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도참(圖讖)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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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도참(圖讖)바이러스
  • 입력 : 2020. 01.29(수) 12:54
  • 편집에디터

무안군현경면 물바위-이윤선촬영

국가의 풍흉을 점치는 무안 현경 물바위

무안군 현경면 바닷가에 물바위가 있다. 바위 이름과 관련된 물암마을은 해제면이니 두 면의 경계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가 두 남매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과객이 들었다. 주변에 주막이 없어 하룻밤 묵어가게 해 달라 부탁했다. 마음씨 좋은 부부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튿날 과객이 충분한 보상을 하려 했으나 부부는 사양하였다. 과객이 감읍하여 말하기를, 중국 남경으로 무역을 하는 사람인데 같이 가자고 권유하였다. 한번만 다녀와도 평생 먹고살 돈을 번다는 말에 남편이 따라 나섰다. 아내는 아이들 키우며 남편의 금의환향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흰머리가 생기고 병이 생겼다. 날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급기야 세상을 뜨고 말았다. 며칠 후 흰 구름이 온 바다를 덮고 굉음이 들리더니 바다에서 바위가 하나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이 바위가 부인의 넋이라고 생각했다. 넋바위 혹은 물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다. 물위로 드러난 바위머리는 고작 50Cm정도지만 아무리 만수위여도 바닷물이 넘어서는 일이 없다. 다만 예외가 있다. 죽은 부인의 넋이 영험해서일까? 나라에 큰 우환이 들 때마다 물이 넘친다. 임진왜란 때와 한일합방 때, 6.25때 물이 넘쳤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도 넘쳤다. 바닷물이 바위의 수위선보다 낮으면 흉년이 들고 조금 높으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전해오기도 한다. 근자에도 넘치는 일이 있었을까? 무안군 문화해설가 조기석씨에 의하면 박근혜대통령 탄핵일에도 이 바위의 물이 넘쳤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바위 위로 물이 넘치는 것을 목격했는데 며칠 후 탄핵 당하게 되었다는 것 아닌가.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아마도 조금사리 만조(滿潮)와 관련 있을 터인데, 사람들은 이 현상을 왜 나라의 정세와 연결해 해석했던 것일까? 여기뿐만 아니다. 자연현상과 사회적 심리를 연결하는 설화들은 전국에 무수히 분포한다.

고군산군도가 생긴 내력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포라는 어촌 이야기다. 곽씨 노인이 과부 며느리와 손자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고려 초 이야기라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다. 가난하지만 그럭저럭 생계는 유지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백발이 성성한 도사가 찾아와 말했다. 뒷산 장군 모양의 석상 코에서 피가 흐르는 날에는 이 부근 일대가 망망대해가 될 것이니 피난을 하라고 했다. 노인은 손자를 등에 업고 매일같이 장군석을 살폈다. 코에 피가 흐르면 지체 없이 피난을 가고자 함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 하시는 모양이 우습고 어리석다고 생각되었다. 장난기가 발동했던지 어느 날 몰래 올라가 장군석 코에 빨간 물감을 칠해두었다. 다음날 이를 본 시아버지가 헐레벌떡 뛰어와 피난가기를 재촉하였다. 며느리는 자기가 한 일이라 태연하게 웃기만 하고 떠나기를 거부하였다. 시아버지는 하는 수없이 손자만 데리고 피난을 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은 물론 부근의 자그마한 고을들까지 순식간에 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이때 바다로부터 섬들이 솟아올라 지금의 고군산군도가 되었다. 이 노인이 곽씨의 시조가 되었다나. 믿거나 말거나다. 이 유형의 이야기는 고을마다 지방마다 약간씩 다른 버전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다. 광포설화다. 왜 이런 설화들이 끈질기게 유포되었을까? 이야기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회자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성 전유의 반란, 도깨비굿의 사회학

무안군 무안읍 매곡리는 무안과 함평 일대의 명산이라는 보평산이 있다. 양림마을, 수반마을, 도산마을, 발산마을, 신촌마을이 띠를 이루며 경산들을 에워싸고 있다. 보평산 정상에는 조선시대 때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봉수대가 있다. 보평산과 감방산 사이에 있는 능성에는 용굴샘이 있어 명산 보평산의 풍수 스토리를 완성해준다. 이 물이 마르거나 마르지 않거나를 가지고 한해의 기후와 운수를 점쳤기 때문이다. 누군가 몰래 묘를 쓰는 일이 발생하면 이 샘의 물이 말라버린다. 보평산은 명산이고 용굴샘은 그를 보전하는 상징공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자라도 이 산에 묘를 쓸 수 없다. 하지만 자기 자손들만의 발복(發福)을 위해 몰래 묘를 쓰는 자들이 있다. 도장(盜葬)이라 한다. 그럴만한 능력과 사회적 부를 거머쥔 자들이다. 가뭄이 들거나 역병이 들면 모든 고을의 여자들이 호미와 낫 등을 들고 보평산을 뒤진다. 결국은 몰래 쓴 묘를 발견하고 파헤친다. 유골들을 흩뿌려버린다. 그래도 묘지임자가 되었건 문중이 되었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일종의 시스템이다. 명산대천은 공동체의 것인데 마을사람들 몰래 독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 가뭄이나 기근 특히 역병의 원인을 발복이나 사회적 권력의 독점 때문이라고 진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도깨비굿이라 한다. 소리 나는 모든 것들을 들고 가가호호 방문하는 사례도 있다. 진도군 진도읍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오로지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이 제의에 기왕의 체제를 담당하는 권문세족 혹은 남성들이 참여할 자리는 없다. 경상남도 등 전국의 몇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대체로 극심한 가뭄이나 역병의 유행이 심할 때 치러진 의례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년 전 이 지면을 통해 내가 소개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반란 제의는 전염병의 창궐에 대한 전복은 물론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전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마을을 하나의 사회, 하나의 국가로 치환해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역병의 창궐과 피해보다 중요한 것이 오히려 심리적 문제들이었다.

호환마마(虎患媽媽)보다 더 무서운 도참(圖讖)바이러스

중국발 우한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가 전 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다. 범아시아적 불안사회로 접어든 것일까. 호침(虎侵)이 많았던 시절에는 이보다 더 큰 우환이 없었다. 마마는 어떤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천연두를 앓게 했다는 마마 여신을 물리치기 위해, 예컨대 남도의 씻김굿에서는 아예 손님굿(마마액을 물리치는 굿)을 구성해두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거론하고 있는 역병 기사가 단적인 예들이다. 문제는 이런 전염병의 창궐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세의 흑사병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1918년 스페인독감,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우한폐렴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다. 문제는 역사 이래 창궐해왔던 전염병보다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심리의 전염이다. 이 심리들이 창궐하여 난(亂)이 되고 혹여는 혁명이 되기도 한다. 불가피한 역병의 시발(始發)을, 중국 우한(武汉)의 시장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독해하는 군중심리 때문이다. 도깨비굿이 이를 적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서의 여성은 가지지 못한자 혹은 약자에 대한 은유다. 핍박 받은자, 소외된 자들의 은유다. 수많은 예들이 있다. 몇 년 사이에 십수억을 뻥튀기한 집값의 수혜자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안전하게 골인하는 이른바 현대판 음서(蔭敍)제도의 수혜자들 말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이들의 시선은 언제나 권력층을 향한다. 그들의 정사(政事)가 극심한 편차와 갈등, 심지어 역병을 몰고 왔다고 관념하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바다가 되는 도참설화가 그냥 생겼던 것이 아니다. 부조리한 사회를 뒤집어엎고자 하는 욕망들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뉴스들을 잉태한다. 권력자 조상들의 무덤을 파헤쳐버렸던 여성 전유의 도깨비굿이나 프레이저가 보고한 왕 살해도 사실상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다. 프레이저는 말한다. 황금가지를 꺾으면 신선한 참나무 숲속을 지키던 사제왕과 집단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다. 가뭄이나 기근은 왕이 금기(터부)를 어겨 외부 악령의 나쁜 에너지가 감염되거나 병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왕을 곧바로 살해하고 다른 힘 있는 대상을 왕으로 추대한다. 외부대상(왕)에게 생명과 영혼을 맡기는 원시적 자기 보호술과 주술적 사고가 왕 살해 풍속을 그토록 오랜 기간 유지해왔다. 이를 마을로 치환하면 당산숲과 당산나무의 보전 논리와 연결된다. 그래서다. 도참(圖讖)바이러스는 입에서 입으로, 눈에서 눈으로 전염되며 오는 4월 총선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낫 들고 호미 들고 명산대천 독식한 가진자들의 이기와 위선을 파헤칠 못가진자들의 전유의 반란 말이다. 귀가 얇은 나는 무안 현경 물바위에 언제 물이 넘치는지 살피러 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하루빨리 잡히기를, 중국 진원지를 대상화하는 혐오와 배제, 염세의 비관적 바이러스들이 소멸되기를 소망한다.

남도인문학팁

바다를 육지로 바꾸어버린 정감록과 도참설화

민간에 설화나 루머로 유포되는 예언들을 도참(圖讖)사상이라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앞날의 길흉에 대한 예언을 믿는 사상으로 풀이한다. 음양오행설, 풍수지리설, 천인감응설, 부서설(符瑞說) 따위를 혼합하여 천변지이(天變地異)를 설명했다는 것. 중국 주나라 말 혼란기에 횡행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말, 고려 초기에 들어와 퍼졌다. 모두 사회적 혼란기다.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鄭鑑錄)'이다. 조선중기 이후 급속하게 유포된 책이지만 연대나 지은이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나라의 운명과 백성들의 앞날을 예언했다. 정씨 성을 가진 정도령이 조선의 왕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본이 아주 많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감록류의 여러 책들을 불온문서로 간주하여 개인의 소유를 금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왕들이 궁궐을 짓는 등 비보(裨補)적 대응을 한 사례가 있다.어떤 지역에서는 난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 16세기 말 정여립의 난이 대표적이다. 전라감사 이서구(1754~1825)의 예언도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되곤 한다. '수저(水底) 30장이요 지고(地高) 30장' 즉 변산 앞바다 바닷물이 30장 밑으로 내려가고 해저의 땅이 30장 위로 올라온다는 예언이다. 서화담과 토정 이지함으로부터 이어지는 도가풍 맥락을 이은 인물의 이야기다. 문제는 새만금 방조제에 대한 정당성 혹은 불가피성을 이 이야기를 빗대 설명한다는 것.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소환되곤 하는 이야기들이다. 무슨 터무니없는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이들 이야기는 대부분 현실에 대한 부정 아니면 극복의 심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근자에 유행하기 시작한 가짜뉴스에 비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담은 이른바 설화적 심리학인 셈이다. 불가피한 현실로부터의 탈출, 현실에 대한 합리화 혹은 정당방위 등 복잡다단한 심리들을 내포하고 있다. 바이러스만 전염되는 것 아니다. 도참설화 아니 어쩌면 SNS의 보급에 의한 가짜뉴스의 창궐, 이야기의 전염이 사회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진도도깨비굿, 1980년대 정병호 촬영

육지로 연결된 고군산군도-전라북도관광포털

고군산군도. 뉴시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지난 28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입국장에서 중국발 항공기를 타고 온 승객들이 체온 감지 열화상카메라가 설치된 검역대를 지나고 있다. 뉴시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지난 28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입국장에서 중국발 항공기를 타고 온 승객들이 체온 감지 열화상카메라가 설치된 검역대를 지나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