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오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유가족인 장녀 백원담 교수가 기자회견을 하며 고인의 책자를 꼭 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은 19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모란공원이다. 장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백 소장은 재야 운동가로서 1950년대에 농민과 빈민운동 등 한국 사회운동에 발을 들였다. 1960대에는 한일협정 반대 투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워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 등 활동에 참여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 운동을 주도해 긴급조치 1호를 위반한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79년엔 'YMCA 위장결혼 사건', 1986년에는 '부천 권인숙 양 성고문 폭로 대화'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기도 했다.
백 소장은 투옥 당시 장편시인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을 지었다.
이후 황석영 소설가가 '묏비나리'의 일부 문구를 빌려 가사를 쓰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가 곡을 붙여 투쟁을 대표하는 민중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졌다.
노래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돼 대학가 학생 운동권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의 투쟁 현장에서 울려 퍼졌다.
이런 백 소장의 별세 소식에 정치권을 포함한 지역 시민사회가 일제히 추모의 뜻을 표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등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떠올리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도 "고인은 평화 통일을 위해,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해오셨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모른다. 선생의 민주화를 향한 열정은 꿈에도 잊지 못할 것이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한편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오는 18일까지 광주 동구 금남로 광주YMCA 2층 무진관에도 시민 분향소가 설치된다. 분향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한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