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이, 물레, 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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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씨앗이, 물레, 베틀
  • 입력 : 2018. 12.19(수) 14:47
  • 편집에디터

씨앗이, 물레, 베틀

지난 2015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중요무형문화재 합동공개행사 2015 천공(天工)을 만나다'에서 무형문화재 제28호 '나주의 샛골나이' 기능보유자 고 노진남 할머니가 베틀에 올라 무명을 짜고 있다. 뉴시스





세상에 하는 일 없어/ 옥난간에 베틀 놓고/ 흑룡황룡 비친 해에 앉을개를 돋아 놓고/ 그 위에 앉은 양은/ 잉애대는 샘행제요/ 고단하다 눌림대는/ 이수강에 띄워놓고/ 앵기락꿍 도투마리/ 자로 자로 뒤깨내어/ 뱃대 낼치는 소리/ 쩍미르는 소리로다/ 남화수 무지개는/ 북외수로 외야놓고/ 질드리는 배옥이는/ 금사올을 목에 걸고/ 배옹강을 나댕긴다 /알그닥 짤그닥 짜는 베는/ 언제 짜고 친정에 갈꼬/

남도의 베틀노래다.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노랫말을 지어나가는 지역별 편차는 있지만 첫머리는 유사하다. "월궁에라 노던 선녀 지상에라 내려오니" 아니면 "하늘에다 베틀 놓고 구름 잡아 잉애 걸고" 등이다. 질펀한 방언들이 마디마디 댓구를 이룬다.

씨앗이 앗고 활대 타고

앗는 것은 무엇이고 타는 것은 무엇일까? 앗는 도구는 '씨앗이'다. 목화의 솜털을 털어내는 도구다. 씨를 앗기 때문에 '씨앗이'다. 손으로 돌리는 '꼭두마리'와 '씨앗이동', '씨앗이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씨앗이동'은 두 개가 맞물려 있고 '씨앗이귀'는 정교하게 홈이 새겨져 있다. 목화가 이 사이로 들어가면 솜털과 씨가 분리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보송보송한 솜이 탄생한다. 무명솜이라 한다. 솜은 다시 활대로 탄다. 활은 일반 사냥에서 쓰는 것과 한가지다. 활대와 활끈으로 구성되어 있다. 활끈은 무명실로 만든다. 활 끈에 '밀'을 반복해서 칠하면 무명솜이 활 끈에 들어붙지 않게 된다. '밀'은 콩기름을 헝겊에 묻혀 만든다. 한 손으로 이 활을 무명 솜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 줄을 반복해서 튕기게 되면 솜이 너풀너풀 부풀어 오르는데 이것을 '활로 탄다'고 한다. 이 작업을 하며 부르는 노래를 '활방구 노래'라 한다. 솜들이 마치 바닥에서 부풀어 오르는 구름 같다.

고추 말아 물레 걸고 물레독 눌러 명두 잣고

벙실벙실하게 타진 솜은 큼지막한 고추의 크기로 말아야 한다. '고추말이'라 한다. 수숫대로 만든 '몰대'를 사용해서 '도마'위에서 한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약 15Cm 크기의 고추들이 만들어진다. 비로소 물레에다 잣는다. 물레는 '물래살', '물레 거무줄(거미줄)', '물레 꼭두마리', '물레 굴뚱(굴뚝)', '물레 가래짱', '물레 괴머리', '물레 틀', '물레 가락', '물레 줄', '물레 독(돌)' 등으로 구성된다. 물레 가락은 옛날부터 아주 강한 쇠로 만든다. 가락에는 무명 실로 만든 고동이 있다. 물레 줄을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고동은 무명실에 밥풀을 끈끈하게 칠해서 감는 것을 반복해야 단단하게 들어붙는다. 물레 독(돌)은 물레 굴뚱 하부에 '씨악'을 질러 눌러놓는 데 쓴다. 이렇게 해야 물레 줄이 느슨해지지 않는다. 말아놓은 고추의 끝을 가락에 묶고 물레 꼭두마리를 반복해서 돌리게 되면 고추에서 실이 나온다. 뽑아져 나온 실은 한 어깨 길이가 되면 '명두'에 올린다. 이를 '잣는다'고 한다. 반복해서 자으면 두툼한 실타래인 명두가 만들어 진다. 보통 하룻저녁에 명두를 세 개나 네 개 정도 잣는다. 밤을 꼬박 새기도 한다.

고무레 가래줄, 끄시럼 도투마리

각각의 명두 10개를 모아 '고무레' 작업을 한다. 명두 10개를 나란히 꽂는 틀이 고무레다. 다섯 발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한쪽은 말뚝을 한 개, 반대편에는 말뚝을 다섯 개 정도 박는다. '쇠를 거는' 작업이다. 각각의 명두에서 뽑아진 10가락의 실을 한군데로 모아 이 말뚝을 지그재그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반복해서 감는 과정이 끝나야 드디어 한 가래의 명줄 타래가 만들어진다. 반대편 말뚝이 세 개면 세가래, 네 개면 네 가래 다섯 개면 다섯 가래라 부른다. 각각의 한 가래는 20자에서 30자 정도 된다. '가래줄'이 20자면 베가 20자, 30자면 30자의 베가 만들어진다. 베를 잘 짜는 여성들은 하루에 20자의 베를 짜기도 한다는데 숙련된 노하우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도투마리'에 가래줄을 맨다. 베틀 앞다리 넓적한 사각 나무판을 양쪽에 설치하고 베를 매는 '베대'를 가로질러 묶어 놓은 것을 말한다. 한 가래가 끝날 때마다 '개미'를 칠한다. 개미는 부엌 아궁이의 '끄시럼(그을음)'을 사용한다. 베를 길게 펴놓고 화롯불로 열기를 가하면서 솔로 풀칠을 하며 감아 나가는 것을 도투마리 작업이라 한다. 감아나가면서 한 바퀴에 대나무 한 개씩을 사이에 넣는다. 도투마리가 단단하게 감기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명줄이 밥풀 기운으로 들어붙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각각의 실 끝을 '보두집'에 끼운다. 보두집의 '대살' 사이사이로 줄을 끼우는 작업에는 세 사람이 필요하다. 한사람은 보두집을 잡고 한 사람은 줄을 끼고 한사람은 줄에 풀칠을 한다. 줄이 헝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솔질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잘 쓸어 내려야 한다. 그래야 실이 고르게 골라진다. 이것을 '베맨다'고 한다.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때문에 품삯을 받고 전담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른 개가 넘는 마디마디, 이수강에 띄워놓고

도투마리 작업이 다 끝나면 비로소 베틀에 얹는다. 뒤쪽부터 '도투마리', '끄슬대(끄슬심)', '풀소금대', '잉애(잉아)대' 3개가 있다. 잉애대 중에서 맨 아래부터 '눈썹대', '잉애대', '사침대'라 한다. 이어서 '비루'(한 앞을 다 짜면 밀어서 도투마리를 눕히는 것), '눌림대'('잉애솔'과 '사솔'을 벌려주고 눌러주는 작용), '보두집', '보두', '책발'(대로 무지개처럼 만들어 끝에 쇠를 지른 것, 이것이 짱짱해야 베를 힘지게 짤 수 있다), '몰코'(베 감는 나무), '북', 북안에 들어가는 '꾸리', 북안의 꾸리를 고정시켜 주는 세로로 지른 대나무인 '북딱개' 또는 '눈딱개', '분태'(짚으로 만든 허리받침대), '앉을개', '베틀', '원산대(나부산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투마리에서부터 연결되어 나온 실타래는 '잉애'를 들면 '들술', 잉애를 놓으면 '놀술'이라 한다. 윗줄은 '잉애솔'이라 하고 아랫줄은 '사솔'이라 한다. 이 잉애솔과 사솔 사이로 '배'를 넣어서 씨줄 날줄이 교차되면서 베가 완성된다. '검드렁'으로 칠한 '개미' 자국이 나오면 두 바퀴 정도 더 감았다가 잘라서 한필의 베를 만들어 낸다. 까맣게 칠한 '개미'가 나오면 한 필의 베가 완성되는 것이니 노래 속에 개미를 기다리는 마음이 층층히 담겨 있다. 노랫말처럼 진흙탕의 이수강을 건너야 한 필의 베가 탄생한다.



'씨앗이동'에다 '붕알' 넣고 견디는 과정

씨앗이와 물레, 베틀이 하나의 몸이라면 뼈마디는 몇 개일까?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고 특색이 있다 해도 쉰 개를 훌쩍 넘는다. 과정의 마디까지라면 십 수개의 이름을 더 보태야 한다. 한 필의 베 짜는 과정이 그렇더라. 하물며 한 인생을 짜는 일임에랴. 이런 말이 있다. "'씨앗이동'에다 붕알을 넣고 전디제 못 전딘다" 베틀 작업을 하던 여인네들에게는 익숙한 말이다. 낯설지 않은 구개음화 발음이니 응당 남도의 속담이다. 남성의 고환과 고추를 여성의 핍진한 노동판에 소환하였다. 씨와 솜털을 분리해주는 도구 '씨앗이'에 비유한 점, 양가적 은유라는 점에서 탁월하다. 질펀한 성적 해학이 주는 유쾌함이 있다.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야 완성되는 베 한필의 연대기가 숨어 있다. 여성 전유의 체념과 포기로 읽어내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이다. '씨앗이동'에 고환 넣고 견디는 얼터너티브송(alternative song)으로 읽어내는 지혜가 요구된다. 갓 수능시험 끝난 성년 초입의 신세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보물들에게, 특히 이 시간 이 글을 우연하게 볼지도 모를, 어느 낯선 벼랑 위에 서있을 그대에게 이 노래를 드린다.

남도 인문학 팁

베틀에 관계된 이름

여기서는 무명에 주목하였지만, 잘 알려진 나주의 샛골나이, 곡성의 돌실나이, 구례의 명주들이 모두 이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지면이 허락하지 않으니 백과사전에 인용된 베틀 관계 이름들만 나열하여 그 마디마디를 음미해본다. 용두머리, 눈썹대, 눈썹노리, 눈썹줄, 잉아(잉애), 잉앗대, 속대, 북, 북바늘, 꾸리, 바디, 바디집, 바디집 비녀, 최활, 부티, 부티끈, 말코, 앉을깨, 뒷다리, 다올대(밀대), 끌신, 베틀신끈, 가로대, 눌림대, 눌림끈, 눈다리, 비경이, 베틀 앞기둥(선다리), 베틀신대, 사침대, 도투마리, 뱁댕이 등이 그것이다. 피륙은 날의 촘촘함을 들어 '새'라고 한다. 한 새는 바디의 실 구멍이 40개로 짜이는 것이다. 명주는 보름새짜리(1200가닥의 실)가 가장 좋고, 삼베는 보통 넉새에서 여섯새로 짠다. 새는 '승'이라고도 한다. 이름도 빛도 없이 베틀과 함께 살다 가신 우리네 할머니들께 심중의 헌사를 드린다.

지난 2015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중요무형문화재 합동공개행사 2015 천공(天工)을 만나다'에서 무형문화재 제28호 '나주의 샛골나이' 기능보유자 고 노진남 할머니가 베틀에 올라 무명을 짜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5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중요무형문화재 합동공개행사 2015 천공(天工)을 만나다'에서 무형문화재 제28호 '나주의 샛골나이' 기능보유자 고 노진남 할머니가 베틀에 올라 무명을 짜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