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소방차 전용구역… 아파트 화재 '빨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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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무용지물 소방차 전용구역… 아파트 화재 '빨간 불'
떡 하니 차량들 점령하고 희미하게 바랜 구역표시||가려진 유도선 있으나마나… 관리주체 없어 방치||"시민 소방안전의식만이 현 상황 유일의 해결책"
  • 입력 : 2019. 12.12(목) 17:52
  • 김진영 기자

지난 2월 소방당국이 소방차 유도선을 설치하고나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소방차 유도선'이 불법 주정차된 차량으로 인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있으나마나한 소방차 전용구역, 소방차 출동로 표시 유도선에 떡하니 세워진 차량들….

광주 시내 아파트가 대형 화재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아파트 내 각종 소방 시설들이 안전불감증 탓에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지만, 이를 관리할 주체마저 명확하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12일 오전 10시께 찾은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

출근 시간이 제법 지나 빈 자리가 듬성듬성하지만, 한 차량이 소방차 전용구역 한가운데를 버젓이 점거하고 있다.

다른 단지로 가니 아예 소방차 전용구역을 표시한 페인트가 모두 마모돼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아파트 내 소방차 출동로를 표시하기 위해 그려놓은 유도선마저 주차된 차량에 가려 무용지물인 상황. 이 아파트는 지난 2월 소방당국이 소방차 유도선을 설치하고 나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설치 후 10개월도 채 되지 않아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한 꼴이다.

소방시설 관리도 '엉망'이다.

관할인 북부소방서에 문의했더니 "공동주택 내 소방차 전용구역은 소방서의 관할 구역이 아니다"고 했고, 북구청에서도 "관리 권한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관련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8월 개정된 소방기본법이다. 법에는 100인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3층 이상 공동주택에는 반드시 소방차 전용구역을 설치하고 주정차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법이 시행된 이후인 지난해 8월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신축 건물에만 적용된다.

개정된 법 시행 이전의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에 대한 기준이 없고, 과태료도 부과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주시내 대부분의 아파트 소방차 전용구역이 '임의로 선을 그어놓은 공간'에 불과하고, 무분별하게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한 이유다. 그나마 관리사무소를 통해 '소방차 전용구역 주정차 금지' 안내판을 설치하거나 계도하는 수준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방안이다.

물론 화재가 났을 때 소방당국이 소방차 전용구역에 주차된 차량을 임의로 옮기거나, 불가피한 경우 소방차로 그냥 밀어버릴 수는 있다.

개정 소방기본법에 의하면 소방 활동 중 불법 주·정차된 차량을 파손해도 손실 보상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규정 역시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법이 개정된 이후 광주시 내 소방차가 불법 주·정차된 챠량을 파손한 사례는 지금까지 한 건도 없다.

차량 파손 시 자칫 소송의 가능성이 있는 데다, 인명구조 상황을 증명하는 것은 모두 출동 소방관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 소방서 관계자는 "한시가 급한 긴급 상황에 일일이 차량파손이 불가피했다는 증거자료를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법이 개정됐어도 주차된 차량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결국 '시민들의 소방안전에 대한 의식 개선'만이 현재로서는 현실적인 대안인 것이다.

다른 소방서 관계자는 "법령 개정이나 부족한 주차장 문제 해결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작은 불씨가 큰 불이 되기 전에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함께 동참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2일 오전 10시 광주시 북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 소방차 전용구역에 주민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김진영 기자 jinyo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