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재원도의 당(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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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재원도의 당(堂)
  • 입력 : 2019. 10.23(수) 13:01
  • 편집에디터

재원도 군도 풍경

큰 섬 안의 작은 섬, 그 안의 한 세계

'허사도', '진아섬', '비개섬', '뛰섬', '노래기섬', '갈미섬', '칡섬', '치마섬', 무수한 이름들이 이어진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섬 이름들, 부남군도를 이루는 섬 이름이다. 부남군도? 생소한 이름을 뒤적이니 재원도의 부속 섬임을 알겠다. 재원도는 또 어디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섬들의 행렬, 신안군 임자도에 딸린 섬이다. 큰 섬 안에 작은 섬이 있고, 작은 섬 안에 또 작은 섬이 있다. 진도의 조도(鳥島)가 마치 새떼들이 내려앉은 모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듯, 영락없이 크고 작은 새떼의 형국이다. 내가 수십여 년 남도의 섬을 찾아 답사를 했던 이유를 톺아본다. 그곳에 각각의 세계가 있었다. 크고 작은 유인도와 무인도들, 각각의 섬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자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 하늘이 있고 바다가 있고, 나무와 숲이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마당과 들이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는 이름 모를 새와 벌레와 물고기들이 산다. 이것이 또 하나의 세계 아니면 그 무엇을 세계라 이름 할 것인가. 내가 그 중에서도 주목했던 것은 한 세계를 이루는 공간의 우주목과 우주 숲, 그리고 우주의 바다였다. 눈치 빠른 분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내가 여러 번의 칼럼을 통해 이 세계를 다루어 왔음을. 우주목은 당산나무로, 우주숲은 당산숲으로, 우주의 바다는 우실과 노두와 개펄 등으로 마치 한 세계의 전형을 이룬다. 재원도 뿐이겠는가. 뭍으로부터 떨어져 바다의 한 가운데 서있는 공간은 모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을. 설화를 추적해보면 이 모든 공간들은 본래 흐르는 어떤 것이었다. "저기 섬이 떠내려간다!" 바닷물과 함께 흐르다가 어느 소녀, 혹은 어느 임산부가 외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서버리지 않았으면 지금도 우주 어디로 마치 별처럼 유영하고 있을 공간들이다. 그래서 '섬'일까? 가다가 서버려 붙박이가 된 공간 말이다.

재원도를 이루는 고유한 이름들

재원마을 뒤편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 때는 '봉화둑'이 있었다. 봉화(烽火)를 올리기 위해 둑처럼 쌓아둔 '대(臺)'를 이르는 말이다. '토시막재'는 '재원산', 혹은 '재원봉수'라고 불렀다. 모두 봉화와 관련이 있다. 부남군도는 재원도 서쪽에 위치한다. '부남도', '노록도', '비치도', '허사도' 등 재원도 부속 섬에서도 마찬가지로 당제(堂祭)가 이루어졌겠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당제를 왜 주목하는가? 그것이 한 세계를 이루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당나무와 당집과 당숲과 샘들, 한 섬을 관할하는 신이 거처하고 그 신격이 관장하는 세계가 그곳에 있다. 지금도 여전히 '노록도' 등지에서 '당새미'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비개섬' 위쪽에 있는 샘을 그렇게 부른다. 당산제를 지낼 때는 이 물을 길어다 썼다. 크고 작은 숲들을 통해 섬의 옴팔로스 그 중심이 어디였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재원도 외에 노록도에서 당제를 지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당새미'뿐이다. 물론 유추 가능한 지명들은 많다. '가는짝지'는 '큰고래미' 동북쪽에 있는 '개(바다)'를 말한다. 지형이 가느스름하고 자갈이 많다. '고래미'라는 명칭은 서북쪽에 있는 후미로 고래 떼가 바닷물에 밀려와서 많이 잡은 데서 유래한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건네미'는 재원마을 남쪽 건너편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극낭골'은 '두루머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다. 몹시 가팔라서 한번 떨어지면 극락이나 지옥으로 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날쟁이새끼친데'는 두루머리 서쪽에 있는 부리를 말한다. 날쟁이(명매기, 귀제비라고도 하는 제빗과의 여름철새)가 새끼를 치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 이름 모두 재원도라는 한 세계를 이루는 공간들이다. 그 중심에 당나무와 당숲과 당샘이 있다.

중국으로 이어진 재원도의 작은 세계

'재원터'는 섬의 북쪽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뱃길목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에서 이곳에 숙소를 마련하고 숙식을 제공하며 쉬어가도록 하였는데 지금은 밭이 되었다. 이 작은 섬에서 대중국 교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내 방식으로 말하자면 중국과 연결된 하나의 세계이지 않은가. 이것 말고도 대중국 항로와 관련이 있는 공간들을 더 찾아볼 수 있다. 중앙부의 동쪽에 재원마을이 있고 서쪽에 예미 마을이 있다. 지금은 재원마을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두 마을 모두 당제를 지냈던 곳이다. 예미마을에 당샘이 그 흔적이다. 이 샘 또한 고려말 대중국 항로와 관련되어 있다. 남송으로 가기 위해 개성과 당항포를 출발하여 서해를 따라 내려가다가 이곳 재원도에 들렀기 때문이다. 이어서 압해도, 우이도, 흑산도, 홍도, 가거도를 거쳐 남중국해로 향하는 것이 연안항로의 기본 코스다. 물품을 수송하기 위해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풍랑이 심해 항해가 어려운 시기부터 날씨가 풀리는 3~4월까지는 사용하던 창고다. 이런 맥락에서인지 본래 이 섬의 이름은 재원도(財源島)였다. 재물의 원천이라는 뜻이니 물산이 풍부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은 섬에 풍부한 물산이라니? 그렇다. 그것은 아마도 대중국 교류와 관련된 물산을 의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기 중국과의 항로가 끊기게 되고, 임자도 본 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의 재원도(在遠島)로 바꾸어 부르게 된다. 바다에서 열리던 시장 '파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이후 '파시평' 혹은 '파시전'이 열리던 시절로부터 특히 1970년대는 재원도에서 임자도 목섬까지 배들이 꽉 들어찰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무역선들이 이곳에서 고기를 손질하여 일본으로 수출했다는 것. 이때까지 만해도 번창하던 포구였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까지 민어파시가 지속되었다. 어찌되었든 재원이 풍부했던 섬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재원도 아랫당의 우주목(神樹)과 '장불'의 우실

재원마을에는 윗당과 아랫당, 서쪽에 있었던 예미마을당 등 세 곳의 제사터가 남아 있다. 세 곳 모두 우람한 당숲으로 덮여 있던 곳이다. 재원마을 윗당은 마을 뒤편에 있는 두 개의 계곡 위쪽숲을 말한다. 당을 중심으로 쌍계(雙谿)가 형성된 형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왼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산등성이 정상에 윗당이 있다. 서쪽 해안에 있는 예미리의 당도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팽나무가 우주목처럼 서 있고 그 옆에 당샘이 있다. 윗당을 할아버지 당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아랫당은 할머니당이 되는 셈이다. 마을 뒤편의 산을 봉산이라 하고, 윗당산을 '당재'라고도 한다. 당산이 있는 언덕 혹은 '재'라는 뜻이다. 그 아래 '밤나무골'이 있다. 아랫당 위쪽의 산을 '큰재'라 한다. 오른쪽 계곡으로 큰재, 중봉, 하봉으로 이어져 아랫당과 연결된다. 윗당의 당숲은 육송군으로 이루어졌다. 아랫당은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팽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송은 당을 형성하는 돌담 주변으로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당집은 돌담으로 쌓았다. 입구는 맞보기 담으로 구성했다. 돌담 내부에 동백나무가 있었다. 이른바 우주목이다. 이런 형태는 서남해 도서지역의 당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 동백나무나 소나무 등 신수(神樹)로 여기는 나무가 있는 형태다. 돌담 주변으로도 동백나무, 소나무, 팽나무 등의 당숲이 펼쳐진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훼손되어 있어 그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아랫당 또한 본래는 울창한 팽나무 숲이었다. 주변으로 100여 평 규모의 석축이 보인다. 숲이 훼손되고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후대에 쌓았다고 한다. 바닷가에는 모랫등으로 이루어진 제방이 있다. '장불' 혹은 '불등'이라고 한다. 바다와 육지를 경계 짓는 경계선이다. 자연제방이라고 하는데 전문가들의 눈으로 보면 어느 시기에 조성한 인공제방임을 알 수 있다. 해안가에 보편적으로 조성된 우실의 하나다. 이곳에 해송을 심어서 방풍림을 만들었던 것. 자연스럽게 '장불'이 형성된 것은 이른바 '사태이동'이라고도 하는 '바람모래'의 축적과 관련된다. 지금 학교 주변으로 늘어 서있는 장솔(長松)들이 당제를 지낼 당시만 해도 우실 역할을 충분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당제가 윗당제, 아랫당제 후에 갯제로 이어지는 관례로 보면 이 '장불'이 그런 '의례터'로 기능했을 것이다. 당산나무, 당산숲과 장불은 재원도라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매우 긴요한 공간들이다. 작은 섬으로부터 큰 섬으로, 그리고 나라와 전 지구로 확대해보면 한 세계를 이루는 매커니즘이 거의 유사하다는 점 알 수 있다. 내가 작은 섬을 돌며 그 안의 세계를 확인해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작은 섬은 하나의 세계다. 섬은 하나의 우주다.

남도인문학팁

재원도의 당제(堂祭) 절차

윗당에는 1미터 20센치 정도 넓이의 둘레석을 쌓아 제단을 구성했다. 당 안쪽에는 오가리가 있다. 햅쌀을 창호지로 싸서 해마다 오가리 안에 갈아 넣는다. 할아버지당이 워낙 영험하고 유능해서 이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남도지역 대부분의 당산이나 당이 이런 영험과 관련된 설화들을 배치해둔다. 내륙지역에서는 주로 '당산(堂山)'이라는 호명을 선호하고 해안이나 섬지역에서는 '당(堂)'이라고 호명한다. 당숲을 보전하는 매커니즘이 여러 가지다. 당나무나 당숲, 그리고 샘을 보호하는 장치 중 하나가 영험담을 통한 금기다. 어찌되었든 당은 영구적 보호공간이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신성불가침 공간이다. 그래서 이 안에 있는 나무를 신목(神木) 혹은 우주목(宇宙木)이라고 한다. 섬이 하나의 세계라면 그 중심을 이루는 당숲이 옴팔로스(배꼽)다. 이를 위해 벌이는 의례 중 하나가 사물악기를 치며 행하는 의례다. '금고친다'고 한다. 금고를 치고 윗당에 올라가면 제주가 마련한 음식을 차리고 음복 재배로 제사를 지낸다. 제물은 콩나물, 고사리나물, 고구마순 나물 등 세 가지의 나물과 돼지머리 등이다. 축문, 소지 등의 제의가 끝나면 군고패 등 참여자들이 음복을 하고 마을로 내려온다. 내려오기 전에 제상에 놨던 음식들을 음복하고 헌식한다. 음복은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고 헌식은 이 음식들을 거두어 땅에 묻는 행위다. 이어 아랫당으로 내려오면 저물녘이 된다. 현재의 팽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숲에서 마을편 쪽이 옛 아랫당터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돌담으로 둘러있고 제단이 있다. 윗당과 마찬가지고 진설을 하고 군고를 친다. 제의절차는 윗당과 대동소이하다. 아랫당에서 당제를 지낼 때는 선주들이 모두 나와 재배한다. 금고패들이 선박 하나하나 올라가 의례를 행하기도 했다. 대개 서남해 당제들을 보면 선주나 선장들이 당제를 지내고 나서 깃발을 자기 배에 꼽는 의례들을 행한다. 아랫당의 제사가 끝나면 샘굿을 친다. 이어 갯제를 행한다. 바닷가로 나가 군고치는 것을 말한다. 당숲에서 시작하고 바닷가에 나가 마무리한다.

뱃고사를 지냇던 재원도 선박들

샘굿을 쳤던 윗샘

샘굿을 쳤던 통샘

재원도 아랫당과 팽나무

재원도 윗당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