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낙연 전 총리가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당 대표실에서 총리 재임 기간 소회와 다가올 4·15 총선 계획을 밝히고 있다. 나건호 기자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의 간판으로 여의도 정치에 돌아왔다. 전남지사와 연이은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 임명으로 정치권을 떠난 지 6년 만이다. 그 세월 동안 이 전 총리는 집을 떠나 관사 생활을 해왔다.
"집을 떠난지 6년이 넘었네요. (총리 퇴임후) 오랜만에 갔더니 낯설어요. 집이 쌀쌀맞았어요. 첫날 밤 몹시 뒤척였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자연인으로 돌아온 첫날 밤의 기억은 낯설음이었다. 20년 동안 묵묵히 걸어온 '정치인 이낙연'으로 다시 첫발을 떼는 설렘인지도 모른다.
이 전 총리는 "정치와 행정은 국민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일"이라고 했다. 총리 시절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온 그의 위상은 남달랐다. 현장에서 국민과 호흡해 온 '현장형' 책임총리였다. 그에게 현장에서 만난 국민의 목소리는 명령이었다.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이 아닌 '국민의 그림자'로 일했다. 자연스레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2년 7개월 13일, 958일)라는 영예를 안았다. '단명'이 많았던 대한민국 총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안정적 국정 운영과 재난재해 등 발 빠른 현안 대처, 뛰어난 국민 공감능력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의 비결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현직 총리가 대선주자 1위 자리를 꾸준히 유지한 사례는 없었다. 그는 최장수 총리 임기를 마치고 민주당에 복귀한 지금,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두고 지난 16일 이 전 총리를 만났다. 총리시절 보람과 고민의 기억들, 정치인 이낙연, 4·15 총선에서의 역할, 서울 종로 출마, 시대정신, 호남의 자랑과 기여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전남일보와의 대담은 여의도 민주당사 9층 당 대표실(민주백송홀)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총리 이낙연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 일한 소회가 남다를것 같은데.
△참 바쁘게 일했다. 2017년 5월31일 오후 6시 취임식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가뭄해 지역을 방문했다. 경기도 안성의 저수지. 밑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다. 퇴임 2~3일 전 마지막 주말에는 경북 울진의 수해지역을 찾았다. 2년8개월은 현장에서 시작해 현장에서 끝났다.
-정치에서의 현장은 결이 좀 다른데.
△정치와 총리의 현장은 다르지 않아야 한다. 전남지사 후보 경선과정에서 삶의 현장을 많이 다녔다. 그때마다 카카오스토리에 글을 올려 '전남 땀으로 적시다'란 책을 냈다. 희망과 위로를 드리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던 순간은 강원도 산불이었다. 고성 대피소에 갔는데 산불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기억마저 잃게 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어깨에 기대 우시는데 그때 기억이 오래 남는다. 정치행정이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을까. 굉장히 무거운 느낌이었다. 가장 긴장한 때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였다. 박근혜 정부 때 38명이 사망했다. 2018년에 또 발생했다. 잔뜩 긴장하고 대처했는데 다행히 사망자 없이 끝났다.
-보람 있었던 일은.
△AI(조류독감) 차단 방역에 성공했다. 총리 직전 3800만 마리 닭과 오리를 살처분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살처분이 없었다. 방역이 엄청 발전했다. 정부와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고민도 많았겠는데.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못살게 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발생 때도 밤중에 농장을 찾아가고, 농림부장관은 새벽 4시에도 문자를 보냈다. 이들의 노고 덕분에 지금은 유례없이 안정적이다. 작년 10월9일 이후 발병한 집돼지(사육돼지)는 한 마리도 없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분인가.
△신념이 강한 분이다. 문제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고, 이를 논리적으로 정리한다. 원칙주의자이고 배려심이 깊다. 아랫사람을 관대하게 대한다. 저를 부를 때 한 번도 '님'자를 뺀 적이 없다. 비서실장 앞에서도 당신을(자신을) '저'라고 낮춘다.
-현 정부 성공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태생적인 숙제를 안고 태어났다. 촛불정신이라고 말하는데,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탄핵과정에서 국민의 요구가 분출했다. 분노와 절망이다. 그 요구를 실현하는 게 숙명적 과제였다.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가고 있는 것은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다만 효과를 더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좀 더 유연해지면 좋겠다. 현장의 사정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3대 요소는 정확성과 수용성, 실행성이다. 정책의 선후가 충돌해선 안 되고, 전달과정에서 받아들여지고 이행되는 힘이 있어야 한다.
-20대 국회를 평가한다면.
△20대 국회가 최악이라고 한다. 시끄러운 국회일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 탄핵 소추를 의결했다. 갈등은 잉태돼 있었다고 봐야한다. 지금도 탄핵을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이 있어 갈등요인은 내재돼 있다. 그럼에도 충돌이 심했다. 그러나 막판에 패스트트랙 제도를 활용해 몇십 년 미뤄왔던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이 채택됐고, 선거법도 통과했다. 역사적인 일을 해냈다. 욕먹었던 것에 비하면 한 일도 꽤 많다.
-21대 국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신뢰와 품격이다. 믿음이 가는 국회가 돼야한다. 국민에게 의지가 되는 국회로 거듭나는 게 신뢰다. 막말과 몸싸움은 그만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발언과 행동이 국민에게 투영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논쟁하더라도 기품있게 했으면 좋겠다.
◇정치인 이낙연
-정치를 하는 이유는.
△지난 1989년 처음으로 (영입) 제의를 받았다. 서경원(평화민주당) 의원 밀입북 사건 당시 정치적 재기를 준비하던 김대중 총재에게 큰 타격이 됐다. 동교동에서는 저를 투입하고 싶었다. 동교동 비서 두 분이 찾아왔다. 국창근, 이훈평 전 의원이다. (영입 제안) 바로 직전에 동아일보에서 도쿄특파원 내정을 통보받았다. 두 분의 제안을 사양했다. 그러다 2000년 논설위원과 부장을 마칠 무렵, 다시 제의가 와 수락했다. 국민에게 뭔가 위로가 되는, 희망이 되는 말을 해드리고 싶었다. 국정에 반영하는 통로의 역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가난하게 성장해 와 어려운 분들의 사정을 잘 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은.
△약점은 뭉쳐 다니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를 하려면 조직을 만들고 뭉쳐 다니는 게 필요한데, 외롭게 성장해서인지 거북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졌을 때 합류 안 하고 민주당을 지켰다. 나중에 다시 합쳐지니까 소수파가 됐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강점은 덜 뭉쳐 다녔다는 점이다. 소수파로 남아 좁은 길을 걸어왔다. 정치인의 냄새가 덜 난다고 한다. 오히려 국민에게 점수를 받는 요인의 일부가 된 것 같다.
◇21대 총선과 이낙연
-21대 총선이 갖는 의미는.
△21대 총선은 역사가 문재인 정부에게 짐 지어준 과제를 좀 더 빨리 해결하게 할 것이냐, 지체시킬 것이냐가 걸려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변하는 과정에서 빈부격차의 확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국제질서도 재편되기 위한 전환기적 고통 같은 것이 느껴진다. 변화 속 고통이나 혼란 같은 게 엄습해 오고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중심을 잡고 나갈 것인가. 불평등의 확대, 국제질서속에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정리해 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21대 국회가 수렴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여야 성적표를 예측해본다면.
△겸손하게 총선에 임하고 절박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종로 출마가 굳어지고 있는데.
△종로에 전셋집을 계약했다. 선거에 어떻게 임할지는 최종적으로 당이 결정해야 한다. 당도 여러 고민이 있을 것이다. 종로도 지켜야 하고, 제가 전국 순회했으면 좋겠고. 두 가지를 완벽하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종로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서울에 와서 맨 처음 산 곳이 효자동이다. 입주가정교사를 했다. 신문로의 사설 독서실, 창신동 달동네 자취방, 삼청동의 시내버스 108번 주차장 앞 큰 독서실, 평창동 연립주택 등. 남루한 청춘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종로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되면 지원 유세와 지역구 선거 병행이 쉽지 않을 텐데.
△그 점을 당에서도 고민할 것이다. 당 결정에 따른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지원 유세를 요청한다면.
△중앙선대위에서 책임을 맡게 된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당의 계획을 봐야 되겠다.
-앞으로의 시대정신에 대해 "실용적 진보주의 관점에서 찾겠다"고 말했다. 보다 쉽게 설명하면.
△유능한 진보, 효과를 내는 진보다. 역사를 앞으로 끌고 가는 진보,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진보, 온건한 의미에서의 진보인데, 수식어를 붙이자면 효과를 내는 유능한 진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꾸는 나라는 성장과 포용이 같이 간다고 말했는데.
△과거 같은 고속성장을 다시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장이 멈춰서도 안된다. 경제는 성장을 멈추면 병이 든다. 늘 일정 정도의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 불평등 심화도 치유해야 한다. 치유는 포용이다. (포용을) 세금으로 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세금은 그런 곳에 쓰려고 내는 것이다. 생계가 힘든 사람에게 세금으로 생활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해야만 또 성장한다.
◇이낙연과 시대정신
-광주시·전남도의 미래 성장동력 육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꼽는다면.
△광주시와 전남도가 방향을 잘 잡았다. 에너지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 기본이다. 광주는 AI(인공지능)산업 육성, 전남은 블루 이코노미다. 전남지사 시절 '가고 싶은 섬' 사업을 확장한 개념 같다. 여기에 관광산업을 꼭 넣었으면 좋겠다. 전남은 매력적인 자원이 있다. 바다와 섬과 해안선이다. 블루 이코노미에서 떼내서라도 관광산업을 크게 해 볼 필요가 있다.
AI를 하겠다는 지자체가 많다. 정부 입장에서는 AI 중 가장 관건이 되는 게 인재 양성이다. 거점 국립대학 중심으로 양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와 연계해 향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다른 지자체와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가가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정부를 설득하기 쉽지 않다. AI 차별화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블루 이코노미는 중앙정부의 특별한 지원을 받고 싶다면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호남이 보강해야 할 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 '호남은 도와주고 싶어도 뭘 도와줘야 할지 모른다. 영남은 좀 된 것 같은데 안 도와주면 큰일 나게 써 온다.' 지금도 약간 그런게 있다.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설명이 필요하다.
◇이낙연과 호남
-호남이란.
△호남은 농경시대에는 민족을 먹여 살렸고, 호남인들의 땀으로 백성을 먹여 살렸다.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민주주의가 위기에 부닥쳤을 때 피로 지켜냈다. 피와 땀을 바친 헌신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호남인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단지 산업화 시대에 상대적인 낙후가 있었는데. 그건 하기 나름이다. 어려움만 너무 보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힘을 모으면 미래를 만들 수 있다. 호남의 자랑과 기여는 전 국민이 기억해야 할 유산이다.
-향우들의 기대가 높다.
△한때 호남식 절망 같은 게 있었다. '호남은 안될 것이다'라는. 이런 생각을 떨쳐내야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달라.
-설 명절, 지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명절 잘 쇠시고, 가족과 따뜻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주변에 외로운 분들이 계시지는 않은지 한번 둘러봐 주시고. 고향을 자주 가고 싶지만 욕심만큼 못가더라도 이해해 달라. 호남의 아들 잊은 적이 없다. 저에 대한 기대도 충분히 알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겠다.

이낙연 전 총리가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당 대표실에서 전남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지난 총리 재임 기간 소회와 다가올 4·15 총선 계획을 밝히고 있다. 나건호 기자
"불행·슬픔 겪는 국민들에
'눈에 보이는 위로' 전해야"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중 하나는 그의 남다른 공감 능력이다. 총리실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공직자들에게 국민과 공감하는 방법, 특히 슬픔을 간직한 국민에게 다가가는 자세에 대해 당부의 말을 잊지않았다. 2년8개월 가까이 민생을 돌봐온 '현장총리'가 전하는 공감능력은 무엇일까.
이 전 총리는 퇴임을 앞두고 총리실 간부들에게 '불행을 겪은 국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고 한다.
"산불이 났다. 물난리가 났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런 국민에게 가서 위로만 해드린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모든 것을 잃으면 눈 앞이 캄캄해져요. 그들에게 눈 앞이 보이도록 해줘야 해요."
그는 "위로만으로 눈 앞이 보여지는게 아니다"며 8단계의 눈에 보이는 조치를 깨알같이 메모한 수첩이 나온 배경을 설명했다.
"산불이 나면 산에 가까운 마을부터 타고 읍내로 갑니다. 산에 가까운 마을은 농촌이겠죠. 산불 난 시기가 4월, 못자리 준비할 때였어요. 농민들 만나서 볍씨 다 타 버렸죠. 무상으로 드릴게요. 농기계 하나 못가지고 나왔죠. 모내기 할때까지 지원할게요. 읍내 마을회관에 가서는 어머니들에게 혈압약 못 가지고 나왔죠. 오늘 중에 꼭 전해 드릴게요."
그는 "대피소, 임시주택 마련, 주택 복구 등을 언제까지 어떤 예산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한다"며 "그게 바로 눈에 보이는 '위로'"라고 설명했다. 말 뿐인 위로에 공감하는 국민은 없다는 지적이다.
전남지사 재직 시절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의 유가족을 3년동안 만나며 깨닫게 된 슬픔을 안은 국민과의 소통에 대해서도 말했다.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어요. 고통을 다른 고통과 비교하면 안되요. 자식 하나를 잃은 부모에게 자식 셋을 잃고 사는 부모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 나아질 거다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유족들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자식에게 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밥 먹는 것 조차 죄라고 생각한다"며 유족 옆에 있어달라고 주문했다. "화 내시거나 우시면 조용히 물 한 잔 앞에 가져다 놔 드리세요. 찬 바람이 불면 유리창을 닫아 드리고. 방이 어지러워져 있으면 치워주고…. 옆에 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드려요. 그러면 (유족들도) 믿음이 생기고 마음을 열어요."
"촌철살인 답변 비법은 질문자 의도 말려들지 않는 것"
야당의원 대정부질문 대처 '사이다 총리' 별명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사이다 총리'로도 유명하다. 20대 국회 대정부 질문때마다 야당 의원들의 다소 거친 질의를 촌철살인의 답변으로 받아 넘기자, 국민들이 사이다처럼 시원하다고 해서 지어준 별명이다.
이 전 총리는 민주당 대변인 시절부터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 길로 가라. 큰 길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2002년 10월)는 논평이 대표적이다. 당시 지지율이 떨어진 노무현 대선후보 교체를 요구하며 탈당한 의원들을 꼬집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16일 전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촌철살인의 비법에 대해, "질문자(국회의원)와 답변자(정부 관계자) 사이에서 승부가 나는게 아니다. 승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청자 머리 속에서 난다"고 답했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답이라는 것. 그는 "무심하게 방송을 통해 국회를 지켜본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전 총리는 "화제가 된 국회에서의 문답 공방은 예외없이 야당 의원들이 즉석에서 물어왔을 때 나온 것"이라며 "골탕을 먹이려고 질문 원고를 안 줬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 오히려 무엇인가 발동해 공방이 이뤄졌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기적같은 일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손자 이야기를 꺼냈다. "손자가 26개월 됐는데 엊그제 며느리가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어요. 며느리가 손자에게 물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중에 누가 가장 좋냐고. 손자의 답은 '타요'(장난감 꼬마버스)였어요. 그 때, 아! 이거라고 생각했죠. 질문자의 의도에 말려들면 안되는구나."
이 전 총리는 "동영상을 보고 국회에서 제가 이렇게 답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이 녀석이 내 손자는 틀림없구나"라며 환하게 웃었다.
전남 도지사 시절의 이낙연
"전남 미래 위한 투자, 섬과 숲에 올인"
2017년 5월 12일 오전 전남도청 왕인실에서는 국무총리로 지명된 이낙연 전남지사 퇴임식이 열렸다.
이 전 총리는 전남도를 떠나는 자리에서 "지사 임기를 마치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 전 총리는 전남을 '어머니'로 비유할 만큼 고향 사랑이 각별했다. 2014년 7월 취임 후 총리후보로 지명된 순간까지 3년여의 임기동안 전남 곳곳을 누비며 현장을 살폈다.
직원들과는 막걸리를 기울이며 늘 소통했고, 애착을 보였던 숲과 섬은 '숲속의 전남'·'가고싶은 섬'이라는 시책을 통해 전남만의 비교우위자산으로 키워냈다. 나라의 부름에 전남지사직을 내려놔야 했던 이 전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전남도 직원들은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도백((道伯)으로 기억하고 있다.
●위기때 빛났다
이 전 총리 지사시절엔 '세월호' 등 대형사고가 잦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장성 요양병원 화재에 이어 2015년엔 메르스사태, 가거도 헬기추락사고 등이 발생했다. 국가재난급 대형사고는 전남도로서도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 전 총리의 진가는 위기때 빛났다. 당시 보건의료과장을 지낸 강영구 현 전남도 비서실장은 "이 전 총리는 지사시절 슬기롭게 위기를 잘 극복해 냈다"고 기억했다.
강 비서실장은 "위기 단계별로 지휘체계 시스템이 있음에도 이 전 총리는 직접 진두지휘를 했다. 사고수습 뿐아니라 보안 마련까지 한치의 오차없이 처리하셨다"고 했다.
●막걸리 소통
이 전 총리의 막걸리 사랑은 각별했다. 도청 소재지인 무안 남악시장내 한 순대집을 자주찾았다. 막걸리는 직원들과 소통의 도구였다. 매회 10여명의 도청 직원들과 갖는 막걸리 번개팅은 직원들 사이에서 참석 경쟁이 치열할 정도다.
이 지사는 평소에 "가격이 싸고, 쌀 소비에 도움이 되고, 배가 불러서 절대로 2차 술자리를 가지 않고, 마시는 도중에 땀도 나지 않기 때문에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고 말해 왔다.
막걸리를 마실때 단 한번도 화장실을 간적이 없었다고 한다.
강영구 비서실장은 화장실을 왜 안가시냐고 물었더니, "중간에 나가면 내가 막걸리를 못마신줄 안다"고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 '섬'·'숲'에 올인
이 전 총리는 지사시절 다소 파격적인 신년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이 전 총리는 2015년 1월 7일 전남도청 브리핑룸에서 전남도의 올해 구상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각 분야의 사업계획을 나열하는 '관행'을 없애고 2가지 핵심 브랜드 정책만을 설명했다. 이 전 총리가 이날 제시한 전남발전 화두는 '섬'과 '숲'이다.
당시 섬개발팀장으로 발탁된 이상심 현 전남도 섬해양정책과장은 "당시 지사님은 중학교 2~3학년 수준의 섬을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으로 육성한 뒤 자발적으로 대학생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가고싶은 섬'이다.
'숲속의 전남' 또한 전남 전체를 하나의 공원처럼 조성하자는 구상에서 추진됐다.
김재광 전남산림자원연구소 소장은 "당시 산림팀에 있던 저에게 두차례나 나무를 한번 심어보자고 하셨다"면서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사업이지만 전남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금 우리 세대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늘 강조하셨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