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설 명절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한 가운데 설날을 앞둔 9일 강진군 작천면 갈동마을의 김성삼 어르신이 자식, 손자들의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나건호 기자
"올 설에도 못 본다고 한께 서운하기는 한디 어쩌겄어. 새끼들 건강이 우선인께 참아야제."
강진군 작천면 갈동마을의 김성삼(77)·황이남(68) 부부는 올해 자식들 없이 설 명절을 보낸다. 농사로 4남매를 키워 지금에 이르기까지 40년 세월, 지난해 추석에 이어 설도 단둘이 쇄야 하는 노부부의 마음은 헛헛하기만 하다.
서운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만날 때마다 쑥쑥 커 있는 손주들 보는 게 삶의 낙이었는디." 노부부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도 절대 오지 말라고 했제." 오히려 고향을 찾겠다는 자식들을 만류했다는 그다. "추석에도 못 갔는데 설까지 건너뛰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서울 사는 딸이 고집을 부리는 통에 만류하는 데 진땀을 뺐어." 잠깐 들렀다 가겠다는 광주 첫째 딸과 아들도 금방 돌려보낼 생각이라고 했다.
황씨는 "부모 생각해주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이 제일"이라며 "차로 쌩하고 지나가는 것(드라이브스루)이 유행이라던데, 손주가 좋아하는 갈비찜이나 한 보따리 해서 들려 보내려고 한다"고 했다.
일가친척이 모여 챙겼던 제사와 성묘도 올해는 조촐하게 할 생각이다.
김씨는 "집안 전체적으로 자식, 손주들을 다 못 오게 했다"면서 "조상에 대한 예는 갖추기 위해 설 당일 근처에 있는 큰집에서 집안 어른 몇 명만 잠깐 모이기로 했다"고 했다.
마을도 쥐죽은 듯 조용하다. 삼삼오오 웃고 떠들며 음식을 만들어 먹던 마을회관 구들장도 차갑게 식었다.
김씨는 "나가지 말라는 이장의 당부 방송만 울려 퍼질 뿐, 지척인 이웃과도 왕래가 거의 없다"면서 "회관에도 겨우 서너 명 모여 추위와 외로움을 달랜다"고 했다.
설이 가까워질수록 하염없이 전화기만 바라보는 시간이 늘고 있다. 이따금 걸려오는 자식들 안부 전화가 유일한 위안이다.
김씨는 "작년에 확진자가 나왔던 광주교도소에서 근무하는 큰딸이 제일 보고 싶다. 그 뒤로도 얼굴을 제대로 못 봤다"면서 "공부를 곧잘 한다는 큰 손주 수능 준비도 걱정이다"고 했다.
"괜스레 와서 사달 내지 말고 봉투나 두둑이 보내라"고 했다며 애써 웃어 보이는 노부부. 그러면서도 가족사진을 자꾸만 넘기는 그 속에는 온통 자식 걱정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명절 기분이라도 내려 휑한 마룻바닥에 걸터앉아 병어 네다섯 마리나마 손질하는 할머니. 그 옆에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대문 소리에 행여라도 누가 왔나 밖을 내다보는 할아버지의 등이 자못 쓸쓸하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응께 어디 나돌아 댕기지 말고 잘살고 있어라. 코로나 끝나면 원 없이 보자." 외로운 설을 맞는 노부부의 애틋한 자식 사랑이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설 명절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한 가운데 설 명절을 앞둔 9일 강진군 작천면 갈동마을의 한 시골집 마당에서 노부부가 자식들을 생각하며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손질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