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송편 빚는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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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송편 빚는 추석
이윤선
  • 입력 : 2019. 09.10(화) 11:06
  • 편집에디터
이윤선 (사)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 회장




으레 추석이면 송편을 빚는다. 조리하는 것이 아니다. 담그는 것도 아니다. 짓는 것도 아니다. 어떤 형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도자기 따위를 만드는 일, 송편이나 만두, 경단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음식 자체보다는 형태나 형상에 초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에밥과 누룩을 버무려 술을 만들 때도 빚는다 한다. 어떤 현상이나 결과를 만드는 것을 이르는 용어로도 쓴다.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빚다'의 용례가 보인다. 적어도 600여년 이상 사용해온 말이다. 도자기 등 어떤 형태를 빚는 것, 술을 빚는 것과 송편을 빚는 것, 어떤 현상이나 결과를 초래하는 것, 이들을 교직하는 공통분모가 있을까?

몇 가지 단서가 있다. 송편은 추석에만 먹는 떡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밝혀두었다. 예컨대 윤덕노는 '음식잡학사전'에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달 모양의 떡이라 했다. '추재집'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솔잎으로 찐 송편으로 차례를 지낸다 했다. '동국세시기'에는 음력 2월 초하루 머슴날 먹는다 했다. '택당집'에는 초파일에 송편을 먹는다 했다. '사례의'에는 오월 단오와 유월 유두에 송편을 빚는다 하고 '도문대작'에서는 봄에 송편을 먹는다 했다. 매 계절마다 매 절기마다 만들어 먹었던 떡 아닌가? 그런데 왜 추석에만 송편을 빚는 것으로 정착했을까? 글쎄다. 그 기원을 추적하기는 내 재주가 부족하다. 다만 유추할 수 있는 것, '올벼신미'다. 추석 송편을 올벼송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남도지역에서 흔히 '올개심리', '올벼심리'라고도 한다. '올벼신미'의 지역말이다. 신미(新味)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맛이고 올벼는 '이른벼'를 뜻하는 옛말이다.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의 새로운 맛, 실제로는 아직 덜 여문 벼이삭을 훑어다 찐 것을 말한다. 익지 않았으므로 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올게쌀, 찐쌀이라고도 한다. 대개 칠월 백중을 지난 시기부터 8월의 시기. 이 또한 유추가 가능하다. 벼농사 세벌매기가 끝나면 농사일은 끝나지만 수확기까지 빈곤한 처지에 놓인다. 부족한 식량을 메울 지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 행위들은 벼 한줌 베어 마루 기둥에 묶어두는 풍속으로 자리 잡게 된다. 기능과 환경이 만들어낸 '올벼심리' 풍속이다. 추석 송편을 '올벼송편'이라 하는 이유를 비교해본다. 정월 대보름부터 유월 유두에 이르기까지 절기마다 만들어먹던 송편이 유독 추석의 떡으로 정착된 것 말이다. 올벼로 만든 떡 곧, '햅살떡'의 의미가 있다. 햅쌀로 만들어야 하니 벼가 익는 가을 그 중에서도 가운데 가을인 중추(中秋)의 떡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한자로는 신도송편(新稻松-)이라고 한다. 기능에 따라 송편도 여러 가지로 나눈다. 쌀가루 반죽을 조금씩 끓는 물에 담갔다가 건져낸 것을 '물송편(수송병, 水松餠)'이라 한다. 돌상에 놓는 송편은 '돌송편', 달걀을 반달모양으로 빚어 만든 것을 '알송편' 혹은 '계란송병'이라 한다.

송편(한자로는 松餠 혹은 松葉餠)은 18세기 '숑편'으로 나타나다가 19세기 들어 '송편'으로 정착된다. 전북지역에서 '쇵편', '쇙펜'으로 발음하거나 전남지역에서 '솔편', '솔핀' 등으로 발음하는 예를 들 수 있다. 술을 빚거나 도자기를 빚는 일, 어떤 현상이나 결과를 초래하는 일과 겹치는 공통분모. 나는 이것을 일정 기간 숙성된 결과를 초래하는 어떤 것이라고 해석한다. 술을 빚으니 발효되어 숙성한다. 도자기를 빚으니 숙성하여 결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절기의 송편이 추석절기의 떡으로 정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해 준비하고 가꾼 논에서 '이른벼'를 베어내어 찧고 반죽해 떡을 빚는다. 그 중의 한포기는 기둥에 걸어 조상신에게 바친다. 마치 도자기를 빚듯, 술을 빚듯 향 곱고 기능 출중한 솔가지 겹겹이 깔아 쪄낸다. 한해의 결실임에도 반달모양이나 초승달 모양을 선호한다. 중국이나 일본이 보름달모양의 월병을 선호하는 것과는 다르다. 보름달은 하현의 시작이요, 초승달은 상현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햅곡식 내어 결실을 제사하면서도 아직 남은 절기, 상현의 기운생동 염원하는 뜻 아닐까? 올해 추석 변함없이 어머니 만드시던 초승달 모양 송편을 빚어야겠다. 한해의 결실에 대한 축전(祝典)이자 미처 못 이룬 계획에 대한 다짐의 떡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