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시월의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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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시월의 마지막 밤
  • 입력 : 2019. 10.30(수) 13:32
  • 편집에디터

해남 갈대밭 2019. 10월, 이윤선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 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 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 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잊혀진 계절, 박건호가 노랫말을 짓고 이범희가 곡을 붙여 이용이 불렀다. 본래는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고. 조영남과 계약이 틀어져 가수 이용에게 넘어가면서 시월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나. 언제부턴가 계절가(季節歌)가 되어버린 명곡이다. 2007년 타계한 작사가 박건호를 추적해보니 실제 9월의 마지막 밤 연인과 헤어지던 심경을 읊은 노래라 한다. 낙엽 내리는 시월의 마지막 밤으로 바뀌었으니 오히려 이별의 정한(情恨)을 높여주었다고나 할까. 가을을 애수(哀愁) 혹은 우수(憂愁)로 읊은 노래와 시는 부지기수다. 이 변화의 계절을 즐겨 노래한 까닭은 무엇일까. 풍성한 가을걷이가 있고 숱한 결실을 거두는 계절임에도 가을을 헤어짐의 슬픔, 인생무상 등으로 소환하는 것은 이 계절이 갖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시월의 마지막 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낙엽의 노래 한 소절쯤 떠올리는 것, 인지상정이다. 시대마다 연배마다 대상과 묘사가 바뀔 뿐 세레나데의 소환 풍경은 변함이 없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그렇고,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 그러하며, 눈물로 부친 편지가 또한 그러하다. 식자들이야 고래의 저명한 시인들 노래 추려내겠지만, 우리네 평민들이야 그리 고상할 필요 없다. 그저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뽑아낼 수 있는 정한이면 족하고 첫사랑 추억할 만하면 족하다. 거드름피우지 않고 비껴가지도 않고 심중의 애수 곧바로 끄집어낼 수 있으니 좋다. 이것이야말로 바탕의 노래요 현장의 문학이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 가을에 쓰는 편지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진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최헌이 불러서 히트한 '가을비 우산 속'이다. 이두형이 노랫말을 쓰고 백태기가 곡을 붙였다. 1978년에 부르기 시작했으니 7080세대에게는 각별한 노래다. 이별의 정한을 가을비에 기대 읊었다. 봄비가 만물을 소생시키는 단비라고 한다면 가을비는 겨울을 재촉하는 눈물이라도 되는 것일까. 화자는 헤어진 연인을 잊기 위해 혼자서 갖은 애를 쓴다. 누가 특별히 도와줄 이도 없는 모양이다. 연애나 혼인 시절에는 속눈썹에라도 넣을 만큼 다정다감하였을 연정이 이별 후에는 눈물인양 비가 되어 내린다. 풍경이 손에 잡힌다. 무슨 미련이 그리 많았을까. 세월 흐르면 홀로 가슴 태우던 날들 잊히는 것일까. 달래고 찾아 헤매도 언젠가는 잊히는 것일까. 그래서 김민기는 가을편지를 썼던 모양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낙엽이 사라진 날 /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이 또한 7080세대에게 익숙한 노래다.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것인지 새로운 연인을 그리는 것인지 낙엽이 쌓이는 날 편지를 쓴다. 그가 누구라도 좋다. 모르는 이면 더욱 좋다. 낙엽 길을 헤매는 사람이면 더더욱 좋다. 그 또한 긴긴 가을밤을 지새웠을 것이니 외로움의 동병상련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수신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이들 노래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도 마찬가지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보내고

"어젯밤 꿈에는 기러기 보이고/ 오늘 아침 무등시에 까치앉아 짖었으니/ 행여나 임이 올거나/ 행여나 편지가 올거나/ 기다리고 바랬더니/ 일락서산에 해는 떨어지고/ 월출동정 달이 솟네." 노랫말을 지은이도 곡을 붙인 이도 알 수 없는 남도육자배기 한 소절이다. 기러기나 까치는 헤어진 임에 대한 투사(投射)다. 그리움에 지쳐 하루를 다 지내도 다시 고통스러운 밤이 온다. 한 해의 계절로 치면 가을 이르도록 그리던 임은 오지 않는다. 까치와 기러기에 기댄 그리움의 정당화다. 격절(隔絶)이나 비탄을 읊은 육자배기나 남도흥타령이 한둘이 아니다. 남도의 노래들을 통칭 염세(厭世)로 독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주야장 밤도 길더라/ 이리 밤이 긴가/ 밤이야 길까만은/ 임이 없는 탓이로구나/ 언제나 알뜰한 임을 만나/ 긴밤 짜룹게 샐~ 고나 헤~." 김민기가 노래한 가을편지와도 상통한다. 수신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미망의 연서일까. 밤이 긴 것은 임이 없는 탓이지만 그 임은 그 누구를 적시하지 않는다. 낙엽 지는 날 숲길 어디 헤매는 그 누구라도 족하다. 남도흥타령의 정한(情恨) 또한 심금을 울린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보내고/ 낙목한천 찬바람에 어이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이 너뿐인가 하노라/ 빗소리도 임의 소리 바람소리도 임의 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니 행여 임이 오시려나/ 삼경이면 오시려나 고운 맘으로 고운임 기다리건만/ 고운님 오지 않고 베개머리만 적시네." 빗소리도 바람소리도 화자를 속인 발걸음일 뿐이다. 삼경(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이르도록 기다리던 임은 오지 않는다. 베갯머리를 적실만큼 울었으니 그 슬픔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그저 북장고 실어 탁주 한잔, 유장한 남도가락에 실어 노래할 따름이다. 그뿐일까.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절개 혹은 기개를 표방하기도 한다. 심한(深寒)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절개를 나타낼 때 쓰는 고사성어, 국화에 투사한 선비나 여인들의 기개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헤매도 홀로 잊어야 하는 혹은 홀로 견디는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이다. 어찌 고절(孤節)한 한시만으로 추심(秋心)의 경지를 노래한다 말할까. 이들 풍경은 조선의 민요, 고려의 가요, 삼국시대의 향가는 물론 우리 민요의 시종을 추적할 수 있는 '시경(詩經)'까지 거슬러 오른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7080 혹은 386의 가을

"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걸으며/ 옛 일을 잊으리라/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개 속에 가로등 하나/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7080세대들에게는 사실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보다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가을노래다. 낙엽 뒹굴고 찬바람 일어 옷깃 올려야 하는 날엔 이 노래 들으며 눈물 흘리는 이들 적지 않다. 지금의 시절을 보아하니 더욱 그렇다. 최백호가 이 노랫말 만든 때가 1970년이다. 어머니 잃은 사모곡이라 가을 연정의 맥락과도 상통한다. 1977년 독집으로 재발매한 곡, 이 노래를 이별의 정한 삼아 불러왔던 세대는 7080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 즉, 1950년에서 197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들 부지기수다. 다방, 경양식, DJ, 포크송, 통키타, 장발, 맥주, 혹은 계층 간 서로 다른 키워드들 주마등을 이룬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에서 정태춘의 촛불까지, 임의 행진곡에서 촛불시위의 '노가바(노래 가사 바꾸어 부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고 깊다. 키워드들 뽑아놓으니 386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386컴퓨터에서 인용한 명칭, 이 용어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대개 90년대에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자들에 대한 통칭이라는 점 일정한 공감대가 있다. 근자에는 지배세력을 통칭하는 보통명사로 호명하기도 한다. 이제는 20대에서 30대의 자녀를 둔 이른바 '꼰대'세대다. 어쨌든 정치적 경제적 부침을 부단히 겪어온 세대, 광장촛불의 주도세력, 민주화를 선도했던 세대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하지만 오는 2020년, 여기 이 자리에서 왠지 이 세대가 갖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정치적, 경제적 딜레마라고나 할까. 최백호의 '낭만'이 떠오른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소릴 들어 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스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그렇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정한, 마치 한곳이 텅 비어있는 듯하다. 7080세대, 본의 아니게 386 '꼰대세대'로 포섭된 무망함 때문일까. 정치가 그렇고 경제가 그러하며 한국의 정세를 견인했던 남도의 정신 또한 그러한 듯하다. 김민기의 가을편지를 써도, 긴긴 밤 기러기 까치소리 얹어 남도흥타령을 불러도 더 이상 수신자가 보이지 않는다. 김수희의 '멍에'처럼 "뒤돌아 아쉬움을 남기면 너무나 괴로운" 시월의 마지막 밤, 추풍(秋風)의 정한 넘어선 오상고절의 심연이 너무 깊다. 하릴없는 색스폰 소리 벗 삼아 위스키 한잔 준비하니 서로 건배하자. 시나브로 잊힐 '꼰대'들의 가을을 위하여!

남도인문학팁

시경의 가요(風)에 담긴 철학

시경의 풍요(風謠)는 오늘날의 민요, 넓게는 가요에 속한다. 사서오경의 철학으로 인용되지만 나는 현대문학 한 장르로서의 가요를 이해하는 데 마땅히 인용해야 할 원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관련 노래들을 지면상 인용하지는 못하지만, 마르셀 그라네가 지은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1919/ 2005, 살림출판사) 중 일부분을 오려 공부자료로 삼는다. 이들 가요는 전원적인 주제 속에 계절적 준칙의 자취를 오랜 세월동안 보존해왔다. 그 때문에 존중되었고 도덕적 수사학을 연습하는 교재로 사용되었다. 국가의 고문관들은 그래서 각국의 가요를 채집하고 연구하였다. 자연계의 질서와 도덕적 질서에 대한 책임이 군주에게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자신들의 정치적 연설과 역사적 평론에 선례를 부여하려고 할 때 이 노래를 인용하였다. 또 유익한 일화와 결부되고 상징과 비유로 이용되었다. 교육적 용도에 알맞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도덕적이고 학자적인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간주되었다. '시경'에 배열되어 있는 이 가요들은 고대 풍습의 증거로서 가요의 주석자 집단이 꾸며낸 삶의 법칙을 퍼뜨리는 데 이용되었다. 이렇게 하여 사회 순응적인 태도를 확보하는 데 이용되었다. 가요가 원래 가지고 있던 신성한 성격에서 가요를 변형시키는 상징주의의 효력이 파생된 것이다. '시경'의 가요는 원시예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으로 생각된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음성과 동작이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요는 감정이 주입되는 흉내 내기와 음성에 의해 표현되기 전에는 생겨나지 않는다. 연애와 춤과 노래 이 세 가지는 갖가지 의례적인 상황을 구성하고 있는 축제에서 동시에 생겨난 것임을 알려준다. 이런 점에서 가요는 구체적이면서도 직접적인 사상, 리듬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구문의 구성, 은유적 연상이 틀에 박힌 관계를 대체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런 대우를 이루는 상황을 알려준다. 가요는 고전적 정통성을 통해 배후에 숨겨져 있는 고대의 습속을 드러낸다. 가요는 중국(이를 확대해석하면 한자문화권의 동아시아)의 농민생활과 남녀 관계에 리듬을 설정해주는 계절적이며 전원적인 축제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절정의 백양사 단풍. 뉴시스

절정의 백양사 단풍. 뉴시스

단풍에 물든 해남 대흥사 숲길. 뉴시스

억새 만발한 무등산.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