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육자배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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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육자배기란 무엇인가
  • 입력 : 2019. 06.19(수) 13:46
  • 편집에디터

광주지산유원지에서 남도민요하는 강송대 박초향 명창. 강송대 명창 제공

어머니의 '흥그레타령'으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방(작은방)에 상방을 모셨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상방에 메를 지어 올렸다. 메를 올릴 때마다 향을 피우고 나지막하게 우셨다. 아니지 노래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것이 노래인지 울음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초하루와 보름날이면 머리 풀고 앉아 통곡을 하셨다. 어린 나의 아침잠을 깨는 이 울음소리는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던 소리였다. 잠 많은 내게 그 울음들은 때때로 꿈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혼몽의 세계로 인도했다. 몇 시간이면 기억에서 사라지던 수많은 꿈들 사이로 마치 낯익은 손님처럼 들어오곤 했다. 그때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일종의 선율 파동들. 어떤 날 이 소리들은 잔솔들 헤집고 뒤까끔(뒷산)을 거슬러 올라가 하늘 가득 퍼져나가는 듯했다." 내가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칼럼을 시작하고 나서 달포쯤 되던 때 꺼냈던 어머니의 흥그레 타령 대목이다. 그랬다. 나는 육자배기를 흥그레로부터 읽어냈다. 아버지의 탈상으로 이어진 내 넋두리를 좀 더 인용해본다. "부나방들 수백 마리가 날아들던 이듬해 여름 날 아버지의 탈상을 했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들어있는 영여와 누런 복관들이 걸려있는 모방에서 잠자지 않아도 될 것이란 기대를 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더 이상 나의 아침잠을 깨지 않을지.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모방 가득 걸려있던 마포 삼베 상복들이 마당 가득 쌓여 불태워진 의례 후에도 어머니의 흐느낌은 그치지 않았다. 나지막했지만 때로는 격정적이고, 가느다란 울음처럼 보였지만 때로는 고운 선율을 가진 그런 파장들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울음이 아버지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태내로부터 들었던 소리였을까. 그렇게 싫었으면서도 매우 익숙한, 그래서 마치 탁상시계의 울림이나 벽시계의 괘종소리를 듣고서 아침잠에서 깨듯이, 내게는 그 곡조 자체가 일상화되어 있던 노래 아니었던가. 어머니의 울음이 아름다운 노래였음을 깨닫게 된 것은 철이 들고도 한참 지난 후였다."

육자배기란 이름은 어디서 왔는가

어머니의 일상들을 내밀하게 구술하듯 선율에 담아내던 노래, 남도지역에서는 통상 <흥그레 소리>라 했다. 흥얼흥얼 내면의 한들을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이 노랫소리가 어머니의 '가슴앓이(이를 남도 사람들은 흔히 '가슴애피'라 했다)'에 대한 치료제였음을 깨닫고 나서, 나는 불현듯 솟구치는 통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어머니의 <흥그레>는 아리랑 열두 고개였던 것이다. 한 고개 넘을 때마다 호랑이에게 떡을 떼어주고 마지막에는 팔다리와 온 몸을 나눠주던 그 열 두 고개 말이다. 우리는 왜 하필 어머니를 내세워 열두 고개 설화를 만들고 종국에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서사를 전승해왔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네 어머니들이 가진 통한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아리랑 칼럼을 통해 언급해둔 바 있다. 어머니의 흥그레 소리는 박자를 알 수도 없고 특별한 선율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슴 미어지는 한을 푸념처럼 뱉어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어떻게 <육자배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형성이나 재구성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들이 있지만, 제목에 관해서는 여섯 박자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 외에 별다른 연구를 찾아보지 못했다. 배기는 '두 살배기', '나이배기', '공짜배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 아이의 나이나 몇몇의 명사 뒤에 붙어서 '그런 사람' 혹은 '그런 물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인다. '점박이(점백이)', '장승박이(장승배기)', 등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무엇이 박혀있거나 한곳에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접미사로도 쓰인다. '배기'와 '백이(박이)'가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육자배기'는 '여섯 박자(육자)로 고정된 노래'라는 뜻으로 환원된다. 그렇다면 장단도 선율도 특별하지 않던 노래가 어떻게 여섯 박자로 고정되었을까? 나는 이를 어머니의 울음과 한숨 속에서 찾아내곤 한다. 울음 섞인 푸념을 늘어놓으시다가 차오른 숨을 내쉬는 패턴 속에 여섯 박자의 내재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대개 4음보의 노랫말들을 늘어놓고 2음보의 숨구멍을 두는 형태, 이것이 종국에는 토속 육자배기라는 이름을 얻어 남도를 대표하는 곡목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요 권역을 구분할 때 남도지역을 '육자배기토리권'으로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슬픈 악조를 뜻하는 계면조를 들지 않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남도를 상징하는 민요 육자배기

흥그레로부터 발전한 육자배기가 근대기를 거치면서 전문가들에 의해 재창작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속민요 혹은 남도잡가 등으로 호명한다. 토속민요나 향토민요와 구별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토리권을 주장했던 이보형의 연구에 의하면 남도잡가 육자배기는 '흥그레타령-김매기 산타령-옛 육자배기-근대 육자배기'의 변천과정을 거친다. 나도 이 견해를 받아들여 흥그레에서 육자배기로의 변이를 주장해왔다. 김혜정 교수도 향토형 육자배기와 잡가 육자배기로 나누어 접근한바 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에 경서도 잡가의 유행에 영향을 받아 잡가로 변화되었다는 것. 흥그레타령에서 출발한 향토민요 육자배기가 당시 유행하던 유랑패들의 영향을 받아 잡가로 재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도잡가 흥타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천안삼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하는 흥타령이 있다. 이것은 '천안삼거리'에서 유래한 노래로 일명 <경기민요 흥타령>이라 한다. 후대에 와서는 잡가 <흥타령>으로 재창조되어 널리 불렸고 특히 시조형식으로 재창조되어 시가문학의 한 유파를 이룬바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듣는 "아이고 대고 허허~응 허~성화가 났네 헤~"하는 <남도잡가 흥타령>은 어떤 노래인가? 손인애 교수는 이 노래의 형성 시기 및 그 과정이 사당패소리에 근거한 경서도 통속민요와 흡사하다는 점, 따라서 남도 사당패 계승집단 또는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집단이 형성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육자배기의 재창조과정과 같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남도잡가 흥타령의 정서와 한(恨)의 세계는 육자배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재창조의 과정에 보렴, 화초사거리, 긴육자백이, 자진육자배기, 흥타령, 새타령, 성주풀이, 개고리타령 등이 함께 한다. 오늘날 남도잡가 메들리로 통칭되는 노래들의 존재가 근대기를 거치면서 완연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진도아리랑을 덧붙이는 형태로 고정되었던 것이다.

한(恨)의 경계 계면(界面)으로부터 육자배기의 호흡까지

일제 강점기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한국문화의 특성을 한(恨)으로 정리했던 적이 있다. 한국문화 전반을 한의 미학으로 읽어낸 것. 해방 이후 반론이 제기되어 비판받긴 했지만 상당수 학자들이 수긍한 이론이다. 음악분야는 더 그랬다. 그 중심에 남도음악이 있고 아마도 육자배기가 더 큰 중심에 있을 것이다. 육자배기가 계면조(界面調)의 음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계면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주는 음조"로 풀이해뒀다. 서양음악의 단조(短調)와 비슷하다는 것. 맑고 씩씩한 음조인 우조(羽調)와 대칭되는 음계라 할 수 있다. 계면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경계의 면이다. 무슨 경계일까. 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준다 했으니 그 경계 지점엔 아마도 한이 놓여있지 않겠는가. 다음 기회에 계면조를 따로 소개할 요량이지만 흉부와 복부를 가르는 횡격막을 다른 말로 계면이라 호명한다는 점 의미심장하다. 육자배기가 호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나는 어머니의 흥그레로부터 깨달은 바 있다. 깊이 내쉬는 숨구멍이 아니면 노래를 이어갈 수 없다. '가슴애피'로 가득 쌓인 한을 토해낼 수도 없다. 물리적으로는 가슴과 배를 구분하는 얇은 막이지만 복식호흡을 설명할 때 횡격막을 빼고 말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황병기는 남도민요 시김새의 꺾는 소리를 울음보따리라 했다. 왜 울음보따리가 되었을까? 이 울음은 단지 울음으로 끝날까. 울음의 경계를 넘어서 지향하는 세계가 있는 것일까. 노래를 불러 한을 삭힌다 함은 그 울음이 흉중의 막을 넘어섬을 말하는 것이다. 횡격막의 경계를 넘어서 마음의 화평을 얻는 것을 요샛말로 힐링이니 테라피니 한다. 서양용어에서 가져왔을 뿐 내가 민요를 들어 설명해오던 것들이다. 육자배기를 잘 부르는 이들이 있다. 특히 판소리꾼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내가 모시던 조공례 어머니며 남도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강송대나 강숙자의 구성진 세계에는 이를 자들이 없다.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래는 자기 삶에서 우러난 그대로, 흥그레가 가진 본질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내가 때때로 육자배기를 듣는 일은 어머니를 듣는 것이고 어머니의 어머니, 아니 자미원 태궁으로부터 오는 자궁의 심호흡을 듣는 것이다. 오늘은 종일 강송대의 육자배기를 틀어놓으려 한다.

남도인문학팁

남도를 상징하는 노래 육자배기, 강송대 명창이 부르는 가사

남도민요(잡가) 예능보유자(전남도지정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는 강송대의 육자배기가 일품이다. 일찍이 진도의 예술가집안에서 태어나 태내부터 소리를 익혔고 광주 활동을 통해 완숙된 소리들이다. 내 어머니가 넘으셨던 열 두 고개의 삶을 거뜬히 딛고 일어서는 경험들, 한 많던 흥그레가 육자배기로 그리고 흥타령으로 변화하는 감동들이 이 노래에 있다. 이제는 소릿길 마디마디 놓인 설움과 애증의 회환들 사뿐히 즈려밟고 긴 호흡 내쉬고자 한다. 첨찰산 신록조차 가득 담아낼 여섯 박자 큰 호흡들 그리워서인가. 내 마음 앞 다투어 남도산하에 먼저 내려선다. "추야장 밤도 길더라/ 남도 이리 밤이 긴가/ 밤이야 길까만은 임이 없는 탓이로구나/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서/ 긴 밤 짜룹게 샐~(고나~헤)/ 춥다 춥다 내품 안으로 들어오너라/ 베개가 높거든 내 팔을 비고/ 내 사랑 간 그날 잠을 못이뤘~(고나~헤)/ 내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흘러가건만/ 청산이야 변할소냐/ 아마도 녹수가 청산을 못잊어/ 빙빙 감돌아 가서~(고나~헤)/ 공산명월아 말 물어보자/ 님 그리워 죽는 사람/ 몇몇이나 되더냐/ 유정낭군을 이별하고/ 수심 끓이여서 못살겄네/ 언제나 유정허신 님을 만나서/ 만단 회포를 풀~(고나~헤)/ 사람이 살면은/ 몇 백년이나 살더란 말이냐/ 죽음으~ 들어서/ 남녀노소 있느냐/ 살어서 생전 소년 시절에/ 각기 맘대로 놀~(고나~헤)/ 꿈아 꿈아 무정한 꿈아/ 오시난 님을 보내는 꿈아/ 오시난 님을/ 보내지를 말고/ 잠든 나를 깨워를 주지/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서/ 이별 없이 살~(고나~헤)/ 새야 새야 청조새야/ 가지 가지 앉지를 말어라/ 그 나무 병들어 고목이 되면은/ 날과 일반이로~(고나 ~헤)"

남도민요 강숙자 명인.강송대 명창 제공

남도민요 부르는 강송대 명창.강송대 명창 제공

남도민요 부르는 강송대 명창2

남도민요 예능보유자 강송대 명창.강송대 명창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