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문화> 〈1〉캄보디아의 민간신앙과 다양한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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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아시아의 문화> 〈1〉캄보디아의 민간신앙과 다양한 신(神)
캄보디아 수호신 '네악따' 토착신앙·힌두교·불교 세요소 결합 ||마을 입구 제단·사당에 동상 형태 모셔||프놈펜 근교 왓스와이언다엣 유명 ||인물 아닌 원숭이장군 하누만 눈길 ||전통가면극 '르카온카올'명맥 유지 ||귀신 등 초자연적 세계관 문화 단면 ||
  • 입력 : 2019. 07.18(목) 12:47
  • 편집에디터

옛 전남도청에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국제화라는 목표 외에도 '아시아'와 '문화'를 큰 주제로 문화 예술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핵심 시설로 입지를 굳히면서 장기적으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는 취지다. 인권과 평화의 의미를 지역의 가치로서 아시아에 소개하는 것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핵심 임무지만, 동시에 아시아의 문화를 광주에 소개하면서 광주 정신과 문화를 진화시키는 것 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풀어야 할 과제다. 광주가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을까. 본보에서는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수집, 발굴하고 연구하는 아시아문화원의 아시아문화연구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7차례에 걸쳐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등 5개 권역의 아시아문화에 관한 내용들을 게재할 예정이다.〈편집자주〉

네악따 조각상이 있는 제단

〈1〉캄보디아의 민간 신앙과 다양한 신(神)

거대한 규모와 장엄한 분위기 탓에 신이 잠시 내려와 만들었다고 일컬어지는 앙코르 유적지 사원들. 과거 화려한 앙코르 문명을 꽃피웠던 캄보디아는 현재 불교 국가이지만, 불교 이전에 전래되었던 고대 브라만교와 힌두교 그리고 토착 민간신앙 요소들이 습합되어 다채로운 종교적, 문화적 양상을 나타낸다. 그만큼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신(神)과 영적 존재도 다양한데,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캄보디아의 대표적 민간 신앙 가운데 하나는 지역을 지키는 수호신 '네악따'이다. 캄보디아를 다니다 보면 마을 입구의 조그마한 제단이나 산속 흙더미부터 거대한 나무나 동상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네악따를 모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캄보디아 전역의 수백 수천 여 네악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프놈펜 근교 왓스와이언다엣 절 주변 공동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왓스와이언다엣은 캄보디아 전통 가면극 '르카온카올'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르카온카올은 전통 음악과 스토리에 맞춰 가면을 쓴 배우들이 춤과 연기를 펼치는 무용극을 일컫는데, 그림자극 '스바엑톰', 궁중 무용 등과 더불어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전통 공연 예술이다. 르카온카올에서 대표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는 힌두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캄보디아식으로 변용, 각색한 <리엄께>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는 여느 곳과 달리 마을의 역사나 전설, 민담 속 인물이 아니라 리엄께(라마야냐)에 등장하는 원숭이 장군 하누만을 네악따로 모시고 있다. 왓스와이언다엣 경내에는 흰색 하누만 두상을 모셔둔 작은 사당이 있다. 얼핏 보면 캄보디아나 주변 동남아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 여길 수 있지만, 캄보디아의 토착 민간 신앙과 외부에서 전래된 힌두교와 불교 등 세 종교의 요소가 한 자리에 모인 재미있는 광경이다.

캄보디아에서 설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은 '프쭘번'인데, 여기서도 캄보디아인들의 민간신앙을 잘 엿볼 수 있다. 프쭘번은 전통 크메르력으로 10번째 달의 첫째 날부터 시작하여 15일 동안 계속된다.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대략 음력 8월 15일, 즉 우리네 추석 때 시작해 보름 간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시기를 가늠하기 쉽다. 프쭘번 기간 동안 캄보디아인들은 위로 7대 조상까지 넋을 기리고 예를 표하는데, 이를 위해 돌아가신 조상의 고향 절을 찾아 공양을 드리고 기도를 한다.

프쭘번은 특히 15일째 되는 마지막 날이 가장 중요하다. 캄보디아 전통 관념에서 이날은 일 년 중 하루 '하늘'의 문이 열려 망자들의 혼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날이다. 이들은 일 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굶주린 상태인데, 따라서 사람들은 마지막 날 새벽 찹쌀 등으로 만든 주먹밥을 던져서 절에 찾아온 배고픈 조상의 망혼에게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이 의식을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조상이 노하여 후손들에게 화가 미친다고 믿는다. 인도의 배고픈 귀신 '쁘레따' 개념이 캄보디아의 정령 신앙, 조상신 숭배와 결합하여 변화한 것이다.

한편, 캄보디아인들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 예를 들어 객지에서의 죽음이나 타인에 의한 죽음, 사고사, 익사, 자살 등과 같은 형태의 죽음은 매우 불길한 것이다. 이러한 죽음을 맞은 사람의 혼은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귀신 '크마옷 버이쌋'이 될 확률이 높고, 자신이 죽은 장소에 머물며 이승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해를 끼치거나 불운을 야기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평소와는 다른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데, 예컨대 '사망 후 재빨리 화장을 한다', '2~3년 매장 후 다시 화장을 한다', '시신의 머리 방향을 반대로 한다' 등과 같은 것들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1970년대 '킬링필드'의 희생자들 역시 이러한 억울하고 폭력적인 죽임을 당한 이들이다. 그러나 당시 발굴된 희생자들의 유골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으며, 더군다나 망자에 대한 적절한 구원과 위령 없이 정치적 맥락에 따라 그대로 박제되고 '기념화'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현재 프놈펜의 뚜얼슬렝 학살박물관과 쯩아엑 학살기념지,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유골탑이다. 이 공간들은 캄보디아인들에게 고도로 위험하고 폭력적인 장소로 간주되게 되었는데, 단순히 과거에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그 이후에도 비통한 망령들을 달래주지 못하여 그 분노와 공포가 상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는 이 밖에도 여러 신과 귀신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주술 의례와 부적도 발달하였다. 비단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다른' 세계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관습은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 이를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소비하거나 '미신'으로 치부해버리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온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세계관이 녹아있으며, 때로는 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부경환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왓스와이언다엣 절에서 하누만을 모시는 사당

프쭘번 마지막 날 절에서 밤을 새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프쭘번 때 스님과 조상에게 바치기 위하여 준비하는 공물.

쯩아엑 학살기념지의 거대한 유골탑

부경환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