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지중해와 해륙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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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동아지중해와 해륙문명
  • 입력 : 2019. 02.27(수) 12:50
  • 편집에디터

거꾸로 본 동북아지도. 서해와 동해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내해로 위치하고 있다. 동북아 문화정책 연구소 제공

1997년 6월 15일 뗏목 한 척이 중국 절강성 닝뽀(宁波)를 출발했다. 이름은 '동아지중해호', 17일 만에 전남 흑산도에 도착하였다. 해류와 바람만을 의지한 원시적 항해였다. 중국 동남부 해역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이 길을 사단항로라 한다. 성공적인 탐험을 이끈 학자는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 이후 이 공간을 '동아지중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선사시대에도 자연조건이 두 지역 간의 교류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뗏목이 닿았던 흑산도는 서긍(徐兢)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말했던 흑수양(黑水洋)에 속한다. 이른바 크로시오 해류(黑潮)의 물길이다. 흑산도는 648년 나당군사동맹이 체결될 때에도 황해 횡단 항로상의 중요한 기점으로 부각되었다. 660년경부터 '산둥반도-흑산도-서남해안코스', '절강성-흑산도-서남해안'코스 등의 횡단항로가 활성화되었다. 장보고의 해양교역 이후 고려청자와 관련하여 도자문화의 전파로로 해석되기도 한다.

윤명철의 역사 탐험, 실증주의에서 가치지향까지

윤교수는 최근 동아지중해론을 심층 확장시켰다. 고조선문명권과 해륙활동(고조선문명총서)에서다.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다른 일반적 접근을 포함해 정신의 측면을 강조한다. 가치 지향적 역사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다. 추상성과 선언성을 뛰어넘어 현실성을 갖추어야 하는 전제도 지적했다. 이것이 경시되면 목적 없는 교조적 사고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역사학의 가치지향성이 때때로 정치적인 목적에 희생당하는 사례들도 있다. 고조선의 문화적 범주를 논구의 대상으로 삼아, 고인돌, 동검, 청동거울, 토기 등 생활도구, 민속, 신앙, 종교, 사상 등을 통해서 구체화시키는 방법론이 돋보인다. 농경문화는 면(面)의 문화, 유목문화는 선(線)의 문화, 수렵문화는 점(點)의 문화, 해양문화는 점선(點線)의 문화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점선을 융합하여 독해하니 한반도가 아니라 해륙이 되고 해륙문명의 선언이 가능해진 것이다.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강(江) 문명권의 추적과 접근들은 내가 윤교수께 배운 관점 잡기 중의 하나다. 고조선 문명권에 소속되면서도 유기적이며 상호 호혜시스템을 갖춘 몇 개 소문명의 존재들을 열거하고 있다. 송화강 문명, 요하 문명, 대동강 문명, 한강 문명 권 등이 그것이다. 나도 영산강문명권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고 남도 정신의 뿌리를 헤아려가고 있는 중이다.

동아지중해론에서 해륙문명론으로

특별한 것은 고조선문명을 해륙문명론으로 해독하는 방식이다. 기왕의 반도문명론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동안의 반도사관, 반도문명권에 대한 대응방식일 수도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지에 이어진 땅'이라는 반도의 소극적 의미를 극복한 발상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접근이라는 점에서 혜안이 돋보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터(field)와 다핵(multi-core)이론 등이 준비된다. 스티븐호킹의 이론을 빌려 단위시간 개념을 설명한다. 그간 주장했던 동아지중해론을 극복 혹은 확장시키는데 동서양의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대거 동원된다. 윤교수가 인용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 얽혀있는 스티븐호킹의 이론은 신화의 이해방식과 견주어 비교해볼 수 있다. 단군과 신시(神市,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밑에 세웠다는 도시)를 포함한 고대 신화들의 폭넓은 해석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줄곧 개펄의 땅을 있음과 없음의 대대(對待)로 풀이했던 것처럼, 실존과 신화의 세계를 넘나드는 해석 방식이다. 역동적인 뫼비우스의 띠를 이해하고 설명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접근을 통해서 고착되어 있는 국가단위, 민족단위에 대한 이해들을 훨씬 다채롭게 확장할 수 있다.

설화를 통해 보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네트워크

내가 전공하는 무문자 시대의 전통, 곧 설화나 노래의 세계로 돌아와 본다. 중국 쩌우산군도(舟山群島) 푸어퉈다오(佛陀島)와 한, 일 관음신앙은 그 중 핵심적이다. 지금까지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동아시아 네트워크 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 고대의 제사유적인 전북 부안 죽막동 출토유물과 중국 상하이 근처의 지엔캉(建康), 일본의 오키노시마(沖の島) 출토유물들의 유사성도 동일한 맥락에서 거론된다. 나는 십수년 전 논문에서 죽막동 유적을 동아시아의 문화적 프렉탈로 호명한 바 있다. 그뿐인가. 중국의 서복(徐福)이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무리를 이끌고 동쪽 바다로 항해한 것이 한국과 일본에 미치고, 우리나라 왕인박사의 동쪽진출(東道)이 일본에 미쳤다고 해석된다. 서복의 동도(東渡)에 대해서는 본 칼럼에서 다루기도 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각국의 설화가 상호 네트워크를 설명해준다. 베트남의 리(Ly)왕조가 한국으로 와서 정선이씨(旌善李氏)와 화산이씨(花山李氏)의 시조가 되었다. 베트남 왕조의 흥망성쇠와 한국의 성씨들이 직접 관련된 사건이다. 중국 제나라 왕족이었던 전횡(田橫)이 충남 외연도와 전북 어청도로 와서 마을의 시조가 되고 마을제사의 신격이 되었다. 한, 중, 일, 베트남 등의 설화 속에는 긴밀한 상호 네트워크 코드가 숨겨져 있다. 이른바 한자문화권으로 묶이는 권역이다. 고대에서 고려, 조선까지 이 지역에서 상호 표류한 기록도 주목할 대상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표류 항로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동아시아 네트워크다. 물길 따라 바람 따라 국경을 넘는 것들을 새삼 주목하는 이유다.

월경(越境)하는 바다쓰레기, 국경을 넘는 오염과 질병들

후쿠시마(福島) 사태가 단적인 예다. 직접적인 피해는 일본 당국이지만 그 간접적인 영향은 한, 중, 일, 베트남에 넓게 걸쳐있다. 중국 산둥반도의 원자력발전 가상 사고를 시뮬레이션해보면 그 피해의 대부분이 한반도에 집중된다. 해양쓰레기는 자유로이 월경하여 계절별로 여기저기 해안에 쌓여나간다. 태평양에는 이미 광대한 쓰레기섬이 조성되어 어류의 회유를 방해하거나 생존에 위협을 주고 있다. 싸스(Sars)등 질병이 국가를 넘어 창궐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어 왔다. 환경오염, 질병 등도 아이러니하게 일종의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가장 첨예한 문제는 미세먼지다. 이 문제는 이미 환경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아시아를넘어 인류 전체의 문제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자유로이 월경하는 해안표착 쓰레기를 통해 동아지중해의 영향관계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챌린지 운동이 확산된 이유도 무관하지 않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 해야 할 것인가? 바로 지금이다. 쓰레기를 버린 것도 우리고 오염을 해결할 사람도 우리다. 이에 대한 동아시아적 담론이 절실히 요청된다. 과거시대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적 교류와 동일하게 미래시대의 환경위기 영향은 그 비중을 더해갈 것이다. 동안에 유토피아적 전망만을 다루어 온 경향이 있다. 동아시아 문명의 네트워크가 함의하는 다양한 지점들을 포착해야만 한다. 바다 쓰레기 문제에서 익히 드러나듯이 디스토피아적 고난까지 공유하고 나누어야 할 지점에 와있음을 체감한다. 비유적으로 이를 헤테로토피아적 세계라고 한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킨 그물망과 같다. 해양설화가 왕래하듯이 국적 모를 해양쓰레기들이 왕래한다. 문화가 왕래하듯이 가축과 인간을 위협하는 질병들도 왕래한다. 흐르는 바다는 좋은 것만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도 실어 나른다. 정치적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단절시킬 수 있다지만 자연환경은 인간의 힘으로 단절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환경오염은 상당부분 막아낼 수 있다. 반도사관을 넘어 해륙문명론으로 확장시켜야 할 이유는 분단모순의 극복을 넘어 거의 모든 문제에 걸쳐있다. 한국의 우수성 주장 따위가 아니다.

종전선언과 해륙문명의 부활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이 하노이에서 만났다. 세기적 만남이다. 우리의 기대야 하늘간데 없이 높지만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스몰딜이 사실은 빅딜이다. 종전선언은 해륙문명의 부활이다. 정부 단위로 해결할 일들은 국가 차원에서 대응한다. 국가적으로 풀지 못할 일들은 NGO나 기타 사회활동으로 풀어갈 수 있다. 섬 분쟁 등의 영토 문제, 해양쓰레기의 처리문제, 지구환경위기의 대응 문제, 경제의 문제, 빈부 격차와 빈곤의 문제, 종속과 지배에 대한 갈등, 자유와 평등의 문제 등 과제가 산더미다. 전쟁이 유효한 시기가 있었다. 가슴 아프게도 우리는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었다. 남북 갈등, 분단 모순이 우리를 옭아맸다. 지금은 전쟁이 유효한 시대가 아니다. 전쟁으로 균형을 잡을 만큼 민족분란이 창궐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 문제의 극복을 온전히 우리끼리만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종족단위의 역할이 강조되거나 유효했던 시기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근대국가 이후의 국경선은 지금도 물론 유효하지만 종족을 넘어 국가를 넘어 공동대응할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헤테로토피아적 성찰과 대응이 요구된다. 성찰적 민족주의를 주목하는 이유다. 종전선언은 당위다. 그러지 않으면 공멸한다.

남도인문학팁

해륙문명의 공명(共鳴)에 대하여

지면이 허락될 때마다 더불어 울리는 공명을 얘기해왔다. 우리말로 '어울림'이다. 마당밟이(지신밟기)도 땅을 울리는 것이고 무당이 성지에 가서 굿을 하는 것도 신을 울리는 것이다. 소리(音, Sound)를 울려 음악(樂, Music)을 만들고 이를 인간과 공동체, 사회와 자연, 우주의 신령들을 불러내어 공명(共鳴)하게 한다는 뜻이다. 북미 두 정상의 만남이 곧 공명이다. 더불어 울리니 동아시아의 공명이다. 정치, 문화,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환경오염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걸쳐있는 공명으로 확산된다. 운명공동체라는 언설은 더불어 공명하라는 뜻이다. 공명(共鳴)하지 않으면 공멸(共滅)할 수밖에 없다. 잉카인들의 성모로 신격화된 파차마마(Pachamama)를 다시 비유한다. 볼리비아의 에보모랄레스 대통령이 세계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외치며 잉카인들의 성모 파차마마를 들고 나온바 있다. 기후변화에 공동 대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멕시코 칸쿤 국제협약을 거부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항하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화해와 평화의 시대가 온다. 해륙문명의 부활을 꿈꾸는 우리에게로 공명악(共鳴樂)의 지휘봉이 넘어오는 중이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2017년 6월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환골탈태 수준의 자기 혁신을 주문하는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 장관은 또 글로벌 해양강국을 강조하기 위해 거꾸로 된 세계지도를 걸고 취임식을 진행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