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시마우타(島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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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시마우타(島唄)
  • 입력 : 2019. 11.27(수) 13:04
  • 편집에디터

고향 기카이지마 해변에서 시마우타를 부르는 샤오리 양

향수의 노래로 정착한 아마미오시마의 시마우타

송가인의 부상으로 트로트가 때 아닌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트로트의 시대가 다시 오기라도 한 것일까. 송가인 열풍에 대해서는 여러 평자들이 논의한 바 있다. 대체로 송가인 신드롬, 송가인 현상, 송가인 증후군 등의 카피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송가인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우선 한 자락 깔고 가겠다. 송가인의 엄마는 왜 무당이 되었나라는 제목으로 본 지면에 소개했던 것도 참고할 만하다.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할 터인데 우선 일본의 시마우타를 거론해둔다. 본지에 민요를 다루면서 짧게 언급했던 적이 있으므로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접 관련이 있다기보다 오래된 일본의 시마우타 현상을 통해 송가인 현상을 이해해보자는 취지다. 시마우타(島唄)라는 호명은 크게는 류큐(琉球)문화권의 민요를 포괄하는 통칭이다. 좁게는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민요를 특정하여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창작된 것이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통속민요나 신민요 혹은 창작민요에 해당한다. 시마우타'는 문자로만 보면 '섬(島)노래(唄)'라는 뜻이다. 하지만 '고향민요'라는 뜻이 더 강하다. 두 가지 뜻을 포괄할 뿐 아니라 '노스탤지어(nostalgia)'적 노래라고 나는 해석해왔다. 섬을 소재 삼았지만 고향의 의미로 수용되었고 더 크게는 향수(鄕愁)의 의미로 인식되었다. 지리적으로는 크로시오(黑潮)해류와 한국 서해 혹은 남해와의 관련성을 거론해볼 수 있다. 예컨대 내가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남도가 비교 대상일 수 있다. 아마미오시마의 북쪽 해안이나 도꾸노시마(徳之島)의 북서해안에서는 한국해양쓰레기가 계절마다 수거된다. 물길이 이어져있다는 뜻이다. 관련해서는 <졸고, 「아마미오시마 섬민요(島唄)와 지역 활성화」, '한국민요학'(제34집), 2012>를 참고하며 도움이 된다.

시마우타, 지역활성화와 제이팝의 양 날개

시마우타를 통해 민요의 부흥뿐만 아니라 지역경제를 포함한 지역 활성화가 이루어진지 오래다. 시마우타의 전통 외에도 아마미민요대회의 수상자들이 일본 가요계로 진출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송가인이 전국노래자랑 진도편에 나가 일약 붐을 일으킨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전국노래자랑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우타샤(歌者)의 노래가 아마미오시마 전역에서 유행하게 된 것도 민요대회나 종합적인 콩쿠르 등의 무대 활동이었다. 이것이 레코드 출시로 이어진다. 우타샤(歌者)는 우타아소비(歌遊び)의 난장에서 길러져 유명해진 존재를 말한다. 우리 경우와 정확하게 대칭되는 건 아니지만 예컨대 향토민요 전문가라고나 할까. 우타아소비는 남도의 '산다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민요대회나 콩쿠르를 통해 우타샤의 노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주목한다. 당초에는 마을단위나 개인이 주최하는 작은 민요대회들이 열렸다. 그러다가 아마미오시마 전역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민요대회로 확장된다. 나카하라 유카리의 <「남태평양해역조사보고서」, 2006>에 의하면, 1961년 동경에서 개최한 문부성 주최 민속예능대회에 아마미오시마의 시마우타와 하찌가쯔오도리(八月踊, 흔히 추석에 추는 춤으로 해석된다)가 출연하게된 것이 시작이다. 이때로부터 붐이 일어나 급기야는 제이팝(J-pop)계에 시마우타의 스타들을 탄생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아마미 시마우타의 기점이 되는 스타는 하지메치토세(元ちとせ)다. 한국에서도 그녀의 와다츠미의 나무(ワダツミの木)가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세토우치쵸 카토쿠 출신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마우타를 배워 1996년 17세에 아마미 민요 대상을 수상하였다. 알려진 것처럼 2002년에 메이저 데뷔를 하자마자 그 독특한 가성(특히 시김새)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시마우타 창법과 하지메치토세의 등장

시마우타는 특유의 가성을 많이 사용하는 노래다. 일종의 시김새인데, 그 기초에 있는 아마미 민요의 매력이나 독자성을 어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오키나와 민요의 그늘에 가려져 개성적인 측면을 인정받지 못하던 아마미 민요는 하지메치토세(元ちとせ)의 활약으로 그 존재를 부각시켰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가 부른 노래 중에서 전통적인 우타가케 형식(주고받는 형식)으로 부른 노래들을 다양하게 확인해볼 수 있다. 메이져 대회에 데뷔한 후 제이팝(j-pop)으로 번안해 부른 노래 속에서도 이 형식은 변함없이 확인된다. 아마미오시마 시마우타의 특성 중의 하나는 노래의 1/3 이상을 특유한 가성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이팝으로 번안된 노래 속에서는 이런 특성이 많이 희석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메치토세가 가진 아미미오시마 시마우타는 일종의 '전통 브랜드'로 대우받아 왔다. 하지메치토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마우타 기반의 가수 중에서 리키(Rikki, 中野 律紀)도 주목할 만하다. 15세에 제13회 일본민요대상 그랑프리를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앨범 "Miss you Amami"에서 아마미 시마우타와 팝의 접점을 찾았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터넷게임 중 파이널판타지 10 주제곡 <스테키다네>를 통해 이런 측면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곡은 한국가수 이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불려졌다.

시마우타 전개, 월드뮤직에 영향을 받다

하지만 하지메치토세나 리키와는 다르게 매우 독특한 시마우타 창법으로 메이져 무대에 서는 가수도 있었다. 아사자키이쿠에(朝崎郁恵)가 여기 해당된다.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푸르의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곡, 오보쿠리에에우미(おぼくり~ええうみ)를 통해 이를 엿볼 수 있다. 하지메치토세나 리키보다 아마미 시마우타의 전통기법을 훨씬 강조하는 듯한 특유의 창법과 가성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마우타의 붐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한 세계적인 월드뮤직의 유행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제3세계를 포함한 많은 지역의 음악을 소개하여 시마우타가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사자키이쿠에(朝崎郁恵)의 CD가 한때 월드뮤직 챠트 1위가 되었던 사실을 주목한다. 실제 노래를 들어보면 그녀의 독특한 음색이 어떻게 월드뮤직의 탑을 점할 수 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시마우타의 독특한 음색이 향토나 고향의 의미로 수용되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세계에는 시마우타와 같은 소수 언어와 독특한 창법으로 불리는 민요가 많다. 그중에서 국경을 넘어 청중을 획득하고 있는 민요도 적지 않다. 전승에 관련된 여러 가지 공통의 문제들을 안고 있긴 하지만 시마우타의 사례는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유아에서 노인층에 이르기까지 아마미오시마 전역의 각급 학교, 공민관(마을회관), 교습소, 주점 등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제이팝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장르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지역활성화 관련 정보는 지면을 따로 만들겠다.

시마우타에서 얻는 시사점

한낱 민요와 놀이에 불과했던 우타 아소비를 거쳐, 독특한 창법으로 재창조된 시마우타의 활성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들이 부지기수다. 아프리카의 노동요가 아메리카로 건너가 블루스와 재즈로 번안되며 재창조되었던 맥락을 연상케해준다. 가장 먼저 언급해둬야 할 부분은 제이팝이라는 대중성과 아마미오시마라는 지역정체성을 매우 현명하게 조율해 낸 사례라는 점이다. 일본 자체가 섬나라인 까닭에 섬을 표방하는 민요를 고향 혹은 향수로 수용하는 맥락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얘기일 뿐이다. 그 심층을 파고들어 분석하는 것이 이 현상을 주목하는 올바른 태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요가 지역을 살리는가라는 거창한 화두로 공연 및 연구에 내가 참여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시마우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가고시마대학의 야나가와 교수의 언술을 빌려 말하면, 아마미오시마 민요 상황을 체크 하는 것은 판소리를 포함한 한국 민요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고 준비하는 것과 같다. 전승의 배경(컨텍스트)만 보더라도 시마우타를 기반으로 한 민요대회, 축제, 우타샤(전문 노래꾼), 본토로 진출한 전문 민요가수(제이팝 가수) 등을 포함해 마을제사, 에이샤(북놀이), 춤, 예능예술, 의례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고 종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물론 지금 우리도 컨템퍼러리 뮤직 등 여러 장르에서 시도되고 있긴 하지만 시마우타에 미치진 못한다. 나는 당시 논문에 이렇게 썼다. 한국의 민요를 메이저 무대에 세우는 또 하나의 '하지메치토세' 혹은 판소리기법 그대로 메이저 무대에 승부하는 '아사자키이쿠에'가 출현하는 토대 구축과 민요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한 것 아닐까라고. 그 답의 일부를 송가인이 해주었다.

남도인문학팁

시마우타가 활성화된 이유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시마우타(島唄)는 창작민요이면서 전통성을 담보하는 노래다. 어떻게 이 노래가 지역성과 고향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는지 벤치마킹이 필요해 보인다. 시마우타는 전통적인 우타아소비(歌遊び, 우리의 산다이와 비교 가능)를 통해 보존 전승해왔다. 우타샤(歌者)라고 하는 노래 전문가가 마을, 지역 등에서 독창적인 바이브레이션(시김새에 비유 가능)을 전승해왔다. 우타아소비 뿐만이 아니라 실제는 하찌가쯔오도리(八月踊, 추석의례)를 통해 전승이 확산되어 왔다. 우리의 강강술래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시마우타라는 호명방식은 민요의 하위 범주로 인식되는 장르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섬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노래하는 방식은 매우 즉흥적이다. 즉흥적이어야 진정한 시마우타 가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노래와 마지막 마치는 노래는 고정되어 있다. 매우 조직적인 발전의 경로를 가진다고나 할까. 본래 섬지역의 고립과 고독, 억울함, 슬픔 등을 담아내던 노래의 정서가 현대 일본인들에게도 공유되고 인정된 측면이 있다. 반주악기가 샤미센(三味線)과 치진(북)으로 고정되었다. 이 형태를 정형화한 셈. 마치 우리 판소리와 소리북의 구성에 비유할 수 있다. 전승은 공민관이나 개별적인 시마우타 교실(사설 교습소 등)을 통해서, 특히 거의 모든 공교육기관인 학교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보존 전승이 효율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우리의 경우, 진도지역에서는 1980년대부터 각 학교마다 민요와 민속놀이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마미오시마의 독특한 목청과 음색을 시마우타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제이팝(J-pop)가수라고 할지라도 시마우타 가수라는 호명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바로 이 특성을 살려 노래하기 때문이다.

고향 기카이지마에서 시마우타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샤오리 양(들고 있는 것이 치진이라는 북)

고향 도쿠노시마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우타샤

아사자키 이쿠에(아마미신문사)

하지메치토세 음반

하지메치토세(tvfan교토뉴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