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증' 까고 쓰라는 국민신문고... 개인정보 줄줄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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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주민증' 까고 쓰라는 국민신문고... 개인정보 줄줄 샌다
장성 사립고 내부고발자 극단적 선택한 까닭||이름·주민번호·주소·연락처 노출.. 협박 시달려 결국||유사 피해사례 속출... 허술한 행정·시스템 개선 시급
  • 입력 : 2018. 12.25(화) 19:54
  • 김정대 기자

클립아트코리아.

국민신문고에 내부고발을 했던 전남지역 모 사립고등학교 여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공익제보자'의 신원을 노출한 관련 기관들의 허술한 행정 탓이었다.

국민신문고는 자신의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와 연락처를 기재해야 하는 시스템이기는 하다. 하지만 민원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이 같은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고발 당사자에게까지 전달돼 '2차 피해'의 발단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신문고 공익제보자 신원이 유출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신문고 민원처리 시스템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 공익제보자 신원 유출 비일비재

지난 3일 장성 모 사립고 교무행정사 A(29·여)씨가 광주 광산구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지난 1월께 국민신문고에 같은 학교 교감 승진예정자였던 B(60)씨에 대한 내부고발을 했다가 신원이 드러나 B씨로부터 지속적인 협박을 받은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내용이 전남도교육청과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오가던 중 B씨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경찰은 정확한 경위와 책임 소재 등을 두고 관련자들을 조사 중이다.

국민신문고의 문을 두드렸다가 역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A씨만이 아니다.

지난달 22일 경남 마산에서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기관의 '통근버스 운영 방식'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던 한 공무원이 청원글을 올린지 1시간만에 정체가 발각되면서 논란이 됐다.

민원을 접한 상급자는 해당 공무원의 동료 직원들을 불러 사실관계를 파악하는가 하면, 기관의 과장 등에게 신원을 공표하고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고소장을 접수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 10월 충북 단양에서는 한 시민이 매번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하는 남성에 대해 '실제 장애등급을 받은 사실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글을 국민신문고에 올렸다가 봉변을 당했다.

조사가 이뤄진 기간 고발 대상자가 직접 제보자를 지목하면서 '국민신문고에 왜 민원을 제기했냐'며 따져든 것이다. 이 사건 또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청주지방검찰청 제천지청에 고소장이 접수됐다.

지난 2016년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복무 중이던 20대 사회복무요원이 담당관의 '근무 태만'을 국민신문고에 신고했다가 신원이 발각돼 추궁당했다. 청원글을 올린지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같은 해 학교생활기록부 조작 사건을 제보한 광주 S고교 C교사도 신원 노출로 피해를 입었다. 광주시교육청이 생기부 조작에 가담한 교직원들을 징계하도록 학교 측에 요청하는 과정에서 C씨가 내부고발을 했다는 사실까지 알린 것이다. 이후 C씨는 광주시교육청 쪽이 제보 사실을 학교 측에 알렸다며 직원 2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 실명 제출해야만 조사… 보완 필요

잦은 제보자 신원노출은 법의 '맹점' 때문이다.

현재 국민신문고에 공익제보를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제출해야 한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근거한 조치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는 '공익신고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또 애초 '신고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 조사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고 끝낼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무분별한 '허위 신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다. 또 신고자의 인적사항이 필요한 이유는 조사가 진행될 경우 신고자에게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자료를 요청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 사후결과를 통보하기 위해서도 인적사항이 필요하다.

법의 맹점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신고자의 비밀보장을 위한 법이고, 비밀보장을 위한 의무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조사에 나설 기관들에게는 신고자의 인적사항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공익제보자의 신원이 고스란히 유출돼 2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숨진 A씨 사건이 단적인 예다.

이 탓에 일각에서는 고발 시 제보자를 익명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참여연대 유동림 간사는 "제보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선 익명으로 신고하도록 법률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