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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 정대세가 아리랑이라면
  • 입력 : 2019. 07.31(수) 11:21
  • 편집에디터

지난 2010년 6월 16일(이하 한국시간)오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G조 북한과 브리질의 경기가 열렸다. 북한 정대세가 국민의례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자이니치 정대세의 눈물

축구선수 정대세의 눈물을 재소환한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북한대표로 출전하였다가 브라질과의 경기 직전 흘린 눈물. 이 의미를 분석한 논문이 흥미롭다. 다소 길지만 박보현'정대세의 눈물읽기: 블로그를 통해 본 그 의미 해석',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2012)를 다시 인용해본다. "첫째, 자이니치의 눈물이다. 남한도, 북한도, 그렇다고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일본에도 적을 둘 수 없었던 자이니치(在日)의 고달픈 삶과 일본 사회 속 차별과 배제를 대변한다는 해석이다. 자이니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정대세가 북한 대표팀을 선택한 것을 재일 조선학교를 졸업한 그의 교육배경에서 찾고 있다. 이들에게 재일 조선학교는 자이니치의 민족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기관으로 수용된다. 둘째, 민족의 눈물이다. 자이니치로 살아가게 만든 제국주의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한민족의 눈물. 자이니치 디아스포라의 슬픔을 대변한다. 정대세의 눈물을 통해 읽어낸 민족은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혈통에 기반 한 개념이다. 이들은 정대세의 눈물을 통해 한민족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기를 기원했다. 셋째, 불편한 이데올로기의 눈물이다. 정대세의 눈물이 북한정체성을 대변한다는 입장이다. 정대세가 재일 조선학교를 다니면서 이념화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눈물에 감격하고 감동하는 한국 내 정서에 대해 비판한다. 넷째, 순수한 감격의 눈물이다. 정대세의 눈물은 월드컵에 참여한 감격에서 비롯된 것. 축구선수로서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흘러나온 감격의 눈물일 뿐이다. 정대세의 눈물을 스포츠의 영역 밖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정대세의 정체성을 민족주의로 보느냐 아니면 국가주의로 보느냐에 따라 그 경계를 달리하고 있다."

극장국가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

북한은 철저하게 아리랑을 사회주의 주체사상의 확립에 활용했다. 항일투쟁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항일과 혁명 등의 관점들이 분단고착 이후 이른바 사회주의 혹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수단으로 변용되었다. 그래서인지 주체 사상적 측면을 제외한다면 일제 강점기 아리랑의 저항성, 민중성 혹은 통속성 등을 상당부분 담보하고 있다. 아리랑 연구로 평생을 바쳐 온 김연갑은 1940년대 전반기에 공연된 악극 '아리랑'에서 나운규의 민족의식, 영화 '아리랑'의 저항적 서사구조, 주제가 '아리랑'의 민중성, 악극 형식의 통속성 등을 등가적으로 분석한다. 2000년을 전후해서도 아리랑의 창작은 계속된다. 2002년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 아리랑이 처음 시작된다.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 이외에도 가요〈통일아리랑', '강성부흥아리랑'을 비롯하여 소설, 동시 군중 공모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창작물이 발표되었다. 전영선은 이들 아리랑이 북한 체제의 결속을 다지고 민족문화의 전통과 김일성 가계의 전통이 하나라는 운명공동체 의식을 교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작된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정병호는 이를 기어츠의 '극장국가' 개념으로 해석한다. 북한 정치권력의 문화적 작동원리라는 것. 아리랑축전 같은 대규모 공연들은 외부세계를 의식하여 그리고 내부 결속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다. "아리랑축전은 거대한 대중공연으로 10만 명 이상의 고도로 훈련된 시민 출연진(아동, 학생, 여성, 군인 등)이 참여하는 치밀하게 연출된 행사다. 아리랑은 이전의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작품들의 핵심요소를 모으고 북한의 모든 주요한 무대공연을 종합해낸 최고의 작품이다. 그 세부내용들은 매번 조금씩 바뀐다. '배경대'라고 부르는 수천 명의 관객들이 손에 든 다양한 색깔의 피켓을 세심한 동시동작으로 바꾸어 연출한다. 유랑민들의 비극적 삶은 식민지배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국내외로 흩어진 민족 전체의 운명을 상징한다. 그들의 슬픔을 영웅적인 혁명지도자가 품어 안음으로써, 그를 통해 민족해방과 영광스런 운명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회복한다. 아리랑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기독교 구약에 등장하는 엑소더스(출애굽기)라는 구원의 미학과 흡사한, 추방과 삶 속에서 구현되는 해방의 예언적 진리를 그려 보인다." 극장국가의 정치적 공연을 액면대로 볼 필요는 없지만, 우리 아리랑을 디아스포라 아리랑으로 해석하는 한 측면이라는 점 부인하기 어렵다.

아리랑을 보는 중국과 북한의 시선

2005년 한국의 '강릉단오제' 유네스코 등재 이후 표면화된 갈등은 2009년 '용선축제'로 이름을 바꾸어 등재하는 등 대결구도로 치달은 바 있다. 2006년에는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농무'라는 이름으로 농악을 등재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제3차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 등록에 대한 국무원 통지를 통해 아리랑, 판소리, 가야금예술을 선정하였다. 2012년 이후 중국 동북3성의 국가급비물질 문화유산 중 17개의 조선족 문화유산을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며 이 기조를 점점 확산해가고 있다. 6~7년 전 성급비물질문화유산을 6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그 결과가 어떤지 궁금하다. 이정원은 이 일련의 시도들을 한국, 중국, 북한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의 유네스코 선점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 정체성에 대한 흐름을 주도하려는 의도로 해석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쪽에서는 무형문화유산 관리 정책에 허를 찔리는 동시에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등의 반응을 쏟아낸바 있다. 이후 한국은 2012년 12월 아리랑을 단독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는데 성공하였다. 그간의 우려를(보도를 통해서 다양한 불안감들이 표출된 바 있다) 불식시켰다는 자축분위기가 이어졌다. 2014년 집체극 중심의 북한 아리랑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분리 등재는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다. 겨레를 묶을 수 있는 이만한 콘텐츠가 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동안에 북한과 공동등재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김정일 사망으로 이 논의가 중단되었다고 할 뿐 구체적 과정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한겨레의 DNA 아리랑을 다시 소환할 이유

정대세가 아리랑이라면, 그래서 정대세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한다면 어떤 형식이 되겠는가? 이년 전 이 칼럼을 통해 우리가 획득한 아리랑의 DNA적 권위가 사실은 해외동포들에 의한 외부적 추동에 힘입은 바 크다고 소개한 바 있다. 유네스코 신청서를 다시 인용한다. 아리랑이 유산의 공동체를 위해 갖고 있는 사회문화적 기능과 의미를 묻는 항목이다. "오늘날, 아리랑은 한국인들을 통합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한 단일팀이 함께 입장할 때, 단일팀은 아리랑을 불렀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열정적인 응원단체인 '붉은 악마'는 2002 한-일 월드컵 기간 동안 매일 아리랑을 노래했다. 따라서 아리랑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국가적 순간에 한국인들을 통합하는 힘을 가진 연상(聯想)곡으로 인식되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은 아리랑을 부를 때 마다 국가적 정체성을 확인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교민들은 그들 자신 지역의 아리랑 형태가 그들 지역의 정체성을 촉진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신청서에 적시된 대로 오늘날 아리랑이 한국인들을 통합하는데 기여하고 있는가? "아리랑의 등재가 화합을 향한 남북한 사람들 사이의 교류와 대화뿐만 아니라 세계를 넘어 해외 한민족공동체 사이의 소통을" 자극하고 있는가?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경복궁 중수기의 1차 확장기를 거쳐 나운규 영화기의 2차 확장, 디아스포라적 환경에서 한민족의 DNA로 인식되는 아리랑을 오히려 퇴보시킨 결과이기에 그렇다. 유네스코에 등재하였으니 세계적인 문화재가 되었다는 인식은 잘못 된 것이다. 목적으로 제시한 전제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아리랑은 무슨 의미일까. 이년 전 이 지면을 통해 나는 아리랑의 확산과 의미를 문제 삼았다. 중국의 유네스코 등재 움직임에 대응해 서두른 측면을 비판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북한과의 통합 등이 그 논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각 국 모두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였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전 세계의 한국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맥락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해(북한은 주체사상을 위해, 중국은 소수민족 정책과 동북공정을 위해, 남한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접근했다는 뜻이다. 문화를 정치적 방식, 혹은 군사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문화전쟁'이라는 인식이나 접근 방식으로는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내기 어렵다. '문화적 이데올로기의 수렁'에 비유할 수 있다. 지금 한일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북한까지 논란에 가세한다. 미, 중, 일, 러의 각축이 100여 년 전 디아스포라 아리랑의 확산기를 연상하게 한다. 아리랑의 재소환을 요청하는 이유다. 한 세기 전 아리랑이 그러했듯이, 또 한 때는 유네스코에 '아리랑상'을 제정해 운용했듯이, 이는 겨레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고차원의 풀이방법이다. 정치가 못하는 일을, 경제가 못하는 일을 문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남도인문학팁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의 폐기 혹은 수정을 주장하며

남한 단독으로 유네스코 등록한 아리랑, 북한 단독으로 등록한 아리랑은 폐기 혹은 수정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남, 북, 중, 일, 러, 나아가 한겨레붙이가 사는 곳들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아리랑을 국가에 대입하면 공교롭게도 6자회담 당사국들이 나온다. 아리랑이 가진 의미를 보다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선견지명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것이 한겨레의 DNA만을 다루는 일이 아님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남한 단독 등재를 자축하거나 북한 단독 등재를 자축하고 용인하는 유네스코위원회라면 그 권위를 인정할 필요도 없고 매달릴 필요도 없다. 이미 '국가간 협력을 증진하고 이를 통해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것'인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국가 간 문화충돌이나 급기야는 국가 간 문화전쟁을 충동질하는 따위의 위원회는 존재가치가 없다. 궁극적으로는 이 위원회를 해체시키고 '국가간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조직이나 모임에 대해 재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축구선수 정대세는 아리랑의 위치를 자각시켜 주는 적절한 소재였다. 국가간 평화와 협력을 상상하는 상징일 수 있다는 뜻이다. 김구의 문화에 대한 선언은 이런 점에서 항상 유효하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6월 16일(이하 한국시간)오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G조 북한과 브리질의 경기가 열렸다. 북한 정대세가 국민의례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2017년 5월 31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열린 2017 국민대통합아리랑 공연. 전남일보 자료사진

전남일보 등이 주최한 국민대통합 아리랑 전국순회공연이 2017년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열렸다. 전남일보 자료사진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