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영광 진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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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영광 진성마을
지친 심신 달래는 300m 숲쟁이 '이국적 정취 물씬'||지난해 코로나로 취소된 단오제 올해는 유림들 모여 제례지내||숲으로 만든 인공 섬 '숲쟁이' 법성포구와 마을 지키는 방풍림||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등 명소도
  • 입력 : 2021. 06.17(목) 15:06
  • 편집에디터

난장기-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다. 이돈삼

바닷가의 숲으로 간다. 영광 진성마을이다.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와 법성리를 합해서 이름 붙였다. 법성면에 있는 여러 마을 가운데 가장 컸다. 옛 법성진의 치소도 106년(1789∼1895) 동안 자리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군사의 중심지였다.

지난 6월 14일이 음력 5월 5일 단오였다. 옛날에 단오는 설날, 추석, 한식, 정월대보름과 함께 손가락에 꼽히는 큰 행사였다. 그 가운데서도 영광 법성포는, 동해안 강릉과 함께 단오제의 전통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돼 있다.

법성포 단오제는 조선 중기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법성포 단오제가 열릴 때는 조기 떼가 영광 칠산바다로 알을 낳으려고 찾아드는 즈음이었다. 조기가 많이 잡히면서 파시가 열렸다. 어부들 손에도 돈뭉치가 쥐어졌다. 단오제의 규모도 그만큼 컸다.

당시 법성포에는 호남 제일의 조창(漕倉)이 있었다. 조창은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다. 조창은 430년 동안 운영됐다. 조창이 법성포에 들어서면서 군사가 주둔했다. 조운선에 세곡을 운반할 인부도 많이 머물렀다. 자연스레 포구가 북적댔다.

방풍림으로 조성된 느티나무 숲, 숲쟁이도 넓은 그늘을 이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큰 놀이판이 펼쳐질 기반이 마련됐다.

단오 즈음에는 파시도, 세곡 운반도 마무리 될 때였다. 농사도 거의 끝나 법성포 사람들의 마음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흥선대원군은 '호불여영광(戶不如靈光)'이라고 했다. 가구와 인구가 많은, 인심 좋고 물산이 풍부해서 살기 좋은 고장이 영광이라는 말이다.

400년 넘게 이어져 온 법성포 단오제이지만, 곡절도 많았다. 한말에 특히 심했다. 일본의 강압으로 군대가 해산당하고,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조창이 있던 법성에서 의병과 일본군과의 싸움도 자주 일어났다. 40여 년 동안 단오제가 중단됐다.

8·15광복 직후인 1946년, 단오제가 부활됐다. 1974년엔 그네뛰기 행사 중 발생한 인명사고로 또 10여 년 간 중단됐다. 1986년에 다시 시작됐다. 2014년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이듬해엔 메르스 사태로 단오제를 열지 못했다. 작년엔 코로나로 열지 못했다.

올해는 유림들이 모여 제례만 지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단오제를 알리는 난장기를 내걸었다. 보부상의 상징인 난장기는 긴 대나무에 짚신, 패랭이, 백목을 걸었다.

단오제는 11일 인의산에서 산신제로 시작됐다. 포구를 떠도는 억울한 원혼을 달래고, 마을의 평안과 주민의 건강 그리고 풍어를 비는 제사였다. 12일엔 진성의 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풍어를 비는 당산제를 지냈다.

법성포구-번성했던 당시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지만, 포구풍경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돈삼

13일엔 법성포 앞바다에서 선유놀이를 재현했다. 법성포에서는 바깥나들이가 제한적이었던 여염집 부녀자들이 단오 때 배를 타고 앞바다를 오르내리며 여흥을 즐겼다. 소리꾼과 악사들이 함께 했다. 호남 제일의 조창으로 번성했던 법성포를 되새기는 뱃놀이다.

단오인 14일에는 법성포 앞바다에서 물의 신인 용왕에게 풍어를 비는 용왕제를 지냈다. 어부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고기를 잡게 해달라고 빌었다.

단오제 때 그네뛰기가 열렸던 숲쟁이도 여전히 멋스럽다. 조창을 지키는 수군이 주둔하려고 법성포에 진성을 쌓은 게 1514년이었다. 석성으로 높이 3m, 너비 7m, 둘레 462m 규모의 성을 쌓았다. 지금도 성터와 갖가지 건축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능선을 따라 300여m에 인공숲이 만들어졌다. 숲쟁이다. 숲쟁이는 숲으로 된 성을 가리킨다. 여기에 느티나무 103주를 비롯 팽나무 10주, 개서어나무 8주가 있다. 법성진성을 쌓을 때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숲쟁이가 법성포구와 마을을 지키는 방풍림 역할을 해왔다. 자연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훌륭한 유산이다. 2007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숲쟁이가 주는 그늘도 넓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나무가 군락을 이뤄 운치를 더해 준다. 숲쟁이에서 한낮의 햇볕을 피하며 숲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법성포구의 진한 갯내음도 기분좋게 코끝을 간질인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법성포의 절경을 중국 동정호에 비유해 '소동정'이라 예찬했다.

마을에는 험한 바다를 상대로 생업을 이어가던 조상들의 한과 인생이 담긴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 아직은 꿰매지지 않은 역사·문화의 보물들이다. 법성포단오제 전수교육관과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도 품고 있다. 전수교육관은 법성포 단오제와 관련된 자료도 보여준다.

숲쟁이에서 가까운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는 백제 침류왕 때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불교를 갖고 들어왔다는 포구다. 국내에 하나뿐인 4면 불상이 있다. 마라난타상과 전시관이 있고, 간다라유물관도 있다. 마라난타가 전한 불교와 불교예술을 토대로 한 공원이다. 인도의 향이 짙게 묻어난다. 대승불교의 발원지인 인도 간다라의 불교조각과 건축양식도 엿볼 수 있다.

요즘 코로나19 탓에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백제불교 도래지에 가면 해외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이국적인 정취를 선사한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사면 불상. 이돈삼

법성포숲쟁이-법성진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돈삼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