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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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2009년 5월 어느 날
  • 입력 : 2019. 11.04(월) 17:54
  • 노병하 기자
데스크 칼럼이 또 다시 돌아왔다. 쓴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금세 온라인 스케쥴 표에 술래잡기의 손수건 마냥 마감날짜가 떡하니 잡혀 있다.

오늘은 언론에 대한 이야기, 정확히는 기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동종업계다 보니 좀 알아서 하는 소리다.

조국 전 장관을 두고 지난 9월과 10월 대한민국은 마치 무슨 전쟁이라도 난 듯, 떠들썩거렸다. 특히나 언론은 연일 거의 맹폭이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거의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특종이라고 말하는 보도는 검찰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었고, 무슨 큰 범죄라도 저지른 것 같던 10개나 되는 정경심 교수의 혐의는 뭐하나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조 장관을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그 순간 나는 지난 2009년 5월 어느날이 떠올랐다. 봉화마을에 언론들이 몰려가던 날 말이다.

좀 더 앞으로 가보자. 2002년 나는 모 신문사의 정치부 막내였다. 내 담당은 광주를 찾았던 지지율 2%의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이었다. 당연히 선배들은 지지율 순으로 배치가 됐다.

그런데 그날 광주에서는 모두가 놀랄만한 일이 발생했다. 정치부 막내기자인 내가 마크한 사람이 광주 경선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온전히 기사도 내가 쓸 수밖에 없었다.

정치부 막내로 투입된 지 4일째 되던 날이었는데, 1면 톱을 쓴 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그를 지지했다.

선배들 몰래 노사모를 가입했고, 그를 응원하는 댓글들을 보며 감동했다. 또 그가 당선되던 날 막내기자 주제에 겁도 없이 사무실에서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그가 사라지던 2009년 5월 23일은 술집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봉하 취재를 다녀왔던 사진기자가 "그래도 광주서 왔다니까 (봉하 지역민들이) 잘해주더라"라는 말에,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자 다시 돌아와 보자. 그때 그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것은 누구였는가? 이제와서 돌아보건데 과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할 만큼의 혐의가 있었는가? 멀리 볼 것 없다. 바로 이전 대통령과 그 이전 대통령에 비해서 말이다.

검찰로 살아본적이 없어 잘 모르겠으니 언론에 대해서만 간단히 한마디 하겠다.

언론을 믿을 수 없는 나라는 불안한 나라다. 그래서 하나의 언론은 크기를 막론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일개 지방신문이라도 한명의 기자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다. 이는 다시말해 그 언론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쌓여 있다면, 그것은 앞서간 기자 선배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만들어진 신뢰 위에서 취재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후배들은 항상 먼저 신뢰를 만들어 낸 선배들을 라이벌로 삼아 더 나은 기사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나아가 기자는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올바른 것은 없다고 말해야 하며, 당연한 것도 없음을 항상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허나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고민하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며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기자도 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을 씀에 있어 두려움을 가져야 하며, 그 두려움의 주체는 권력이 아니라 바로 독자여야 한다.

언젠가 지인이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나는 대답했다. "당신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고.

최근 조 전 장관을 두고 쏟아내는 일부 미디어의 기사를 보며 나는 노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바랬던 것은…

칼춤을 추던 뭘 하던 상관 안할테니, 제발 팩트 확인만이라도 제대로 하고 썼으면 하는 것이었다. 받아쓰기 말고 말이다. 왜 그대들 때문에 나까지 기레기란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