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창극 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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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창극 목민심서
  • 입력 : 2018. 11.28(수) 13:03
  • 편집에디터

창극 목민심서 공연장면-제공 전남도립국악단

초가 주점 새벽 등불 깜박깜박 꺼지려하는데/ 일어나서 샛별 보니 이제는 이별인가/ 두 눈만 말똥말똥 나도 그도 말없이/ 목청 억지로 바꾸려니 오열이 되고 마네/ 흑산도 머나먼 곳 바다와 하늘뿐인데/ 그대가 어찌하여 여기 왔단 말인가/ 고래는 이빨이 산과 같아/ 배를 삼켰다 뿜어냈다 하고/ 지네크기 쥐엄나무만큼 하며/ 독사가 다래덩굴처럼 엉켜있다 하네~

다산 정약용이 형 약전과 나주 율정 삼거리에서 헤어지면서 읊은 시의 일부다. 1801년 신유사화의 유배길, 이들 형제는 이곳 밤나무정자에서의 헤어짐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고래와 지네 이야기로 폄하되었음직한 흑산도의 풍경도 사실은 생이별에 대한 문학적 수사에 다름 아니다. 일촉즉발, 49세의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노론 벽파의 호위 속에 11세의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른다. 가톨릭 즉 서학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다. 황사영백서에는 300여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유사옥, 신유박해, 신유교옥 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천주교를 탄압했던 쪽에서는 사옥(邪獄)이라 하고 당한 쪽에서는 박해라 부른다. 목숨을 부지한 다산은 경상도 장기를 거쳐 강진으로 유배된다. 전남도립 국악단의 창극 '목민심서'는 다산 형제의 이별과 강진의 정착을 때로는 장중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풀어간다. 망나니가 세 번을 내리치고서야 목이 떨어졌다는 형 약종의 순교 이야기가 부각되지 못한 점 아쉽다. 저승의 정조를 불러내 대화하기도 하고 만덕산 아랫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창극은 갑자기 오늘날로 돌아와 청렴한 공무원의 좌천 등을 그리기 시작한다. 제목을 '목민심서, 백성이 근본이다'라 붙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 듯하다. 근년에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도립국악단의 실험들이기도 하다.

창극 '목민심서'에 담아낸 이야기

시부상후 낳은 아이 배냇물도 그대론데/ 삼대 이름 모두 같이 군보(軍保)에다 올려놨네/ 제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이정(里正)놈은 포효하며 황소마저 끌어갔네/ 칼을 갈아 방에 들자 붉은 피가 흥건하고/ 이 모두가 자식 낳은 죄일지니 자탄 하네/ 그 무슨 죄 있다하고 잠실궁형(蠶室宮刑)당했던가/(중략) 부자집들 일년내내 줄풍류를 즐기면서/ 낱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사오니/ 모두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리 차별인가/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鳲鳩篇)을 읊노라네/

잘 알려진 다산의 시 애절양(哀絶陽), 목민심서 권8 첨정(簽丁)편에 있다.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군적에 등록해버리고 키우던 소도 뺏어가니 한 백성 한탄하기를 원인이 제 남근에 있다하고 스스로 생식기를 베어버렸던 것이다. 그 아내가 남편의 생식기를 들고 관에 가 눈물로 호소할 때도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다산이 이를 적어두니 이를 어찌 시라 할 것인가. 체제의 모순에 대한 고발장 아니던가. 지금은 간척 되어 있지만 만덕산 아래 드넓은 개펄이 강진 남포에 이르렀으니 필시 이 어간에 살던 사람이리라. 창극 목민심서는 이를 처절하게 전개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에 있는 자들, 법안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기획의도에 청렴과 공직윤리의 소중함을 그려낸 작품임을 강조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 있다. 장면은 현대와 과거를 넘나든다. 주인공도 다산과 현대의 공무원으로 대별된다. 다산의 후손으로 설정되는 정과장은 내부비리를 공익 제보했다가 좌천된 인물로 묘사된다. 목민심서를 쓴 다산이 억울하게 유배당했음을 오버랩 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정과장은 배신자라는 누명을 무릅쓰고 꿋꿋하게 버텨내지만 공무원 사회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다산이 대면했던 사화와 당쟁의 사회를 대비시킨다.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자결하는 제자를 등장시켜 다산의 갈등을 표면화한다. 탐관오리의 횡포라는 점을 너무 직설적으로 그려 문학적인 맛은 떨어진다. 어쨌든 당대 지식인의 고뇌와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과한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백성들의 핍진한 삶을 구구절절 그려낸다.

창극이란 이름의 우리 선율 만들기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섞는 기술은 스토리 전개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귀에 들어오는 선율들이 있다. 아니 눈을 뜨면 과감하게 펼쳐지는 선율들이 보인다. 조성(調性)을 넘나드는가 싶었는데, 위태롭게 장조와 단조를 가로지르는 실험들이 보인다. 선율을 장식하는 시김새의 변화나 단순한 조바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했으되 가요와 넘나들고 가요인 듯 보이는데 장중한 판소리에 가까운 넘나듦이 재구성된다. 내가 예술 감독 유장영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도 어느 시기에는 이 실험들이 한 장르의 이름으로 불리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유감독의 이런 실험들이 성공한다면 말이다. 유파를 넘어 시대와 사람과 공간을 들어 호명하는 변화를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있다. 현재 우리 선율이란 이름의 창극 작곡을 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점, 혹은 창극 자체가 대중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숙제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적인 듯 보이지만 본디 가지고 있던 우리 선율의 전승에 관여하는 작업이라는 점 주목할 만하다. 이를 뮤지컬이나 현대극으로 만들지 않고 굳이 창극이란 장르로 풀어낸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음량이 너무 커 혼란스러운 측면이나 번잡한 장면 구성, 진부한 스토리의 등 소소한 문제는 기회를 보아 코멘트하기로 한다.

다산에 대한 성역화와 오해의 시선들

다산이 목민심서를 쓴지 200년이 지났다. 창극 목민심서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들을 돌이켜보면 이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창극에서 주장하였듯이 목민(牧民)의 의미를 톺아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방 수령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서이기도 하고 관리들의 폭정에 대한 비판서라는 점에서 그렇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땅에 떨어지고 탐관오리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점, 좋은 직장 다니는 이들끼리 눈감아주며 기층의 이익을 몽땅 가져가는 우리 현실과 매우 닮아 있다. 다행히 도립국악단이 순회하며 공연에 임한다 하니 각 지방의 공무원들 모두 관람했으면 싶다. 설령 불편하더라도 보고 느끼는 것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산을 너무 높은데 올려두고 성역화 하는 일들이다. 수많은 논문들이 나오고 이에 대한 반론들도 나왔다. 다산이 천주교에 직간접으로 영향 받았음은 수많은 연구가들이 밝혀둔 바 있다. 다만 천주교의 사상을 받아들여 실학을 궁구했는가 하는 문제는 유학의 실천적 맥락과 견주어 해석할 문제라는 점에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천주관이 서양의 그것과 다르다 하여 영향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서학 영향설이든 주체적 학문론이든 보다 객관적인 맥락에서 분석하고 주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호치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은 그 대표적 사례다. 최근식의 연구에 의하면,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머리맡에 두고 베트남 운영의 지침으로 삼았다는 것은 일종의 전설 만들기다. 소설 목민심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 허구에 가까운 호치민 애독설을 일반 독자들이 사실로 믿는 상황에 이른 일차적 잘못은 지식인들에게 있다. 다산의 철학과 이념을 존중하고 목민의 경영을 풀어 행하는 것은 마땅한 태도지만 사실 밖의 이야기들까지 만들어 천주교 영향설을 부정하거나 남의 나라 이야기까지 확대하여 성역화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목민(牧民), 다산이 남긴 마음

강진만의 객창에서 다산이 거듭 읊었던 시경(詩經)의 시구편(鳲鳩篇)을 상고한다. 풍(風)의 조풍(曹風),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민요'에 해당한다. "뻐꾸기가 뽕나무에 있으니 그 새끼가 일곱이로다. 아름다운 여자와 아름다운 군자여. 그 위의가 한결같도다." 뻐꾸기는 새끼를 먹임에 아침에는 위로부터 내려오고 저물어서는 아래로부터 올라가며 먹인다 한다. 한결같은 법칙으로, 정해둔 바 일정한 순서로 행한다는 내용이다. 숙녀와 군자의 행동에는 군주와 통치세력을 비유할 수 있다. 장정 아닌 갓난아이에게까지 세금을 물리며 난폭한 정치를 하지 말고 균일한 법률을 가지고 백성을 대하라는 뜻 아닌가. 창극 속의 정과장은 마치 탐관오리들처럼 곡학아세하고 세금 갈취하는 공직의 실정을 고발한다. 창극 속에서 언급한 자살 문제는 경제난 때문에 부쩍 늘어나는 자살과 견주어도 큰 무리 없어 보인다. 비유컨대 사리에 맞지 않는 세금정책을 펴고 가진 자들끼리 암묵적으로 담합하며 이익을 가져가는 행태가 곧 현대판 '애절양'임을 지적해두고 싶은 것이다. 줄풍류 타면서 요리조리 세금 회피하는 가진자들의 이기심이, 결국은 제 아이 안고 바다로 뛰어드는 백성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들의 단말마 애절양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 극에 담긴 뜻이리라. 애절한 노래로 풀어 전하는 창극 목민심서가 오늘 우리에게 주문하는 것은 시경의 민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다산의 마음, 그로부터 얻어내는 우리 스스로의 성찰일 것이다.

남도인문학팁

전남도립국악단 공연 내력

1986년 창단되었다. 어린이국악단을 포함하여 창악, 무용, 기악, 사물놀이 등 140여명의 단원들이 활동한다. 대외적으로 국내 최고의 기량을 갖춘 국악단으로 이름이 나있다. 국내 주요 도시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순회공연 등 2,700여회 이상 공연을 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토요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실적을 간략하게 보면 다음과 같다. 1986년 창단 공연, 1988년 '88서울올림픽 기념공연, 학이여 사랑이여', 1989년 창작기획극 '바람전', 1990년 미국(센터루이스 등 4개 도시) 초청공연, 1993년 미국(시카고 등 6개 도시) 공연, 1997년 독일(베를린)초청 공연, 1999년 '인동초' 공연, 2000년 창무악 '해상왕 장보고'공연, 2004년 일본 고치현 등 초청공연, 2005년 창무극 '학이여 사랑이여' 공연, 2008년 국악뮤지컬 '울돌목에 핀 해당화 어란' 공연, 2009년 기획공연 '무억이네 가족 귀신소동', 2011년 특별기획공연 국악뮤지컬 '인동초처럼 살리라'공연, 2012년 정기공연 판페라 '이순신' 공연, 2013년 기획공연 창극 '홍길동' 공연, 2016년 정기공연 시대창극 '흐엉의 희망일기', 2017년 정기공연 시대창극 '당신의 의미', 2018년 정기공연 '목민심서' 공연 등이 있다.

창극 목민심서 공연장면-제공 전남도립국악단

창극 목민심서 공연장면-제공 전남도립국악단

창극 목민심서 공연장면-제공 전남도립국악단

창극 목민심서 공연장면-제공 전남도립국악단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