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4년이 됐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는 청산하지 못한 숱한 과거가 있다.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다는 것은 청산해야 할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사진은 지난 4월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 독립운동가 계봉우·황운정 지사 유해 봉환식 모습. 뉴시스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이승우 | 김영사 | 1만5000원
이위종은 1962년 헤이그 특사로서의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은 헤이그의 신문 기사와 연설문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함께 헤이그 특사로 활동했던 이상설과 이준에 관련된 자료는 많이 축적돼 있지만, 당시 헤이그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졌던 이위종에 대해서는 학계의 관심과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이 책은 그동안 독립운동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이위종 열사를 재조명하고, 그의 삶과 사상을 오롯이 담고자 끈질기게 파고든 연구의 결과물이다. 부족한 국내 자료뿐 아니라 러시아, 일본 등 해외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각종 문헌을 섭렵하고 검증했다. 또한 러시아 모스크바에 생존해 있는 이위종의 후손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육성을 담았다. 특히 그의 증손녀이자 모스크바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율리아 피스쿨로바 박사가 직접 작성한 서문을 실었다. 그리고 이위종의 헤이그 연설 '한국의 호소' 영어 전문을 수록해 그의 사상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의문으로 남아 있던 이위종의 실종 원인과 불분명한 죽음을 치밀한 문헌 조사와 현장 답사를 통해 추적했다.
이위종은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에 능통한 당시의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임에도 1907년 헤이그 특사로 발탁됐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의 헤이그 특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거부당했지만 이위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해외 유수 언론과의 인터뷰를 주도해 을사조약의 부당한 체결 과정을 널리 알렸으며, 프랑스어로 된 성명서를 각국 대표들에게 돌려 일본의 침략 행위를 규탄했다. 나아가 헤이그에 모인 수많은 언론인들 앞에서 '한국의 호소'라 불리는 연설을 하며 을사조약의 불법성과 대한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세상에 부자와 빈자가 있듯이 강한 나라가 있으면 약한 나라도 있습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모두 먹어치우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정의의 신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믿는 정의의 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우리는 일본인의 잔인하고도 비인도적인 침략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에 처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로 뭉쳐서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본문 중)
저자 이승우는 이위종의 위대한 삶과 그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되살려내고자 이 책을 완성했다. 집요한 연구와 취재를 통해 한반도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잊혀진 역사를 발굴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달해냈다. 특히 이위종의 복잡다단한 신분 변화에 집중해 그의 녹록치 않았던 인생과 사상의 변화를 좇았다.
대한제국의 최연소 외교관이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가 연해주 의병조직 동의회의 회장이 되기까지, 러시아 귀족이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제정러시아 장교가 볼셰비키 혁명군 장교로 활약하기까지. 안락한 미래를 보장받았지만 시베리아에서의 거친 삶을 택했던 이위종의 극적인 생애는 격변하는 세계 정세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잊혀져왔던 이름 이위종을 통해 격동과 파란의 한반도 역사를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