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송가인 증후군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송가인 증후군
  • 입력 : 2020. 01.08(수) 13:47
  • 편집에디터

송가인. 뉴시스

밤새 눈물 흘리며 듣는 송가인의 노래

밤새 송가인 노래를 들었다. 날이 새도록 훌쩍거렸다. 이른 새벽 방바닥에 넘어진 소주 몇 병, 마치 실연당하고 죽기를 결심하던 젊은 날의 상흔처럼 처연하더라. 내 형님과 매형 얘기다. 송가인이 부르면 모든 노래가 명곡이 된다나. 한 교수도 말했다. 같은 노래를 송가인이 부르니까 완전히 차원이 다르더라. 밤새워 송가인 노래를 듣다가 다음날 중요한 일정을 펑크 낸 적이 여러 번이라고. 이 정도면 문제가 심각하다. 송가인증후군(신드롬)으로 호명하는 이유일 것이다. 반론이 나온다. 무슨 차원씩이나? 뽕짝 아닌가? 가곡이나 클래식, 아니 서양에서 직수입한 팝에 비해서도 열등하고 비천하다 놀림 받았던 노래, 공식적인 자리보다는 뒷풀이나 술자리, 노래방 따위서나 불렀던 노래. 그런데 이 무슨 역전현상일까? 이구동성으로 저자에 떠도는 송가인의 전성시대, 참말로 그 시대가 온 것일까? 의문이 남는다. 환호 받는 대부분의 노래들은 옛 트로트 아닌가. 한 많은 대동강, 미아리 눈물고개, 무명배우, 거기까지만... 아 그러고 보니 송가인은 못하는 노래가 없다더라. 세상의 모든 노래는 다 부를 수 있다더라. 인성이 너무 고와 사람냄새가 흥건히 풍기는 스타라더라. 어디 가서 송가인 노래 별거 아니라고 말했다가는 당장 삿대질이 따라온다. 당신이 트로트를 알아? 어이쿠 송가인 팬클럽 회원들이신 모양이다. 아니, 팬클럽 아니야. 송가인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나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그렇구나.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후벼 파게 만들었을까. 크게는 두 가지를 주목한다. 하나는 송가인의 노래실력이요 다른 하나는 사회현상이다. 노래 이야기는 다음 차에, 오늘은 사회현상으로서의 송가인 신드롬, 그 탄생의 배경을 추적한다.

작은 형님은 서독과 중동으로 큰 매형은 베트남으로

광범위하다.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눈물 콧물 훌쩍이는 사람들. 정확하게 집계할 수는 없겠지만 좁혀보면 대개 중장년 특히 남성층이다. 여성 등 다른 층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이른바 주류 세력들을 주목한다. 2014년 연말을 강타했던 영화 <국제시장>, 이 영화를 보고 눈물 찍어낸 이들도 아마 여기 속할 것이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형님 얘기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어린 두 딸을 식모살이 보냈다. 큰 아들만 끼고 앉아 작은아들은 목포 공생원으로 보냈다. 시골에 남았던 큰아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고아원으로 보내진 덕에 작은 아들은 고등학교까지 나올 수 있었다. 행운이라고 말해야 하나 비참이라고 말해야 하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도 생업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도 했다. 덜커덕 큰 아이를 낳았다. 결단이 필요했다. 다른 나라로 가면 단기간에 먹고살 돈을 벌 수 있다더라. 마침 국가에서는 중동 근로자 송출, 베트남 기술자 파견, 서독 광부 및 간호사 파견 등 노동력을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오일달러 획득, 1975년 600명에서 1978년 10만 명, 가장 많은 때는 20만 명까지 파견되었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하며 벌어들인 오일달러 때문에 한국은 다시 한 번 경제부흥을 할 수 있었다. 이보다 앞서 이루어진 서독광부 파견. 국가기록원 자료를 인용한다. 1963년 서독으로 떠날 광부 500명을 1차로 모집했다. 4만 6천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대졸자를 포함한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낯선 나라 독일의 지하 갱도에서 목숨 걸고 석탄을 캐는 일이었는데도. 간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서독 파견 광부는 8천여명, 간호사와 조무사 등은 1만천여명,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연간 약 5천만 달러, GDP의 2%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매형의 월남파병에 닿는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지속된 베트남 참전. 8년간 총 31만 2천 853명이 파견되었다. 이중 5,099명이 사망했다. 11,232명이 부상당했다. 살아 돌아왔으나 후유증으로 죽은 이들도 다수, 159,132명은 고엽제 피해자로 간주된다. 집계 외의 피해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이 파견으로 얻은 현대화 장비, 해외전투수당 등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죽음으로 바꿔 이룬 한국의 경제라고 하면 너무 심한가? 다행히 매형은 살아 돌아왔다. 대강 짐작이 간다. 이들이 송가인의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 송가인의 노래가 특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이 노래를 통해 살아온 역사를 반추하고 소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외 파견 혹은 징집 등의 역사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거슬러 올라간다.

묻지 마라 갑자생에서 묻지 마라 58년 개띠까지

물어볼 필요도 없는 한국의 전설이다. 1924년 갑자(甲子)생,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시작한 1944년, 이들은 스무살이었다. 아주 심한 장애를 갖지 않은 경우 무조건 신체검사 합격이었고, 묻지도 않고 전쟁터로 끌고 갔던 것. 문제는 살아 돌아온 이들이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다시 징집대상이 되어 골육상잔의 전쟁터로 내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연령층별로 구분한다면 이들만큼 어처구니없는 세대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묻지 마라 갑자생은 그 표본일 뿐이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만주사변이 발발한 1931년부터 태평양전쟁이 종료된 1945년까지 징용피해자는 730여만 명에 이른다. 중복 집계된 경우가 많아 실제 피해자는 대략 23만 여명의 군인과 15만 여명의 군속 등 총 36만 5천명이다. 6.25전쟁 피해도 다르지 않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의하면, 한국군 전사 137,899명, 부상 450,742명 총 621,479명의 사상자를 냈다. 유엔군도 151,129명에 이른다. 북한군도 사망 520,000명, 실종 120,000명 총계 640,000명에 이른다. 민간인 피해는 더욱 심해서 140여만 명에 이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죽어간 것일까. 어쨌든 피로 바꾼 세상, 참혹한 시대를 넘어 경제 부흥을 시키고 하나 둘 세상을 떴다. 생존 갑자생들은 이제 97세가 되었다. 물고 물리는 연대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극심한 시대를 겪으며 이들이 낳은 아들딸들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성장한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다. 이차대전 이후 베이비붐이 일어난 세대들로 서구에서는 1946년에서 1964년을 말하지만, 우리는 1955년부터 1963년생을 지칭한다. 한국전쟁이 끼어 있어 붐이 늦게 시작된 셈이다. 갑자생을 상징 삼는 세대들의 상흔을 상속받은 세대다. 이들 또한 한 시대의 산업역군으로 이 나라를 부흥시켜왔다. 베이비붐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은, 1962년부터 시작한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가족계획사업이 실시되면서부터다. 이 세대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그 가운데 58년 개띠가 있다. 이 시대를 말하는 갖가지 키워드 언급은 차후로 미룬다. 어쨌든 2020년 올해 63세이니 하나 둘 은퇴를 시작했다. 그래서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와 중동파견 근로자, 베이비부머 세대를 잇는 고리가 있을까? 나는 그것을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남 볼 새라 눈물 훔쳐내는 현상에서 찾았다. 이 현상이 이제는 드러내놓고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며 환호하는 풍경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유트브 등 SNS가 다리를 놔주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중장년층에 집중된 트로트 신드롬, 송가인증후군을 설명하기 난망하다.

베이비부머에서 잉여인간으로

어쩌다 할아버지. 현 단계 베이비부머세대를 일컫는 언설이다. 한국전쟁 끝나고 1955년 베이비붐 일어나던 해부터 태어난 이들이 이제 66세를 넘긴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는데 어쩌다보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더라. 1960년생들까지 차차 은퇴를 하고 있다. 머지않아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통째로 산업현장을 떠나게 된다. 문제는 은퇴 후다. 매우 급속한 인구 팽창을 가져왔던 패턴만큼이나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된다. 한 통계에 의하면 베이비부머 세대 남성이 은퇴 후 1년 안에 자영업자가 될 확률은 11%다. 높은 비율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다시 실업의 위기에 몰린다. 연금 등 재테크가 확실한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자녀들에게 쏟은 정성만큼 이익이나 관심이 피드백 되지 않는다. 생애주기별 노후설계가 안되어 있거나 있어도 미약하다. 점차 사회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결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386에서 586까지 시대의 아젠다를 석권하며 민주화를 이끌고 제4차산업혁명의 초입까지 징검다리를 놓았던 성과들도 이제는 대놓고 무시당하거나 비판받는다. 사회로부터 강제된 잉여인간이 되어간다. 이것을 용납하기 힘들다. 허망하다. 절망스럽다. 인구팽창시대의 관행을 따라왔던 열정들이 후회된다. 자녀들마저 부모와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한 통계를 보면 청소년 75%가 이 나라에서 살기 싫다고 한다. 자신들이 먹여 살릴 부모세대와 거리를 두려 한다. 부담이 큰 탓이리라. 수축사회에 들어선지 오래이니 일자리 얻을 기회가 적어진 것은 당연한데, 해법은 요원하고 계층 갈등만 부추기는 추세다. 묻지 마라 우리 세대, 서로들 끼인 세대라고 푸념한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부모를 극진히 모셨던 마지막 세대, 자식들에게 배척당하는 첫 세대, 조상제사도 없애면서 몸부림치지만 문화적 급변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다. 베트남파병으로부터 중동파견,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이어진 이들의 마음을 송가인이 톡 건드려주었던 것 아닐까. 그러지 않아도 울고 싶었는데 뺨을 때려준 꼴. 잉여인간으로 내몰린 세대 모두를 말이다. 송가인은 인성도 좋다더라. 늙은 아비를 둔 효녀 막내딸 캐릭터다. 묻지마라 갑자생들 모두 떠나고 58년 개띠들까지 은퇴하는 시즌 내내 트로트 송가인 혹은 또 다른 송가인들의 시대는 이어질 듯하다. 묻지 마라 다음 세대는 누구일까. <82년생 김지영> 혹은 새로 만들어질 <92년생 누구>, 젠더(gender)를 포괄하는 이들이 소환할 래퍼로서의 또 다른 송가인이 저기 저만치 오고 있다.

남도인문학팁

2019년의 인물 트로트 가수 송가인

2019년 방송연예분야 올해의 인물로 송가인이 등극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발표에 의하면 EBS 캐릭터 펭수가 20.9%로 1위, 송가인이 17.6%로 2위를 차지했다. 펭수가 캐릭터이니 사실상 송가인이 1위인 셈이다. 세계를 주유한 BTS(16.7%)보다 앞섰다. 가히 송가인의 전성시대가 열렸던 해였다. 분명한 사회현상 중 하나다. 무엇이 송가인을 올해의 인물로 등극시켰을까. 다음 차에 송가인 트로트 특성의 징후독해를 시도해보겠지만, 무엇보다 이 열광의 배후, 사회적 배경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조짐이 시작된 것은 베이비부머 시대가 은퇴를 시작할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폭발적 환호를 받은 것은 송가인 본인의 노래보다는 옛 시절의 트로트다. 이 노래들 속에는 묻지 마라 갑자생을 연원 삼는 베트남 파병, 중동 파견, 베이비부머 세대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강제된 잉여인간을 부정하며 이들이 소환하는 것은 송가인을 앞세운 은퇴세대의 마지막 함성일지도 모른다.

송가인. 뉴시스

송가인. 뉴시스

송가인. 뉴시스

송가인.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