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의 섬 핑글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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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색맹의 섬 핑글랩
  • 입력 : 2019. 03.20(수) 11:02
  • 편집에디터

미크로네시아 핑글랩 아일랜드 아이들의 스틱댄스 재현 장면. 필자 제공

망망대해 태평양 한가운데, 고대 해상 유적 난마돌(Nan Madol)이 있다. 미크로네시아 수도 폰페이 남쪽의 테먼(Temwen) 섬에 소재한다. 내가 답사한 2013년, 거의 주목되지 않은 유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92개의 인공 섬으로 이루어진 해상 건축물이다. 서기 500년에서 1500년까지 약 천 년 동안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주민족이 세운 사우델레우르 왕조(Saudeleur Dynasty)의 수도라는 것 외에는 아직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매우 미스테리한 해상 유적이다. 이스터섬의 거석처럼 세계의 불가사의로 분류해야 할까. 누가 이 바다 위에 돌 구조물을 축조하였을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인돌일까. 하지만 돌들을 고여서 만들지 않았으니 고인돌이라고 하기에는 무리다. 돌들을 세워서 만든 것이 아니니 선돌이라 하기도 어렵다. 언뜻 보기에는 고분 혹은 고대의 성(城)일 수도 있겠다. 폰페이에서 동쪽 해상으로 한 시간 남짓 경비행기를 타고 가면 아주 작은 섬 핑글랩이 나온다. 영어권 발음으로는 핀지랩이라고 하지만 현지 발음을 존중하여 핑글랩이라고 부르겠다. 이 작은 섬의 전통적인 왕을 난마르키라고 한다. 지금은 수도 폰페이에 이주해 살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이 섬을 관할하는 지도자다. 나는 이 '난마르키'가 고대 유적 '난마돌'과 모종의 관련이 있지 않나 추측해보고 있다. 춤과 노래로 전해지는 구비전통이 혹시 이를 말해줄 수 있지는 않을까.

폰페이의 해상 유적 난마돌에서 핑글랩의 왕 난마르키까지

다소 장황하지만 올리버 색스의 묘사를 인용해본다. "1775년 무렵 렝키에 태풍이 핀지랩(핑글랩) 일대를 덮쳤다. 섬 인구의 90%를 그 자리에서 죽였다. 생존자 대다수도 기근에 시달리다 죽어갔다. 코코야자와 브레드프룻(빵나무), 바나나를 포함하여 식물 서식군 전체가 파괴되었다. 섬 주민이 먹을 것이라곤 물고기밖에 남지 않았다. 태평양 일대에서 악명 높은 태풍은 핀지랩 같은 산호섬(높이가 해수면에서 3m도 미치지 못하는 섬)에는 특히나 치명적일 수 있다. 거대한 풍랑이 일어나면 섬 전체가 물에 잠겨버릴 수 있다. 이 태풍이 몰아친 당시 핀지랩은 사람이 정착해 산 지 800년이나 되어 인구도 1천 명에 육박했다. 초기 정착민이 어디서 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세습왕인 난음와르키(난마르키)가 다스리는 복잡한 계급제도, 구전 문화와 신화, 폰페이 '본토 주민'들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분화된 언어가 있었다. 이 번창하던 사회의 인구는 태풍이 닥친 지 몇 주 만에 난음와르키와 왕족 일부를 포함한 생존자 2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핀지랩 주민들은 번식능력이 뛰어나 수십 년 만에 인구가 백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대대적인 번식-그리고 불가피한 근친교배-으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전에는 희귀했던 유전적 특징이 퍼지기 시작했다. 1820년, 그 태풍이 닥친 지 4세대 만에 하나의 새로운 질병, 눈질환을 가진 환자가 태어났다. 몇 세대 만에 그 수치가 인구 전체의 5% 이상으로 급증했다. 오늘날까지도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색맹 돌연변이가 처음 나타난 곳은 몇 세기 전 캐롤라인 제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퇴행성 유전자다. 인구 규모만 크다면 두 보유자가 결혼할 확률은 매우 낮아서 자녀들에게 그 질환이 나타날 확률도 매우 낮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태풍으로 뒤집혔다. 계보학자들의 연구는 모든 후대 보유자의 최초 조상이 바로 그때 살아남았던 난음와르키 본인이었음을 시사한다."

마스쿤, 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는 이곳 핑글랩 섬의 색맹을 연구해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지난해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베스트셀러를 낸 인물이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미크로네시아를 두 번 조사하면서야 올리버 색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의 책 몇 권을 뒤늦게 주문했지만, 아직 완독하지 못했다. 핑글랩 아일랜드를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조사단은 최소의 짐만을 챙겨 경비행기에 올라탔다. 간신히 여섯 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미크로네시아 수도 폰페이에서 7인승 경비행기로 수요가 있을 때만 오갈 수 있다. 짐을 싣는 무게만큼 탑승 인원이 줄어든다. 나는 주로 민요와 설화를 중심으로 한 구비전통에 관해 관심을 갖고 현지민들을 만났다. 제보자가 핑글랩언어를 구사하면 영어 통역자를 통해 구술받는 형식이었다. 핑글랩 언어가 동일 문화권인 폰페이와도 확연하게 다른 언어였기 때문인지 노랫말이나 설화를 쉽게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없었다. 올리버색스의 지적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곳은 완벽하게 다른 세계라고 상상할 만했다. 색맹이라는 컨텍스트, 내가 핑글랩섬에 머물면서 설화와 민요를 조사하는 동안 제보자들은 실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거나 자주 눈을 깜박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한 빛을 보면 눈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돌리는 이유는 어느 정도 떨어진 데 있는 작은 사물이나 사물의 자세한 형태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 기이한 형태를 뜻하는 용어가 마스쿤('안 보인다'라는 뜻)이다. 핑글랩섬을 호명할 때, 보통 색맹(color blindness)의 섬이라고 하거나 마스쿤이라 통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마출판사에서 2015년 이 책이 번역되었으니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있다.

핑글랩 아일랜드의 생활상

핑글랩 섬에는 2013년 현재 200여명이 살고 있다. 유동인구를 포함하면 좀 더 올려 잡아도 될 듯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 일부는 수도 폰페이 등지로 진학했다. 거주공간은 크게 4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섹션에는 교회가 중심을 이루며 일요일에는 중앙의 큰 교회에 모여 예배한다. 1섹션은 Perku Nemall(페리쿠 나말), 2섹션은 Plen Kous Kahkahlia(펠렌코스 카깔리아), 3섹션은 Mweniag Peisik(마니아 페이식), 4섹션은 Sekar kapw Ihlong(세카라캅 이일롱)이라 한다. 전통적인 왕은 3섹션에서 살았고, 수도 폰페이로 이주했지만 콘크리트 집은 남아 있다. 전통적이 왕 난마르키, 기독교지도자(Priest)와 선출직 지도자(Mayer)와 함께 삼각 지도군을 형성하고 있다. 열대 우림에는 야자수와 브레드푸룻, 풀들이 우거져 마치 폐허가 된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열대 우림이자 습기가 많기 때문에 풀들이 잘 자라고 이끼 또한 많다. 술은 일절 금지되어 있어서 전통적인 '사카우(술 이름)'등을 만들지 못한다. 일부 청소년들이 폰페이에서 들어온 설탕 등으로 술을 만들어 먹는 사례도 있다고 들었는데, 발각되면 감옥에 가두거나 풀을 뽑는 징벌형을 받는다. 식량은 과일과 물고기다. 바나나, 브레드프룻(빵나무), 코코넛 등이 주류다. 물고기 외에 랍스터 등의 게 종류, 조개류 등이 있다. 저장식물로는 우리의 '마'에 해당하는 'Taro'가 대표적이다. 타로 농장이 소규모로 구획 운영 중이다. 코코넛을 발효한 음식 등 소수의 저장 음식들도 있지만, 사시사철 과일이 열려있기 때문에 저장의 필요를 크게 느끼지는 못하는 듯하다.

춤과 노래가 말해주는 길, 핑글랩의 무문자 전통

미크로네시아를 주목했던 '이시카와'는 다음과 같이 이 지역을 묘사했다. "남양도민의 비극은 그들이 문자를 갖지 못한 점에 기인한다. 문자가 없는 민족은 전통이 없다(중략). 전통이 없는 곳에는 국가도 없다. 카나카족 흑인들은 벌거벗은 등을 태양에 노출한 채 물고기를 잡고, 원숭이처럼 나무에 올라 야자를 따고, 단지 오늘 이 순간을 짐승처럼 살고 있다(중략). 그들의 의식에는 과거가 존재하는 않는다. 역사도 없고 선조도 없다." 무문자사회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문자를 중심으로 묘사한 내용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은 문자시대를 넘어 디지털시대로 접어들었다. 문자만이 전통을 담보하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미크로네시아 구비전통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서양문명이 침입한 이래 상위 그룹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무문자 사회였던 전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설화와 민요가 그 중심이라 생각되는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광범위한 조사가 시도되었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무문자 전통으로 되새김할 축제들도 있다. 1월 1일에는 카누경기가 있다. 2월 2일은 크리스천 기념일, 3월 8일은 여자의 날이다. 4월에는 부활절이 있고 5월 19일은 크리스천 기념일이다. 6월에는 첫 번째 과일을 추수하는 뭉 오뭉(Mwung omuung)이 있다. 이때부터 8월까지 전통 축제인 송마르(Songmar)가 계속된다. 과일 추수는 전통적인 왕이 관여한다. 폰페이에 나가있던 왕이 이 행사를 위해 들어온다. 이때 구비전통의 맥락을 담은 챈트를 부르며 스틱댄스를 선보인다. 관련 정보는 차후 소개하기로 한다. 8월 28일은 인비오까이라는 축제를 벌인다. 10월 10일은 핑글랩 주민의 날,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 데이다.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은 카마티프세라우 성만찬식을 갖는다. 이들 행사를 보면 오래 전부터 기독교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 난마르키가 추수에 관여하는 등 전통적인 신앙이나 관념 또한 병존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핑글랩의 무문자 전통, 설화와 챈트(민요) 등 구비문화에 대해 추적해보는 것이 내게 남겨진 숙제다.

남도인문학 팁

이차대전과 남태평양, 한국인과 한국

달포 전에 오키나와의 이차대전 유해발굴과 관련하여 한국인들의 존재를 알리는 보도들이 있었다. 미크로네시아라고 다르겠는가. 이차대전을 전후해서 일본군으로 참여한 한국인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주목한다. 이수열의 논고(동북아문화연구, 2011)를 보면, 1937년 중앙공론사 특파원 자격으로 일본군과 함께 상해, 소주, 남경 전선에 동행했던 이시카와의 보고를 인용하고 있다. '生きている兵隊'('中央公論' 1938년 3월)가 그것이다. 그러나 중국 전선의 일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강간 등을 통해 전쟁의 실상을 묘사한 동 작품은 곧이어 발매금지 처분을 받는다. 연전에 본 지면을 통해 내가 보고한 피스섬의 한국인 유복자 '베니또'의 사례가 떠오른다. 남태평양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참치를 잡는 우리의 원양어선들이 미크로네시아에 정박하거나, 추크(Chuuk)주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나가 있는 것이 거의 전부이지 않을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베리아 연해주 등 대륙 못지않게 미크로네시아 등 태평양의 바다가 중요하다. 북방으로 가는 길과 남방으로 가는 길, 두 길을 모두 포섭하는 지혜 말이다. 거기에 덧붙인다. 문자를 넘어선 디지털시대의 메커니즘이 오히려 무문자전통의 사례를 통해 풍부해질 수 있다는 상상을.

잭 토빈 콜렉션 중에서, 미크로네시아 마샬 스틱댄스 장면. 필자 제공

미크로네시아 핑글랩 아일랜드 설화민요조사 장면. 필자 제공

난마돌(Nan Madol)은 태평양 서북부에 위치한 미크로네시아 연방공화국의 폰페이섬 남동부에 조성된 인공섬들로 이루어진 일군의 고고 유적지이다. http://www.unesco.org/ 제공

난마돌(Nan Madol)은 태평양 서북부에 위치한 미크로네시아 연방공화국의 폰페이섬 남동부에 조성된 인공섬들로 이루어진 일군의 고고 유적지이다. 뉴시스/AP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