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 CEO·유두석> '장성 국립심뇌혈관센터 시대'를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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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 CEO·유두석> '장성 국립심뇌혈관센터 시대'를 열며
유두석 장성군수
  • 입력 : 2021. 12.30(목) 12:55
  • 편집에디터
유두석 장성군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나라 안팎의 어려움이 크다. 그럼에도 난관을 돌파하며 높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조선업계' 다. 올해 전 세계 LNG 선박 물량의 90%를 수주했다고 한다. 정녕, 비바람 몰아치는 절벽에도 꽃은 피어나기 마련인가 보다.

조선업에서 들려주는 희망찬 뉴스를 접하며, 필자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떠올렸다. 1970년대, 정 회장은 선박제조업에 뛰어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영국의 금융사 바클레이스를 찾았다. 당시 현대그룹에는 조선소가 없었다. 조선소를 지을 모래벌판만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바클레이스에서 돈을 빌려줄 리 만무했다.

이때 정 회장의 그 유명한 '거북선 일화'가 탄생했다. 500원 짜리 우리나라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펼쳐 보이고선 "대한민국이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이렇게 융통한 자금으로 대형 조선소가 지어졌다. 21세기, 전 세계를 호령하는 조선 강국 대한민국은 한 사람의 '불굴의 의지'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성군에도 도전 정신과 강인한 의지로 지역의 미래를 바꾼 이들이 있다. '5만 장성군민'이 그 주인공이다. 심혈관에 '심' 자도 연관 없는 작은 농촌이지만 14년 간의 끈질긴 '무한도전' 끝에 지난해 말 정부 예산에 관련 사업비가 반영되는 쾌거를 거뒀다.

하지만, 순조롭던 센터 설립은 보건복지부에서 질병관리청으로 주관부서가 바뀐 이후 난관에 봉착했다. 자체 용역을 추진한 질병관리청이 기존 사업보다 규모와 조직을 4배 가까이 확대하기로 하면서 정부 예산 역시 불용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예산 불용은 사업이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의미해, 최악의 경우 14년 간의 노력이 한 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이 기존 사업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불용 처리할 움직임을 보이자, 장성군민들은 즉각 거리로 뛰쳐나왔다. 자발적으로 대책위원회를 조직해 비바람 부는 날씨에도 전 군민 궐기대회를 펼쳤으며, 청와대와 질병관리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국립심뇌혈관센터 설립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관계부처를 긴박하게 오가던 필자는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장성군의 미래 먹거리가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우리 아들 딸들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몸을 내맡겼다. 국립심뇌혈관센터 설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군수직을 내려놓겠다는 '사즉필생 생즉필사'의 각오였다. 군의회 의원과 체육회 등 사회단체 임원들도 삭발식에 동참해 5만 장성군민의 절박한 호소와 결연한 의지를 전했다.

결국,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은 끝에 논란 발생 17일 만에 극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지난 12월 3일, 1980억원 규모의 국립심뇌혈관센터 설립 추진을 위한 부지매입비 등 28억원이 2022년도 정부예산에 최종 반영된 것이다. 장성군민을 비롯해 뜻을 같이한 340만 광주‧전남인의 위대한 승리였다. 예산안 부대의견을 통해 장성군 설립에 사실상 쐐기를 박은 데다 사업 규모도 4배로 확대되었으니,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한편, 장성군민들이 연일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던 시기에 일각에서는 '이미 늦었으니 헛수고 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추후에 듣게 됐다. 그야말로 가슴에 천불이 끓는 얘기다. 그 말대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손 놓고 앉아만 있었다면, 장성군민이 14년 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은 무너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여야도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데, 무슨 의도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주영 회장의 어록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이봐 임자, 해보기는 했어?"일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실무 담당자의 면전에 정 회장이 자주 했던 말이다. 센터 유치 불가능론을 꺼냈던 이들에게, 혼연일체로 국립심뇌혈관센터 설립을 이뤄낸 장성군민들이 할 법한 말이기도 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될 때까지 해보라"는 장성군민의 외침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위기를 더 큰 희망으로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국립심뇌혈관센터가 들어서는 광주연구개발특구 첨단3지구와 장성나노산업단지는 첨단산업 연구의 요람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 국립심뇌혈관센터가 조속히 설립되어서 협업과 공조를 통해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심뇌혈관질환 연구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K-조선'에 이어 'K-메디컬'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시대의 첫 장을, 장성 국립심뇌혈관센터가 열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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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