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民畵)란 무엇인가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민화(民畵)란 무엇인가
  • 입력 : 2020. 03.11(수) 12:39
  • 편집에디터

월간민화 3월호 표지

'월간민화'에서 이번 달 특집으로 '민화란 무엇인가'를 다뤘다. 그동안 민화학계에서 나눠 온 논의들을 종합한 듯,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다. 현재 아마추어작가까지 포함하면 작가만 10만여 명을 넘어섰다 할 정도로 민화 열풍이 거세다. 동호인들을 포함하면 그 몇 배를 추산할 수 있다. 무엇이 이같이 민화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는지 부족한 내가 분석할 수는 없다. 다만 한 의견을 보탤 뿐이다. 기왕에 두어 번 이 지면을 통해 우리 민화와 중국의 어민화(漁民畵)를 소개하고 논의를 진행시켰기 때문에 그 후속 논의라고나 할까. 특집기사에서 보듯이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또한 민화담론을 위해 보탬이 되지 않을까싶다. 항간에는 민화 그리기의 수월성, 즉 베끼기 양식을 확산의 이유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시대의 수요와 확산을 설명할 수 없다. 이른바 창작민화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요청 혹은 시대정신 등을 보다 깊숙이 분석해나갈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동일한 패턴의 베끼기 양식은 판소리 등 이른바 전통음악이나 무용 등에도 적용된다. 이 경우 선생의 예법이나 고법(古法)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을 정통 혹은 오리지널이라 한다. 받은 예법과 다르면 창작판소리 혹은 창작무용 등으로 부른다. 민화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전승해 내려오는 패턴의 그림이 아니면 창작민화라는 범주로 묶어 호명한다. 하지만 전자의 전통예술들에 비하면 개념 정의나 접근이 훨씬 자유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체를 하나로 묶어 호명하기에는 불분명하다. 도대체 무엇이 민화일까?

전문가들의 시선, 민화란 무엇인가

겸재정선미술관장 김용권은 '문화 상징 부호이자 우리 민족의 생활그림'으로, 평창아트대표 김세종은 '아트(Art)'로,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박본수는 '한국전통회화를 계승한 시각예술'이라고 말한다. 제주현대미술관장 변종필은 '인간욕망을 시각예술로 담아낸 상징화'로, 미술사학자 안휘준은 '전통의 토대 위에 펼친 무한한 상상력'으로, 조선민화박물관 한국민화뮤지엄관장 오석환은 '시대를 대변하는 예술'이라 한다. 한국민화학회장 유미나는 '욕망, 그리고 오마주'로, 민화작가 이정옥은 '생활을 담아낸 길상화'로, 민화작가 정하정은 '시대에 걸맞은 희망을 꿈꾸게 하는 미술'로, 미술평론가 조은정은 '독립된 장르이자 양식'이라고 말한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윤진영은 '학계와 화단의 명칭 구분이 필요한 회화'로 정의한다. 부르는 명칭은 민화인데 내용이 궁중화라서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안으로 채색화(彩色畵)나 길상화(吉祥畵)를 제안하고 있다. '민화(民畵)는 민화(民話)다'(다할미디어)라는 책을 쓰는 등 민화이론계를 이끌고 있는 정병모교수의 논의가 더욱 눈길을 끈다. 정교수의 견해는 한 마디로 전통적인 민화 개념의 범주를 넘어선 채색화(彩色畵)에 방점이 있다. 19세기 영국의 사회주의적 미술이론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로부터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로 이어지는 민중 중심의 해석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이때까지는 민중의 미술을 복권하여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일과 수수하고 평범한 생활미술에 대한 재평가를 중심삼아 해석해왔다는 것. 하지만 '현대민화'는 궁중화원의 그림까지 포괄하게 되어 핍박받는 민중에 대한 배려의식이 저절로 사라져버렸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서구의 한 흐름이기도 한 민중, 민화, 민속, 민요 등의 민(民)자 기피현상을 들고 있다. 민중에서 대중으로 변화했다고나 할까. 오늘날 대중미술을 보면 이른바 민화가 측은하게 여길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고급미술을 압도하고 현대예술을 주도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파한다. 이 특집의 기획팀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소개해두었을 뿐 결론을 내거나 혹은 어떤 논의로 유도하지는 않았다. 일월오봉도, 장생도, 궁모란도, 요지연도, 곽분양행락도 등 민화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들이 서민의 그림이 아닌 궁궐그림이라는 점, 베끼기 방식의 재현민화를 넘어서는 창작민화가 세력을 얻고 있다는 현장을 소개하며 차후 논의를 요청하고 있다.

민화, 민담, 민요는 아직 삼형제인가?

조동일의 주장을 다시 인용한다. 민화, 민요, 민담을 3형제라 정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민(民)이 주체가 되는 민(民)에 의한 그림'으로 이해한데서 나온 발상이라고 해석해두었다. 여기서 민화(民畵), 민담(民譚), 민요(民謠)가 걸어 온 같고도 다른 길을 살펴볼 수 있다. 생성과정은 같았을지라도 전개과정이 달랐다는 뜻이다. 조동일의 언설로 비유하자면 출생까지는 형제였는데 자라나온 과정이 달랐다고나 할까. 자세한 논의는 기왕의 내 칼럼을 참고하는 것으로 하고 중요하다싶은 내용만 가져와본다. 기왕의 내 주장은 복합적인 양상을 민화라는 용어로 통칭하는 현실을 주목하자는 것이었다. 용어나 개념 따위로 민화의 부상이나 사회적 확산을 규정할 단계는 넘어섰다는 것. 거론되는 제 용어들이 민화라는 용어 속에 용해 혹은 집산되어 있다는 점을 들었다. 민요, 민담과 민화를 형제로 묶는 방식은 주로 '민에 의한 그림'을 전제했다. 하지만 궁중그림을 포함하여 화승이나 단청장, 전문화가 등에 의한 그림들을 '민에 의한 그림'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민을 위한 그림'이라는 수식이었다. 그렇다고 민속(民俗)이 '민'을 서술하는 개념이나 내용을 확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현령비현령이다. 민중, 백성, 시민, 민간 혹은 대중이라는 개념들이 때때로 상충되고 때로는 부합된다. 민속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적 생산물이자 포괄적이다. 내셔널한 수요 창출과 민족이라는 근대 수요기에 유효했던 개념용어였기 때문이다. 주로 전통이라는 범주에 한정되는 개념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한계에 봉착해버렸다는 뜻이다. 민화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현민화에서 창작민화로 일정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우선은 민화, 민담, 민요가 삼형제라는 언설을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화'라는 개념에 민화학계의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전제로 '민화'를 포괄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 내 주장이었는데 이 제안을 폐기한다. 개명이 필요하다.

한시적으로 유효한 개념, 민화(民畵)에 다시 길을 묻는다

오는 3월 말, 광주민속박물관이 '광주역사민속박물관'으로 재개관한다. 1987년에 개관했으니 30여 성상을 훌쩍 넘겼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정체성을 바꾼다는 의미와 같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민선호도를 조사하였는데 '역사민속박물관'이 55%로 가장 호응이 높았다고 한다. 명칭변경위원회에 누가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속이란 용어 자체가 진부하거나 고답적이라는 비판이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민속'이란 호명을 버리지는 않은 것을 다행으로 봐야할까? 유럽의 경우 민속이라는 호명방식 혹은 개념들을 폐기한지 오래되었다. 나찌에 복무했다는 과오 때문에 독일 민속학이 그 이름을 폐기한 것이 상징적인 사건이다. 지난 연말 정병모 교수가 함부르크 '로덴바움박물관'을 찾아 소감을 밝혔다. 이 박물관은 본래 '민족(민속)학 박물관'이었다. 200여년 가깝게 사용하던 명칭을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 정교수의 질문에 큐레이터 수잔 크뇌델 왈, 민족학이란 용어가 이념적으로 너무 편향된 것이어서 바꾸었다고. 이런 경향은 민화를 포함해 '민'을 접두어 삼는 거의 모든 장르를 포괄한다. 인류학 내 민족학이란 호명 또한 다문화적 경향을 수용하는 변화가 감지된다. 시대적 추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베네딕트 엔더슨의 '상상의 공동체'가 현 단계 그 정점에 있지 않나 싶다. 우리가 호명하는 민속, 민요, 민화, 민예, 민중 등의 개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엔더슨의 책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민족이란 호명의 배경들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중국, 베트남, 동남아시아 등 다수의 이민족들로 구성된 나라들이 지향할 민족이나 민속 개념을 서구나 혹은 우리와 동일시할 수 없다. 환경과 처한 형편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민화를 포함한 민속 따위의 개념이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 민속이란 학문이 태동한지 백여 년 밖에 되지 않았음을 전제하고 지금의 흐름들을 조망한다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우리로 말하자면 호혜평등과 평화, 혹은 다문화적 갱생 따위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기까지만 존속될 가치라고나 할까. 특히 남북한의 통일문제를 상정하면 아직 유효한 개념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민족, 탈국가 등 서구유럽에서 견인하고 있는 이른바 세계사적 흐름들을 수용해야 하는 현실이 있다. 민화로 돌아가 말하자면 윌리엄 모리스로부터 야나기무네요시로 이어지는 민중 중심의 개념이 이미 변화되었다. 창작민화를 포함한 민화 부흥이 한국미술계를 압도하고 있다. 본격적인 민화학의 창출이 기껏 십여 성상을 지났을 뿐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폭발적인 수요와 생동하는 기세가 날로 확장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인 관점의 '민화(民畵)' 범주를 넘어 한국의 민화는 이미 세계를 향해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이나 우리의 몇 사례에서 보듯이 굳이 민화라는 이름을 고집할 필요도 없고 민중이라는 개념에 가둬둘 필요도 없다. 야나기무네요시를 뛰어넘는 개명이 필요한 때가 왔다고나 할까. 염두에 둘 것은 새 이름이 결코 민화 한 장르에만 국한될 것은 아니라는 것. 민담, 민요를 포함해 민속, 민족의 개념들과 호환되며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도인문학팁

민속학의 개혁, 이념학(理念學)에서 일상학(日常學)으로

독일어권 민속학에서는 '일상학'이란 개념이 대두 된지 오래다. 민속학자들이 '지금 여기'를 연구대상화 하지 못하고 전통이란 이름의 과거에만 매몰되거나 집착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경향들이다. 크리스찬 게랏과 오이카와 쇼헤가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1969년 팔켄슈타인 회의 이후에 민속학의 개혁이 추진되면서 도입되었다. 그레베루스는 '민속학'을 '유럽인의 하루하루의 생활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문화란 '삶의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문화분석'은 '일상연구'의 다른 말이다. 일상에 대한 관심은 '인간 중심화'다. 개인의 창조성, 사람들의 사회화, 문화화 등으로 확대된다. 민속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역사학과도 연동되어 있다. 도쿄대학의 이와모토 미치아에 의하면, 민속학의 태동부터 개념의 혼선이 있었다. 예컨대 장샤오위엔(江紹原)이 '민학(民學)'을 제기했던 것은 습속(풍속)이 중심이 아니다. 사람에 초점이 있었다. 1890년 태동기 민속학이란 용어가 사실 민족지(Ethnography)의 번역어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민속(Folklore, 전통문화)의 번역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1세기가 지난 후 이를 복원했다고나 할까. 여기서 세세한 내용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이념학에서 일상학으로의 전환을 이룬 셈이다. 민화로 돌아가 말하자면, 궁중세화에서부터 창작민화까지 포섭하는 즉 '지금 여기'를 대상화하는 대중미술이라는 시선과 태도가 보다 중요해 보인다. 기대하는 바 크다. 일상화(日常畵)의 세계관을 확대시켜나간다면, 민속학까지 호환할 수 있는 범칭 민학(民學)의 개혁을 민화학계가 주도하는 날이 올 것이다.

삼재부, 조선후기, 고판화박물관 소장, 월간민화 제공

올해 역사민속박물관으로 이름바꾸어 재개관 예정인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제공

올해 역사민속박물관으로 이름바꾸어 재개관 예정인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제공

함부르크 로덴바움박물관(200여년 써오던 민족(민속)학박물관이란 이름을 폐기하였음)-정병모 교수 제공

함부르크 로덴바움박물관의 한국문화 특별전시-정병모 교수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