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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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죽지 않을 권리
사회부 양가람 기자
  • 입력 : 2021. 11.07(일) 14:23
  • 양가람 기자
사회부 양가람 기자
"현장실습생들은 그곳에서 학생도, 노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엔 배움도, 정당한 요구도 없었습니다. 오직 착취만 있었습니다. 매 수업마다 '힘들면 그만 두고 나오라' 가르치지만, 본인 때문에 학교 혹은 후배가 피해입지 않을까 걱정돼 힘듦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학생들이 대다수 입니다. 한 학기 50분 수업은 그들에게 체화되기 역부족입니다."

또 한 생명이 스러졌다.

지난 달 6일 여수의 한 요트선박장에서 현장실습생 홍정운군이 잠수 작업 중 물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요트 탑승객 식사 보조를 맡기로 했던 홍군은 사업주의 강요로 혼자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숨을 거뒀다.

물 밖으로 건져 올린 아들의 시신을 보던 아버지는 "평소 물을 무서워했는데… 어떤 작업을 하는지 알았다면 뜯어 말렸을 텐데…"라며 자책했다.

전공과 상관없는 업무 지시, 안전 장치 및 교육 부재, 2인1조 작업 규칙 미준수…. 수많은 현장실습생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되다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김군이 작업 중 뇌사상태에 빠졌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근무하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홍양이 폭언과 실적 압박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은 가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과 일을 그만 두면 자신을 해당 사업장에 연결시켜 준 학교에 불이익이 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탓에 현장실습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짐승처럼 울부짖던 부모들은 자식들이 떠난 자리 주변을 맴돌며 생과 사를 갈등했고, 누군가는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 갔다. 유족의 절규에도 현장은 바뀐 게 없다.

2017년 안전 수칙 준수 등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선도기업' 중심의 현장실습으로 변화됐지만, 2년 뒤 학교에서 서류만으로 평가해 선정하는 '참여기업' 중심으로 제도가 완화됐다. 기업체의 반발에 못이긴 정부의 결정이다.

"현장실습을 하던 친구의 죽음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현장실습 말고는 취업할 방법이 없어요."

친구의 죽음을 목도했던 학생들은 안전에 대한 두려움보다 취업하지 못한다는 공포가 훨씬 크다고 토로한다. 대기업, 공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이 결정된 학생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취업은 현장실습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부는 안전 기준을 강화한 교육 중심 현장실습제도를 주장한다. 취업을 위한 선택지가 현장실습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른들의 욕심에 희생되는 학생이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모른 체 하고 있다.

홍군의 사망은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 폐지' 주장에 불을 지폈다. 학생들에게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불합리를 견뎌내는 책임감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요구할 권리를 가르치는 것임을 정부가 인지할 때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