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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고풀이
  • 입력 : 2019. 01.16(수) 12:43
  • 편집에디터

고풀이

1986년 진도 영등제 씻김굿 공연 질닦음 장면

풀로 가자/ 풀로 가자/ 산신님아/ 산고를 풀으시고/ (가)신님아/ 집고를 풀으실 적/ 고 풀어 만고 풀자/ 심중에가 맺힌 고를/ 포부에 풀으시고/ 포부에가 맺힌 마음/ 왼 정으로 다 풀어서/ 억천만물 뒤에도/ 굴과 고통이 다이 없이/ 대신 고애가 풀렸소~(중략) 초제왕에가 맺힌 고는/ 이제왕이 풀고 가고/ 이제왕에가 맺힌 고는/ 삼제왕(이) 풀으시고/ 삼제왕에가 맺힌 고는/ 오제왕으로 풀고 가고~(하략)

가사의 흐름을 보니 오제왕에 맺힌 고는 당연히 육제왕, 칠제왕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십제왕까지 노래된다. 사제왕이 없는 까닭은 4자를 기피하는 습속과 관련된다. 진도씻김굿 중 고풀이의 한 대목, 고 이완순이 잘 불렀던 가사다. 고풀이는 하얀 질베에 매듭을 여러 개 만들어두었다가 풀면서 연행하는 무가를 말한다. '질베'는 '길+베'의 구개음화현상이다. '길'을 '질'로 발음하는 남도지역의 호명방식이다. 여기서 노래하는 '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고풀이의 '고'를 '매듭'으로 이해하고 해석해왔다. 망자가 이승에서 못다 푼 한과 절망, 산자들과의 관계, 혹은 아쉬움들을 풀어내는 의례라는 뜻이다. 맺힌 매듭을 푼다는 뜻이니 그럴 듯 해 보인다. 국어사전이나 전라도지역 방언사전들을 통해 그 의미를 추적해본다.

남도 씻김굿 중 고풀이의 '고'는 무얼 말할까

'매듭'으로 이해하는 것은 일종의 기호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전남방언사전을 참고해보면, 완도에서는 올가미를 '고'라고 하고 구례에서는 방앗공이를 '고'라고 한다. 올가미나 방앗공이는 '고리'의 다른 표현이다. 국어사전에는 "쇠붙이나 끈 따위를 구부려서 두 끝을 맞붙여 만든 물건"을 '고리'라고 한다. 둥근 모양을 이룬다. '문고리' 등의 용례가 있다. 또는 "여러 가지가 서로 연관되어 있는 사물 현상을 말한다. 하나하나의 부분"으로 해석한다. '중심 고리', '연결 고리' 등의 용례가 있다. 고풀이는 다섯 매 혹은 일곱 매 등으로 묶어 둔 질베를 푸는 의례다. 전자로 해석하면 문고리 같은 둥근 고리를 푸는 행위고, 후자로 해석하면 연결고리를 푸는 행위다. 당연히 나쁜 것과의 연결을 의미한다. 이승에서 엮인 나쁜 것들과의 '매듭'을 풀어내는 노래요 의례라는 뜻이다. 이 외의 뜻은 없는 것일까.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나눌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간편하다. '매듭'의 용례를 좀 더 살피면 그 내면의 의미들을 추출해낼 수 있을까?

매듭, 매두, 매디, 메듭, 메둑, 메두, 메디

질베를 묶어 고리를 만드니 그것이 맺힌 매듭 즉, 마디인줄은 알겠다. 마디는 무엇을 말할까. 일반적으로 마디를 매듭이라 한다. 여천에서는 '매두', 광양에서는 '매디'로 부른다. 남도 전역에서 '매듭' 보다는 '메듭'형의 호명이 일반적인 듯하다. 전자는 단음이고 후자는 장음 정도로 이해된다. 방언사전을 다시 참고해보면, 영광, 함평, 무안, 신안, 승주에서는 '메두', 나주, 영암, 장흥, 완도에서는 '메둑', 나주, 화순, 진도, 강진에서는 '메듭', 장성, 곡성, 보성에서는 '메디'라 한다. 진도에서는 '메듭'과 '메디'를 혼용한다. 담양, 보성, 순천, 여수에서는 '메두', 함평에서는 '메둑', 무안에서는 '메둡'이라 한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 '마디'를 뜻하는 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매듭의 여러 뜻 중에서 순조롭지 못하게 맺히거나 막힌 부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전라도 전역의 씻김굿 또한 각 편들의 차이는 있으나 총체적인 굿거리의 맥락은 같다. 공통점은 질베를 사용한다는 것, 특히 이 질베를 '고'라는 이름으로 꼬고 비틀어서 풀어내는 고풀이와 평평하게 펴서 길을 닦는 질닦음(질은 길의 구개음화)으로 특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의문이 든다. 질베가 두 가지 각 편 굿거리에서 함의하는 기표와 기의는 무엇일까?

고풀이와 '고개'의 상관성

남도 씻김굿에서 질베를 주요 소품으로 사용하는 각 편 굿거리는 고풀이와 질닦음이다. 앞서 고풀이가 맺힌 '고(한, 원망, 고통 등)'를 풀어내는 의례임을 확인했다. 질닦음에서는 평평한 길을 닦는 연행을 한다. 질베를 소품으로 사용하는 두 각 편을 씻김굿의 전체 서사 속에서 해석해보면 연관되는 측면들이 보인다. '고'의 발음과 유사한 의미들을 추적해보니 이 골에서 저 골로 넘어가는 '고개'가 포착된다. 평평한 질베를 펴서 길을 닦는 의례가 질닦음이니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고개는 무엇일까? 고개는 '고'와 '개'의 합성어다. 우리말 어원사전을 참고해보면, 골이 골, 고을(谷, 洞, 邑, 州)의 뜻을 지니지만 본래의 뜻(原義)은 땅의 종류(土地類)를 말한다. 곧(處), 고장(里)의 어근 '곧, 곶(곧)'과 동원어가 되고 토지류의 원의를 지닌다. 길(路)도 동원어가 된다. 개는 '가이'가 준말이고 갇>갈>갈이>가이>개의 변화로서 '골'과 동원어가 된다고 하겠다. 방언사전을 참고하면, 전남 전역에서 '고개'는 '고게'로 발음 된다. '고개'보다는 약간 장음으로 발음한다는 뜻이겠다. 낱말의 뜻에서 질닦음의 의미를 톺아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신 이 골짜기를 이승이요 저 골짜기를 저승이라고 비유할 때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간다는 맥락에서 '고개'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으리라 추정해볼 따름이다. 하지만 사설이나 의례 전반의 형상을 볼 때, 배를 타고 물을 건너가는 이미지가 훨씬 크게 드러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고'의 발음이 '고개'와 친연성이 있다 하더라도 의미가 전적으로 내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풀고 가야 할 것들

남도 씻김굿 고풀이는 '고리'를 풀어내는 모의행위를 통해 꼬아지고 비틀린 매듭들을 푸는 노래요 의식임을 확인해봤다. 여기서의 매듭은 매우 많은 의미들을 함의한다. 비단 망자의 '엉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시간을 분할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마디의 이름'에 행하는 의례들은 십중팔구 풀고 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죽이고 살리는 구성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다고 이 구성이 거세된 것이 아니다. 은닉되고 변용되었을 뿐이다. 총체적인 굿거리는 한 사람의 일생을 한 주기 삼아 연행된다. 전생과 현생과 후생이 각각의 장치들에 의해 오버랩 되어 '생애'라는 이름의 일대기를 묘사해낸다. 조상이 등장하거나 미래의 후손들을 예지하는 노래들이 그것이다. 풀어낸다는 것은 회복이며 갱생이요 재생이며 부활을 뜻한다. 재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죽음이 필요하다. 아주 단순한 원칙이고 원리다. 씻김굿의 각 편 중 하나인 '영돈마리'의 기호가 '망자'를 상징하지만 그 내면에 투사된 산자들의 욕망은 망자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재생과 부활에 있다는 점을 나는 줄곧 주장해왔다. 기표를 넘어 기의 즉 보이지 않는 행간과 여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고풀이의 풀어냄이나 질닦음의 닦아내는 행위는 이런 죽임의 의례와 살림의 의례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구성한다.

고풀이가 필요한 시대

남도씻김굿 고풀이는 막히고 단절된 고리를 풀어내는 의식이다. 어느 사람이라고 어느 시대라고 막히고 꼬인 것이 없을까만, 특별히 우리 시대는 더한층 그러해 보인다. 세대와 세대 간의 갈등과 불화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소통이 안 되고 막히고 꼬였으니 이것이 '고'다.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람들이 개별화되고 주변화 되어 겉돈다. 주체(主體)는 무엇인가?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심신의 주인이라 함은 무엇인가?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보아하니 계층과 계층 간의 갈등이 깊어져 간다.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진다.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해 죽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 빈곤감으로 메말라 죽는다. OECD 자살율, 고독사율 최고, 혹은 상위를 달린지 십 수 년이다. 몸의 문제로 치환해 얘기하면, 꼬아지고 뒤틀린 장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단식을 통해 이른바 영성을 추구하는 이유가 뭘까. 이전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나를 창조해내려는 일종의 의례다. 국가나 민족은 어떠한가? 선대의 꼬인 역사가 있고, 현재의 질곡이 있으며, 풀어내야 할 미래가 예비 된다. 뒤틀리고 꼬인 '고리'들은 과거와 현재의 은유다. 마치 창자가 꼬인 것처럼 형용된다. 실제 고풀이의 형상을 보면 마치 꼬인 창자처럼 질베를 형용했다. 고풀이의 '고'가 은유하는 본질이다. 분단의 시대를 비유해 묵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시대야말로 고풀이가 필요한 시대다. 엉킨 고리들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죽이는 의례가 필요하다. 그래야 갱생하고 부활한다.



남도인문학 팁

질닦음 의례의 '길'에 대하여

(후렴 생략) 가노라 가시난데 일망세계 다리를 놓아서/ 여래 염불로 길이나 닦세/ 넋이라도 오셨으니 넋반에다가 고이 모셔/ 반야용선 무어타고 극락가고 세왕 가세/(후략)

진도씻김굿 중 고 김대례의 질닦음(길닦음) 진양조 부분이다.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는 뜻이다. 여기서의 길은 '다리를 놓아', 망자가 '넋반'과 '반야용선'을 타고 가는 길이다. 넋반과 반야용선(般若龍船)은 '배(선박)'를 말한다. 배가 가는 길이니 마땅히 강의 길 혹은 바닷길임을 알 수 있겠다. 다리를 놓는다 함도 그 길이 물과 상관이 있다는 뜻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요단강 건너가'는 길이다. 지난 영화 한편을 예로 든다면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의 '강'이다. 이른바 죽음의 강을 넘어가는 것이 질닦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이해는 저승에 이르는 도로(道路)를 닦는 것에 한정된 듯하다. 질베가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반적인 '길'의 이지미이지만 숨은 뜻은 강 혹은 바다 등의 물길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의례를 공유해왔던 사람들은 저승에 가는 길을 물길로 이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정황은 희설 등 여러 가지 굿거리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사공을 불러 한 뜸 한 뜸 쉬어가며 저승에 이르는 길을 노래한다. "사공아 닻 내려라 여기 잠깐 쉬어가자" 등의 사설들이 이를 말해준다. 고풀이에서의 '고'도 '고리'로 형상화된 표면적인 기표 외에 숨어 있는 의미들이 있을 것이다. 몸의 문제를 비유하거나 나라의 문제 국가의 문제로 은유하는 것도 이런 해석의 일환이다.

2009. 명량해전 씻김굿 고풀이 장면

2009.명량해전 씻김굿 고풀이 장면

진도씻김굿 질닦음 장면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