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 늘어가는데... 신분노출 비일비재·보복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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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공익신고 늘어가는데... 신분노출 비일비재·보복 무방비
여전히 갈 길 먼 공익신고자 보호 <1>||신고건수 2013년 49만여 건서 2017년 168만여 건 급증 ||공익신고자 80% 보복행위 겪어, 77.2%는 근무환경 변화||익명 제보 불가능, 권익위 사건 이첩시 제보자 인적사항 노출 ||조직 파면, 해임 등 보복·동료 따돌림·우울증·경제적 악화까지
  • 입력 : 2019. 01.01(화) 15:57
  • 박수진 기자
"우린 생명 등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제보하지만, 정부는 정의와 우리의 고통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조직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공익제보자'들이 있기에 우리사회는 정의로운 민주사회로 발전해 나가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1987년 6월 항쟁도 교도관이 감옥에 갇힌 민주인사를 대신해 중요한 정보를 외부로 전달했기에 가능했었다.

그런데 40여년이 지난 지금, 정부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서 공익제보자의 개인정보 유출이 비일비재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무엇보다 신원이 노출된 제보자들은 조직 구성원의 이익에 반하는 '배신자'라고 낙인찍힌 채 갖은 협박과 보복 속에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8년이 돼가지만, 여전히 공익제보자가 보호 받지 못하고 있는 2019년 현재. 새해를 맞아 전남일보에서 개인정보 유출 현실과 문제점, 개선방안을 심층적으로 취재해 4차례 나눠 싣는다.



문재인 정부의 소통 창구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운영으로 공익제보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사회가 내부고발에 대한 금기를 깨고 민주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운영 중인 국민청원 게시판인 '국민신문고'에서는 이런 공익제보자의 개인정보 노출이 빈번하다. 공익제보자의 신분이 노출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한 조직의 집단 공격을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이 이를 버텨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지난달 국민신문고에 제보했다가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고발 당사자에게 시달린 장성 모 고교 20대 행정실 여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의 시발점 역시 국민신문고 개인정보 노출이었다.

●공익신고 4년새 3배 급증… 제보자 신분 공개자 주의 그쳐

"내부 고발 이후 조직이 오히려 나를 감시하고 부패가 있는 것처럼 덮어씌우려 했다."

"직원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동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

"신분의 위협을 느껴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동종업계에서 소문이 나 재취업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실업자 신세다." (공익제보자들)

지난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 이후 공공기관에 접수된 공익신고 건수는 최근 4년 새 3배가량 급증했다. 지난 2013년 49만 3568건에서 2017년 168만 3709건으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공익제보자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권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지난 2018년까지 권익위에 접수된 공익신고자 신분공개경위 확인 요청사건은 총28건이다. 2014년 9건, 2015년 3건, 2016년 4건, 2017년 7건, 2018년(9월 기준) 5건에 이른다.

단 1건이라도 노출돼서는 안되는 정보가 수십건씩 노출된 것이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신고자의 인적사항 등 신고내용을 공개해서는 안 되며,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수십건이 노출됐음에도 제보자의 인적사항을 알려주거나 비밀보장을 위반한 사람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익위의 자료를 보면 지난 2014년 3건, 2015년 1건, 2016년 1건, 2017년 1건, 총 6건의 사건에 대해서만 공익신고자의 인적사항 등이 공개된 경위를 파악하고 소속기관에 위반자에 대한 징계 등을 요구했다. 이마저도 권익위의 징계요청에도 불구하고 소속기관의 조치결과는 모두 주의, 훈계 등 낮은 수준의 처벌에 그쳤다.

노출된 이들은 자살하거나, 실업자로 전락했는데 말이다.

●조직 보복→ 따돌림 →우울증 →경제적악화→자살충동

반면 조직 내부에서 내부고발자(공익제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때부터 제보자는 지옥이 시작된다. 노골적인 협박은 당연하고 왕따, 업무배제, 파면, 해고 등 견디지 못할 정도의 불이익이 쏟아진다.

제윤경(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받은 권익위의 '부패·공익신고자 실태조사 결과분석'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 중 무려 77.2%가 '신고로 인해 근무환경이 변화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80%가 '보복행위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보복도 문제지만, 제보자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고립이다. 한번 조직에서 찍히게 되면 믿었던 동료마저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익제보자가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내부 고발자가 발생할 경우엔 이를 용서치 못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결국 조직의 보복과 고립에 처하게 되는 공익제보자는 정신과 치료, 우울증, 불면증은 물론이고, 자살 충동까지 수시로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제보자가 파면, 해고 등으로 인한 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경우엔,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 간의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장성 고교 사건의 경우도 고발 당사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라' 등 끊임없는 협박과 주위의 눈총까지 더해지면서 행정실 여직원 정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앞서 지난 2017년 자신이 근무하던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에서 발생한 80대 치매 노인 폭행사건을 고발한 공익제보자 이명윤(41)씨도 "당시 병원 친했던 동료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회사에선 어떠한 일도 맡기지 않는 등 보복으로 인해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였다"며 "내부 공익제보로 스트레스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정씨의 심정이 이해간다"고 말했다.

●익명 제보 불가능… 사건 이첩시 신상 노출 다반사

그렇다면 국민신문고에서 공익제보자의 정보가 끊임없이 유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시스템상 익명 제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고의든, 실수든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국민신문고에 제보를 하기 위해선 민원법에 따라 민원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제출해야만 한다. 그 다음은 권익위의 사건 이첩 과정에서 제보자의 개인 신상 정보가 유출된다는 것이다.

신문고 청원은 시스템을 통해 민원 처리를 맡을 기관으로 전달된다. 권익위는 민원서류에서 민원인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을 가리지 않은 채 처리 기관에 전달한다.

물론, 개인정보가 경우에 따라 포함되지 않도록 할 수는 있다. 국민신문고 시스템 내 어느 메뉴에서 인쇄하느냐에 따라 개인정보가 포함될 수도,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권익위가 이러한 시스템적 특수한 사항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원 시스템에서 '민원 접수 처리' 항목에 들어가 인쇄하면 개인정보가 차단된다. 그러나 '민원 관리' 항목에 들어가 인쇄하게 되면, 기관 담당자들에게 개인 정보는 고스란히 노출된다. 결국 권익위가 의도치 않았지만, 시스템적 결함에 따라 개인정보가 담긴 민원서류를 인쇄해 기관에 보내지게 되는 것이다.

장성 고교 사건의 경우도 권익위의 시스템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교감 승진예정자였던 고발 당사자 박씨가 승진에서 탈락하자, 교원소청심사위에 소를 제기했다. 관련 규정상 소청심사위는 소청을 제기한 사람에게 답변서를 보내야 하는데, 박씨의 승진 탈락 사유를 밝히는 답변서에 전남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정씨의 개인정보가 적혀있는 국민신문고 글이 그대로 첨부됐다.

●국민신문고 시스템 보완, 보복행위 강력 처벌을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익제보자들의 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권익위 시스템적 결함 보완과 제보자 익명 처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 유동림 간사는 "제보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선 익명으로 신고하도록 법률을 보완하고, 권익위 시스템적 결함도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익위 차원의 상담 프로그램을 도입과 공익제보자에 대해 보복행위를 한 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호루라기재단 관계자는 "공익제보자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상담 등 실질적 지원책이 마련돼야 하고, 권익위가 검찰 고발을 통해 보복행위를 한 기관과 책임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무엇보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을 위해 각 기관, 사업체 별로 관련 교육을 의무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수진 기자 suji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