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망부암(亡夫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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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망부암(亡夫巖)
  • 입력 : 2019. 11.06(수) 12:27
  • 편집에디터

1872년 지방도의 상마도, 중마도, 하마도(육지쪽이 백방산, 출처 abot 섬) 복사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해남과 진도를 가르는 만호 바다에 일군의 섬이 떠 있다. 세 마리의 말을 닮았다 해서 삼마도(三馬島)라 한다. 모양만으로 지어진 이름일까? 해남 화산 중정리라는 마을에 말이 울었다는 마명산(馬鳴山)이 있다. '물이 운다' 혹은 '돈다'는 울돌목(한자 표기로 鳴梁이라 한다)을 연상하게 해준다. 명량(鳴梁)해협으로 이름 나 있는 해남과 진도의 좁은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마치 말이 건너뛸 만한 거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말이 날아갈 만한 거리일 수도 있고. 해남 화산에서 진도로 날아가기를 시도했던 이 말은 날개가 없었던지 아니면 힘이 부쳤던지 바다 중간에 떨어지고 말았다. 섬의 탄생설화에 자주 나오는 흐르기, 날아가기, 멈춰서기 등의 코드다. 떨어졌으니 울돌목 하류에 덩그런 섬이 되었겠다. 머리 부분은 상마도가 되고, 가슴부분은 중마도, 뒷다리부분은 하마도가 되었다. 붙어있는 질뫼섬은 말의 멍에가 떨어져 생긴 섬이라 한다. 전국적이긴 하지만 특히 남도 도서 해안지역에 말에 관한 산이나 지명이 무수히 많다. 실제 고대의 제사유적인 철마(철로 만든 제사용 말)가 발굴된 지역들이 산재한다. 대개 섬의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실제는 남도의 도서지역이 말 목장이었던 점과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진도군 지산면은 이름 자체가 아예 목장면이었다. 말을 기르던 목장이라는 뜻이다. 남도지역 섬에 얽힌 지명 얘기만 늘어놔도 수십 권의 책을 쓰고도 남을 분량일 것이다. 이 설화는 표면적으로는 말 목장에 관한 이야기, 해남과 진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표방하지만 방부석 등 지명유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애기 업은 아낙의 형상, 물래섬

이 또한 공룡이 날아다녔을 법한 어느 날 얘기다. 명량해협 아래쪽 만호바다는 본래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다고 한다. 일만 개의 집이 있어서 만호라고 했다나. 아마도 수군만호(水軍萬戶)의 존재가 이런 설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만호가 넘는 이 고을에 오랜 가뭄이 들었겠다. 기근이 심하니 사람들의 삶이 궁핍해졌다. 만호고을의 북편에는 암자가 하나 있었다. 이 설화와 관련되어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해남 황산면 성산리 상봉 고절봉 밑에 가면 실제로 절터가 남아있다. 이곳 암자에는 주민들로부터 존경 받는 스님이 계셨다. 하루는 스님께서 만호고을로 탁발을 나가셨다. 아무리 존경받는 스님일지라도 오랜 가뭄이 계속되는 터라 누구 하나 시주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 집에 들렀던 모양이라. 마침내 애기를 업은 아낙이 조그만 바가지에 겉보리 한 사발을 시주하였다. 알고 보니 그들의 마지막 양식이었다나. 당연히 스님이 감동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말씀하셨다. 이제 이곳 만호고을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나를 따라 오라. 단 어떤 놀랄만한 사건이 일어나 큰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아낙은 스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따라 나섰다. 중간쯤 가던 중에 만호바다를 가르는 큰 파도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산을 덮칠 만한 파도였다. 깜짝 놀란 아낙은 스님의 당부를 잊은 채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 순간 아낙은 아기와 함께 바위로 변해버렸고, 본래 육지였던 만호고을은 바다가 되어버렸다. 만호바다 위에 덩그레 아기를 업고 서 있는 형상으로 남아있는 바위 이야기다. 지금의 전북 새만금에 얽힌 설화나 장자못 설화의 며느리바위 이야기 혹은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와 흡사하다. 하지만 이 섬을 왜 물래섬이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베틀의 물레라는 뜻일까. 아니면 민속놀이의 하나인 물래고누 혹은 집안의 마루라는 뜻일까. 아마도 애기 업은 형용을 따서 이야기를 만들어냈겠지만,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불교와 작은 섬 여(嶼)들에 관한 관계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다. 육지가 바다가 되거나 혹은 바다가 육지가 되는 이런 혁명적인 변화들을 내포하는 심리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다. 이와 관련된 해석은 따로 지면을 만들어 소개하겠다.

이무기일까 공룡일까, 매바위 이야기

만호바다 물래섬의 건너편에는 매바위라 부르는 일명 코잔뱅이 바위가 있다. 해남군 황산면 성산리 입암포에 위치한다. 인근 사람들은 이곳을 건진포라고도 부른다. 고려 문종 때 중국 송나라와 관무역(官貿易)을 하던 무역항 관두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모 기업 채석장이 들어서 있어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다. 목포의 입암산(笠巖山)이 갓을 쓴 사람의 형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처럼, 말총 모양의 모자 형상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보인다. 형상이 독특하니 오래된 이야기가 없겠나. 옛날 아주 먼 옛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애를 한 부부가 이곳으로 찾아들었다. 그들에게 입암포는 물설고 낯선 곳이었지만 고락을 함께 할 좋은 보금자리였다. 날마다 만호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아내가 아이를 뱄다. 어느 날 날부턴가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남편은 보다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걱정되었다. 꿈자리가 사나왔기 때문이다. 고기가 잡히지 않은 이유가 더 걱정이었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던 한 쌍의 이무기가 인근 바다의 물고기를 모두 잡아먹어 원기를 비축했기 때문이다. 용이 되어 승천하기 위함이었고. 하지만 남편은 이를 모른 채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고 이내 만선을 하게 되었다. 입암포로 돌아오는 길, 성산마을 앞바다에 검은 먹구름이 일었다. 모든 물고기를 잡아먹어 원기를 보충한 이무기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이무기 한 쌍이 요동을 치니 하늘에서는 섬광이 일고 바다에는 폭풍이 일었다. 아내는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매바위 정상에 올라 남편을 기다렸다. 멀리 남편의 배가 나타났다. 아내는 이무기가 요동을 치고 있으니 오지 말라고 목청껏 외쳤다. 폭풍 속인데 어찌 그 목소리가 남편에게 들렸겠나. 파도는 남편의 배를 전복시켜버렸고 아내마저 휩쓸어 익사하고 말았다. 폭풍을 일으킨 이무기 한 마리는 용이 되어 승천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승천하지 못해 며칠 동안 울부짖다가 바위로 변해버렸다. 이 지역 매바위 전설이다. 어느 시절 누군가 이 이야기를 지어냈겠지만 왜 이무기바위라 하지 않고 매바위라 했는지 알 수는 없다. 생긴 모양이 매와 닮아서일 것이지만, 모양과는 다르게 한 쌍의 부부와 한 쌍의 이무기를 엮어놓은 이 지역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다. 어쨌든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 금기, 혹은 기다림에 대한 전설은 역사적인 사실과 연계하여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천암 연자각시섬과 백방산 낙화암이 말해주는 것

해남의 옛 도읍지 고현리를 관통해 흐르는 개천이 있다. 지금이야 작은 천변이지만 고려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배들까지 드나들던 포구 남포(南浦)를 잇는 수로다. 남포에서 강변을 따라 고현마을, 덕흥마을로 오르는 천을 '한수내(恨水川)' 혹은 '탄식천'이라고 한다. 문자대로 해석하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풀리지 않아 가슴 속에 응어리진 강이라는 뜻이다. 한스러워 탄식했으므로 탄식천이다. 도대체 누구의 한이 이 천변에 서려있는 것일까? 옛 국제항구 남포가 위치한 곳에 백방산이 있다. 산성이 있었으므로 백방산성이라고도 하고 망부산이라고도 한다. 망부산(亡夫山)? 그렇다. 망부는 지아비를 잃은 부인, 신라 박제상의 아내가 치술령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설화를 기점으로 전국 여러 곳에 전해오는 설화의 하나다. 해남지역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어떤 여인이 중국 남경에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오지 않자 백방산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것. 그래서 백방산 낙화암이라고도 한다. 절개 굳은 아내를 표방하는 설화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설화가 전제하는 보다 중요한 지점이 있다. 백방산성과 해남 남포가 당시 송나라의 수도였던 남경과 교역했던 국제항구라는 것. 울돌목 쪽으로 올라가는 관두량(館頭梁)과 함께 남도의 대표적 항구였다는 점이다. 남경장사 상인들에게 몸이 팔리는 심청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대중국 무역이 성행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흥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진 아도화상(阿度和尙)과도 관련이 깊다.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아도화상이 이곳 남포에 도착해 한내천을 거쳐 지금의 두륜산 고갯마루에 올라 깨달음을 얻고 대흥사를 창건했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덕흥마을 뒷 고개를 오도(悟道)재 즉, 깨달음을 얻은 언덕이라고 한다. 이뿐 아니다. 지금은 들판으로 변해버린 고천암 연자마을 앞쪽에 '연자각시섬'이라는 여(嶼)가 있다. 기생이라고도 하고 부인이라고도 하는데, 남경에 간 사신이 돌아오지 않자 백방산 낙화암처럼 이 섬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 아닌가. 혹은 남경 간 사신을 기다리던 여인이 변해서 섬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 설화는 여지도서에도 나와 있으므로 그 연원이 생각보다 깊다 하겠다. 지금은 연자방아와 연결해 해석하고 있지만 연자(燕子) 즉 제비와 관련짓는 것이 합당하다. 중국 남경이라는 장소나 강남 갔던 제비라는 언설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두 설화 모두 해남을 비롯한 남도지역의 국제 항구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로만 알던 전설들이 잃어버린 국제관계를 환기시켜준다. 지금 중국은 세계를 잇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실크로드 계획인 일대일로(一帶一路)프로젝트를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한낱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를 새삼스레 톺아보는 이유가 뭘까. 이제는 이들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남도인문학팁

망부석과 망부암 설화

망부석 혹은 망부암설화는 전국에 분포한다. 대개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줄거리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 박재상의 아내 이야기다. 눌지왕 때 왕제를 구하러 일본에 갔던 남편을 치술령(鵄述嶺) 고개에서 기다리다 돌이 되어 망부석이라 한다는 것. 기다리다 죽어서 치(鵄, 수리부엉이)라는 새가 되고, 더불어 기다리다 죽은 세 딸도 술(述)이라는 새가 되어 치술령이 되었다고. 경북 월성군 외동면에는 이 새들이 살았다는 은을암(隱乙庵)이 있고 이들을 모신 당(堂)이 있다. 경북 영일군 망부산 솔개전설은 경애왕 때 일본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소정승의 아내 이야기를 대상으로 한다. 동해시의 추암 촛대바위는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아내가 돌이 되었다고 해서 북평 망부석이라 한다. 스님 아버지를 찾아 떠난 아들과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경남 진양의 월아산 망부석 이야기도 있다. 장자못 설화에 등장하는 며느리바위 전설,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등 금기와 위반, 간절한 소망과 한 등을 주제 삼고 있는 설화들이다. 해남지역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백방산 낙화암 전설이나, 한내천의 유래, 연자각시섬 설화 등도 모티프나 주제는 비슷하지만 일본이 아닌 중국과의 교류를 소재삼고 있다는 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남 고천암 연자각시섬(지금은 육지가 되었다)이윤선 촬영

해남 만호바다 성산 입암포 매바위. 이윤선 촬영

해남 백방산 낙화암과 옛 국제항구 남포 인근. 이윤선촬영

해남 옛도읍 고현리를 관통했던 한수천(탄식천) 하류. 이윤선 촬영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