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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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 입력 : 2021. 11.11(목) 11:20
  • 이용환 기자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황소자리 제공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손관승 | 황소자리 | 1만7000원

생업 때문에 먼 바다로 나간 스무 살 청년이 풍랑에 휘말렸다. 무자비하고 심술궂은 운명의 회오리는 그를 들어본 적 조차 없는 낯선 섬 제주에 내던졌다. 정해진 행로로 곧장 고향에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도 잠시 뿐, 그날부터 꼬박 13년 28일간 그는 '이상하고 낯선 나라' 조선에 억류됐다.

기자 출신 작가 손관승이 쓴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는 '하멜표류기'의 저자 헨드릭 하멜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매우 특별한 이야기다. 저자는 하멜의 생애를 입체적인 시선으로 탐사한다. 계절을 바꿔가며 서울에서 강진과 여수, 제주를 거쳐 다시 서울로 이어지는 현장 답사를 거듭했다. 이렇게 축적한 자료를 재료 삼아 저자는 하멜의 삶을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재해석해냈다.

특히 저자는 우리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하멜의 이름 너머, 욕망과 열정이 살아 숨 쉬는 인간 하멜과 그의 모험이 전하는 메시지를 인문학적 교양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1653년 8월 어느 날 제주도 해안에 나타난 36명의 서양 사내들로부터 어떻게 포도주가 전해졌는지, 요즘 건축의 대세로 떠오른 헤링본 패턴의 담장이 왜 강진의 시골마을에서 시작됐는지를 좇는 식이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병참은 어디에 있었는지, 암스테르담 운하와 렘브란트의 그림을 지나 동인도회사 아시아 기지가 있던 바타비타(현재의 자카르타)와 일본 나가사키의 관계는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분석한 것도 신선한 시도다.

하멜의 삶을 중심축으로 삼아 시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눈부신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저자의 글은 또 역사와 현재, 미시사와 거시사, 정치경제와 문화예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는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었던 시쳇말로 흙수저 하멜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 숱한 고난을 돌파하고, 마침내 동료들을 모두 구출해 귀향하는 장면도 코로나로 힘든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리더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화석화된 문장으로만 기억 돼 온 하멜의 발자취에 피와 숨결을 불어넣고 돈, 자유, 혁신, 정보력, 소통, 회복탄력성까지 연결시키는 저자의 시도도 위기의 시대 인문학 그랜드투어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작가는 왜 하필 지금 하멜을 소환한 것일까. "리더는 하멜이 조선에서 그랬던 것 처럼 매일 '이상한 나라'에 표류해 살아 남아야 하는 존재다. 지금처럼 무한경쟁의 시대, 팬데믹 시대, 어느 때보다 살아 남기가 가혹한 환경에서 하멜의 리더십은 조선에 남긴 와인과 헤링본 패턴처럼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데 그 답이 있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