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광대 복장을 한 채 전두환씨의 영정 사진을 목에 건 이지현씨가 전씨 부인인 이순자씨의 가면을 쓴 시민과 함께 행진을 하고 있다. |
●출발부터 험난… 구속 vs 지지
전씨는 이날 오전 8시25분께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광주지법으로 향하는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오전 7시께부터 자택 정문 앞과 인근 골목 등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 경찰은 자택으로 향하는 골목과 자택 정문 앞에서 신원 확인을 거친 기자 및 집회 참가자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일대를 철저히 통제했다.
30여 분이 지나자 자택 인근에서 '전씨 구속 촉구 집회'와 '지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구속을 요구하는 참가자들은 "집단학살범 전두환은 다시 감방에 가라", "전두환은 역사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전두환의 전 재산을 환수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씨를 지지하는 참가자들은 '망신주기 광주지법, 공정한 재판 가능할까요'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광주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공정한 재판이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경찰력 총동원… 법원도 철통 보안
27일 광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전씨의 재판에 대비해 850여 명의 경찰력을 투입했다.
광주경찰청 소속 기동대·방범순찰대 7중대 외에도 타 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대 5중대 경력까지 동원됐다. 2개 여경중대도 파견됐다.
지역 일선 경찰서에서는 당직자·대기근무자를 제외한 형사·강력·여성청소년계·교통안전계 등 가용 경력이 총동원됐다.
경찰은 전씨가 탄 승용차의 이동 경로에는 철제 임시 울타리가 설치했으며, 경찰력도 촘촘히 배치했다. 법원 청사 정문·후문과 전씨가 하차할 법정동 출입구 주변 출입 통제는 더욱 강화했다.
재판이 열리는 201호 법정 안팎에는 사복·정복 차림의 경찰 수십여 명이 배치돼 질서를 유지했다. 법원도 법정 출입 보안을 더욱 강화하고 자체 경비 인력을 모두 소집했다.
●묵묵부답 잰걸음… 구호·노래 뒤따라
전씨 일행이 도착하기 전후로 법정동 주변에는 5·18단체 관계자들이 대기하며 전두환 구속·단죄를 촉구했다.
소복을 입은 오월어머니 10여 명은 '학살 책임 인정하고 사죄하라', '전두환은 5·18 진실을 밝혀라' 등 손팻말을 들고 항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민들은 오리 인형 옷을 입은 채 29만원이 전 재산이라고 밝힌 전씨를 비판하며 '탐관오리당' 손팻말을 들고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재판 전후 전씨가 법원을 출입할 때는 광주시민과 오월단체 관계자 등이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정곡' 등을 힘차게 부르기도 했다.
●광대·이순자 복장하고 나선 피해자
5·18민주화운동의 피해자가 광대 복장을 한 채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을 지낸 이지현씨는 이날 광대 복장에 대머리 가발, 피눈물 흘리는 가면을 쓴 채 전씨의 영정 사진을 목에 걸고 현장을 누볐다. 옆에는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의 가면을 쓴 시민도 함께했다.
그는 "40년이 지났어도 사죄 한 마디 없는 전두환을 풍자하기 위해 왔다"며 "광주 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한 만큼 엄히 처벌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퍼포먼스를 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80년 5월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폭행당해 한쪽 눈을 실명했다. 이후 진상규명 등에 투신하며 활발히 활동해왔으며, 그간의 고통을 풍자와 웃음으로 승화시켜 5·18민주화운동 기념공연 '애꾸눈 광대' 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먼저 간 남편 생각하며 눈시울 붉혀
5·18유족회 최영자(58·여)씨는 이날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을 연신 흰 소복 소매로 훔쳤다.
최씨는 이날 5·18추모제 때 입는 흰색 소복을 입고 전씨를 보기 위해 광주지법을 찾았다. 전씨의 재판이 열린 오늘이 바로 계엄군의 만행에 희생당한 남편의 생일이기에 최씨의 가슴은 더욱 아렸다.
당시 머리를 곤봉으로 심하게 맞은 남편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평생을 병상에 누워있어야 했고, 결국 지난 2007년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각종 합병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최씨는 '무릎 꿇은 전두환 동상'을 광주지법 정문 앞에 옮기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관계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을 세워 모욕을 주는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최씨는 "1980년부터 2007년까지 수십 년이 항상 5·18 같았으며, 지옥 같았다"며 "온갖 폄훼, 망언, 가짜뉴스에 상처만 더 심해졌다. 이 지옥이 어서 끝났으면 한다"고 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