
필자는 수퍼 히어로 영화를 굳이 극장까지 찾아가서 보지는 않는다.

그 장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즐긴다. 무료할 때 기분 전환하기에는 그만한 장르가 또 어딨겠는가? 휴일에 집에 있을 경우 필자의 tv는 대부분 날아다니는 영웅들이 점령하고 있다.

허나 집 밖으로 한발자욱이라도 나오게 되면 수퍼 히어로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진다. 왜냐면 필자는 현실의 수퍼 히어로를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 초임 시절이다. 3년을 갓 넘었을 때, 광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취재 규범이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화재가 발생하면 선착순으로 도착한 기자들은 현장 접근이 다소 용이했다.

화재 현장을 한 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현장 기자의 패기와, 사회부 사건기자의 깡다구(?)를 무기로 현장에 무작정 차를 몰고 갔고,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화재 인근 도로를 지나 마침내 불길 앞에 도착했다.

내 눈 앞의 화재는 (지금 생각하니 거대하지도 않았건만) 생각과는 달랐다. 영화나 TV에서 보는 화재에서는 느낄수 없는, 피부가 익을 것 같은 이글거리는 공기와 숨통을 조이는 매캐한 연기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서 100미터 이상 멀어져 있음에도 뜨거운 열화가 온 몸으로 느껴졌고, 숨을 들이킬 때마다 매운 연기로 기침이 쏟아졌다. 영화에서는 멋진 주인공이 온몸에 물을 끼얹고 달려가기도 하던데, 언감생심 물이 아니라 얼음을 둘러도 들어갈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불길을 박차고 3명의 소방대원이 튀어 나왔다. 한명의 구조자를 보호하면서 불 속을 걸어 나오는 그들의 모습이라니! 저절로 '수퍼 히어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이 나와 달리 목숨에 여분이 있었겠는가? 또 그들의 피부가 불에 타지 않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저 시뻘건 불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 들어간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영웅 그 자체다.

그런데 이 영웅들의 현실은 어떤가? 일선 소방관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바로 폭행이다. 올 초 19년간 현장을 누렸던 베테랑 119 구급대원이 술에 취해 의식이 없던 시민을 구했다가 도리어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우리의 영웅들이 이유 없이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참혹한 현실에 더해 지난달과 이달 초 전남일보 사회부 지면에서는 전남지역 구급대원에 대한 지적기사를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허나 그것은 전남 소방당국이 무슨 엄청난 비리 집단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그럴 리도 없고, 그럴 사람들도 아니다.

다만 10만원이 채 안되는 제세동기 패치가 없어 빌리러 다니고, 불 켜진 야간 헬기 착륙장이 없어 환자를 못 구해 자괴감에 빠진 일선 소방관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지면으로 옮겼을 뿐이다.

그것은 구급차 안에서 죽어가는 환자의 가슴을 두들기며 "살아야 합니다"를 외치는 우리의 주황색 영웅들에게 정상적인 지원이 돌아가게 하고자 함이고, 헬기가 뜨지 못해 몇시간을 차로 돌아가다 결국 숨진 환자를 보며 "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지 않도록 하게 함이다.

물론 기사 몇 줄로 이런 힘든 현실이 고쳐지겠냐마는 적어도 우리의 영웅들이 울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역할이 아닌가.

저 사람들에게 쓰이는 세금이 아깝다면, 나의 목숨을 유지하는데 쓰는 돈도 아까워해야 함이 마땅하다.

전남일보 사회부는 앞으로도 우리의 영웅들에 대한 안테나를 접지 않을 예정이다.

그들이 적어도 자기 돈으로 장갑과 부츠를 사지 않고 일회용품 지급이 막혀서 빌리러 다니지 않을 때까지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와 관련 한 지인이 냉정하게 필자에게 말했다.

"어차피 그들도 준 공무원이고 월급 따박따박 받고 다닌다. 남 걱정 말고 네 걱정이나 해라."

그래서 정중하게 답했다.

"당신이 어디 가서 사람 목숨 한번이라도 구하고 나서 그런 말 하면 새겨듣겠다. 그전까지는 참견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고 말이다.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