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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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김치
  • 입력 : 2019. 01.30(수) 13:56
  • 편집에디터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생생텃밭에서 열린 '국회생생텃밭·한유연과 함께하는 한돈 김장나눔행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김장김치를 담고 있다. 뉴시스

무수채지(무채지), 갓물김치, 파김치, 알타리김치(총각김치), 무동치미, 배추동치미, 무장아찌, 열무김치, 무생채김치, 깍두기, 솔김치(부추김치), 갓김치, 얼갈이배추 김치, 솎은 무김치, 솎은 배추김치, 고구마줄기 김치, 열무 물김치, 싱건지(동치미), 배추 물김치, 돌산갓김치, 얼갈이무잎 배추김치, 배추 풋고추 김치, 고추김치, 톳김치, 표고유자 물김치, 양파김치, 나박김치, 무청고춧잎 김치, 파래 물김치, 감태 김치, 씀바귀 김치, 콩잎 김치, 시금치 장아찌, 무말랭이 깍두기 김치, 열무반지, 자박김치, 외대파김치, 시금치장아찌, 울금가루 넣은 김치.

남도지역에는 어떤 김치들이 있을까?

많기도 하다. 모두 내가 남도 곳곳을 다니며 조사한 이름들이다. 물론 이외에도 훨씬 많은 김치 이름들이 있다. 김장 김치 외에 계절 김치들이 수십 가지다. 계절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다르며,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뿐인가, 세대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른 레시피의 변화도 있다. 담아서 바로 먹는 생김치가 있는가 하면 김장김치를 다년간 묵혀서 먹기도 한다. 이들 모두를 통칭하여 김치라 한다. 남도지역의 김장은 음력 동짓달 즈음이 적기다. 양력으로는 12월, 맞벌이 가정은 1월에 김장을 하기도 한다. 김장이 늦은 것은 당연히 기온이 따뜻한 남도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무수채지(무채지)는 무채를 썰어서 담그는 김치를 말한다. 갓물김치는 갓을 썰어서 소금물이 자박자박 차도록 담그는 김치다. 파김치는 파를 가지런히 정돈하여 담근다. 무동치미는 소금물을 많이 넣어 무를 흥건히 담그는 김장김치다. 무장아찌는 무를 작게 잘라서 양념을 넣고 버무린 김치다. 지역 특산물들을 활용한 표고김치, 유자김치, 고추김치 등이 있는가 하면 진도지역 일부에서는 레시피에 울금을 넣기도 한다. 파래 물김치나 감태 김치, 톳김치는 해안지역에서 발달한 김치다. 고구마순 김치는 고구마 재배가 많았던 무안, 함평지역에 남아 있는 전통 김치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저장술이 발달하면서 김치의 종류가 획기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산간지역 해안지역, 지역에 따라 종류가 다르다

내가 조사한 사례들을 들어본다. 강진군 병영면 김씨의 경우 장흥 유치면 산간에서 병영 소읍으로 혼인했다. 민물새우를 이용하여 김장김치는 물론 계절김치까지 담근다. 이것이 산간지역의 영향 때문인지 개별 기호의 차이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약간 비린내가 날 수도 있는 민물새우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흥읍에서 장흥 유치면으로 혼인해 산골짜기 마을에서 거주하는 또 다른 김씨는 친정 고흥의 특산물인 유자와 시댁 장흥의 특산물인 표고를 사용하여 김치를 담근다. 산간의 각종 풀들을 뜯어 계절김치를 담그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다. 해남 군내에서 혼인을 한 장씨, 붉은 고추를 씨와 함께 넣어서 칼칼한 맛이 우러나게 하는 배추 싱건지를 담근다. 너무 많이 매울 경우 파프리카로 중화시킨다. 부자재로 과일을 많이 넣고 김장김치든 계절김치든 모두 매실액을 넣는다. 농촌에서 소도시 목포로 혼인하여 거주하는 박씨, 과일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친정의 김치를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했다. 액젓이나 새우젓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곰삭은 맛을 즐긴다. 무안 몽탄에서 일로읍으로 혼인한 정씨, 멸치액젓을 아주 짜게 넣는다. 젓갈이 너무 짜기 때문에 절간한 배추를 물에 씻어서 담으며 새우젓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메주가루 엿기름가루 고추김치, 고구마순 김치가 전통김치일까?

승주 송광사 근처에서 태어나 무안 월선리로 혼인한 강씨, 늦가을 추수 후에 풋고추 달린 고춧잎을 일주일간 소금물이 절인다. 무청을 한나절 정도 절인다. 두 가지를 혼합하여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다. 메주가루하고 엿기름가루를 함께 넣는다. 승주 지역의 전통이라고 말한다. 장성군내에서 혼인한 모씨, 고구마줄기 김치가 특징적이다. 껍질을 벗긴 고구마순을 살짝 데친다. 소금물에 약 30분 정도 절인다. 건져내서 양념에 버무린다. 양념에는 젓갈, 고춧가루, 찹쌀죽, 깨 등을 넣고 부자재로 모양 내 썬 생양파를 넣는다. 제주도에서 무안으로 혼인한 고씨, 고구마순 김치를 시할머니로부터 배웠다. 대파뿌리, 가지꼭지, 사과껍질, 양파껍질 등을 말려서 저장해 둔다. 다시마 우려낸 물을 사용하고 갈치젓을 쓴다. 홍시를 채에 밭아서 넣는다. 시어질 때까지 아삭거리는 맛이 난다. 이것이 개인적인 노하우일까 전통적인 것일까? 메주가루와 엿기름가루를 사용하는 경우나 고구마순 김치 모두 전통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긍이 간다. 김치의 역사적 추적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생략한다. 발효 음식 중의 대표적인 것이 김치다. 술과 식혜 등에 근접한 경우도 확인된다. 지역특성에 알맞은 재료들을 다양하게 활용한다는 점, 보편적이다.

여수 거문도의 갓김치와 해조류 김치

거문도내에서 혼인하여 여수로 이주한 박씨, 바른 먹거리 운동을 하며 반찬가게를 운영한다. 여수지역 도시민들이 김치를 담아먹거나 구매하는 현황을 포착할 수 있다. 시댁인 거문도에서 담아먹던 갓김치, 아무 재료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소금물에만 담갔다가 1~2개월 후 꺼내서 물에 씻어 먹는다. 토종 갓김치가 아닌 일명 일본산갓이라고 하는 종은 톡 쏘는 맛이 거의 없는 채소다. 물을 거의 주지 않고 키우면 쏘는 맛이 좀 있다고 하지만 토종갓에 비할 바는 아니다. 토종갓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원재료는 갓, 배추 등의 채소이지만 발효를 돕는 부자재는 파, 청각, 양파 말린 것, 양파 설탕 절임, 무말랭이, 양파청, 고추절임물 등이다. 다시마물은 다시마에 멸치, 새우, 버섯 등을 넣고 푹 고아 만든다. 해조류로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톳김치, 파래 물김치, 감태 김치 등이 그것이다. 예컨대 톳김치를 담글 때는 고구마 줄기 김치처럼 살짝 데쳐내는 것이 기술이다. 비율은 본 재료인 배추나 갓, 무 등이 7할 정도, 부자재와 다시마물 등의 기타 부산물이 3할 정도 되게 한다. 젓갈은 일체의 민물새우는 사용하지 않고 국새우나 생새우, 오젓, 육젓 등을 사용한다. 멸치젓은 직접 담아서 3년 정도 숙성시킨 후에 한지나 당목(베)에 밭아서 맑은 것만을 사용한다. 생강이 많이 들어가면 맛이 쓰다. 마늘 8할에 생강 2할 정도 넣는 것이 좋다. 거문도의 전통적인 사례와 함께 여수지역 도시민들이 김치를 생각하고 대하는 태도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사례다.

김장김치, 오랫동안 삭혀야 꺼낼 수 있는 것들

김치야말로 가장 온전한 슬로푸드다. 기다렸다 먹어야 하기에 슬로 라이프다. 생김치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소금 삼투압 과정을 거쳐 발효한 이후에 제 맛이 난다. 김치의 원리는 어떤 양념과 부자재를 넣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궁합을 말함이다. 남도지역은 주로 멸치젓갈을 많이 넣어서 깊은 맛이 난다. 옛사람들은 소금도, 젓갈도 3년 정도 묵은 것을 선호했다. 이 젓갈냄새를 그윽하다, 곰삭았다 등으로 표현한다. 김치의 지역성이라는 게 뭘까? 결국 제철에 나서 지역적 특색을 갖는 재료들을 사용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계절에 따른 차이도 마찬가지다. 여름 열무는 찬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름감자, 여름 보리밥을 갈아서 발효 탄수화물을 만든다. 반대로 겨울철이 되면 대개 찹쌀을 갈아서 사용하거나 남도 일부에서는 차조를 사용한다. 절임의 정도에 따라 젓갈의 양이 달라진다. 전통적으로는 찹쌀로 윤기를 낸 사례들이 보고되는데, 지금은 물엿을 사용하는 사례들이 늘었다. 심지어 젓갈에도 물엿이 들어가는 편이다.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조미 부자재를 가능한 넣지 않고 스스로 발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자재가 많이 들어가면 발효의 속도가 빨라진다. 김치는 건강과 관련이 깊다. 예들 들어 몸이 차고 냉한 사람들은 인공물을 가미한 젓갈이나 물엿을 사용한 김치를 먹으면 바로 신호가 온다.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된다. 궁합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궁합이 어디 몸뿐이겠는가. 쓴맛과 감칠맛의 차이는 계절과 지역, 사람과 세대 간의 궁합으로 비유될 수 있다. 김장의 가장 큰 의미는 저장과 숙성, 곧 기다림이다. 설날에 뵈옵는 부모님, 고향의 어르신들이 바로 김장김치 같은 분들이다. 김장과 김치, 저장과 삭힘, 토산물과 지역성, 시대와 세대 간의 궁합, 오랫동안 삭혀 온 뜻을 상고하는 시간, 잠시도 짬을 못내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음식이 숙성(熟成)된 김치 아닐까. 레비스토로스가 표방했던 날것과 익힌 것을 넘어선, 그 시큼한 익힘(成熟) 말이다.

남도인문학팁

남도 김치의 감칠맛을 내는 법

삼투압으로 발효된 김치를 저장성 김치라 한다. 김장김치가 그것이다. 겉절이 김치는 생김치다. 고추, 마늘, 생강 등의 양념 외에 파, 청각, 양파 말린 것, 양파설탕절임, 무말랭이, 양파청, 고추절임물, 심지어는 울금가루까지 부자재로 사용하는 사례들을 추적해봤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이런 부자재를 사용하여 맛을 내는 방식이 전통에 가깝다. 멥쌀은 점성이 없어 삭히는데 어려움이 있다. 멥쌀고추장을 안 만드는 이유다. 깊은 맛이 없으면 감칠맛이 나오지 않는다. 멸치, 새우, 다시마, 버섯에 물을 넣고 푹 삶는다. 이 물로 죽을 쑤게 되면 감칠맛이 난다. 혀 안을 감아 도는 맛이다. 예컨대 생된장에 물을 풀어서 먹는 것과 끓여서 먹는 차이다. 원재료는 배추나 채소이지만 젓갈이 필수다. 쌀, 과일, 곡류가 당분이 되어 발효를 돕는다. 특히 찹쌀이 재료에 들어가는 것은 미생물 발효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사과, 배, 단감이나 홍시를 넣기도 한다. 다시마, 멸치, 새우, 버섯 등에서 나오는 천연의 맛이 조화를 이루어 혀 안을 감아 나오는 맛을 만든다. 동치미는 젓갈을 넣지 않고 소금만으로 발효를 시키기에 담백하다. 마늘, 생강, 배, 파 등을 넣어서 만든다. 시간이 많이 지나야 발효가 된다. 풀(쌀)이 많이 들어가거나 부자재를 많이 넣고 온도를 높이면 발효가 빨라져서 김치를 빨리 먹을 수 있다. 단기간에 먹을 김치일수록 부자재의 당분을 높이는 것이 기술이다. 김치는 변화해왔고 변화해 간다. 감칠맛을 높이는 기술도 변해 갈 것이지만 남도라는 토양에 기반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우리 삶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도명품 김치

남도명품 김치

남도명품 김치

남도명품 김치

김치. 뉴시스

돌산 갓침치. 여수시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