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광주·전남지역 폭설로 인해 농작물 시설물이 붕괴되는 등 농민들의 피해 신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26일 담양의 한 시설물이 붕괴되어 앙상한 뼈대만 보이고 있다. 나건호 기자 |
"25년째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딸기 하우스는 '수막'이라고 해서 눈이 쌓이지 않는 장치도 있는데… 이번에는 무용지물이었어요."
담양군 대전면에서 딸기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장선화(61)씨는 수개월간 키워온 농작물이 무사 출하되길 애태워 기다렸다. 한 해의 결실을 맞는 12월이 되자 그 마음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지난 주말 내린 폭설과 강풍에 이 모든 꿈은 물거품이 됐다. 눈과 바람이 할퀴고 간 비닐하우스에는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장씨가 농사를 짓는 대전면은 딸기 품질이 높기로 유명하다. 한 동당 3000만원 가량의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26일 오전 찾은 장씨의 딸기 농장. 폭삭 주저앉은 그의 비닐하우스는 처참히 찢기거나 철 구조물이 휘어져 있는 등 온전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천장이 뻥 뚫려 고스란히 드러난 자리에는 바람만 강하게 불어 서 있는 것 조차 힘들었다. 일주일만 더 키우면 수확할 8500주의 딸기들은 그렇게 눈 속에 파묻혀 고사했다.
장씨의 하우스가 무너진 것은 지난 23일 오후 3시. 당시 그는 작업을 마치고 막 하우스를 나오던 참이었다.
장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5분만 늦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정말 아찔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어 "하우스에서 나오고 얼마 뒤, 눈바람을 버티지 못한 1동이 그대로 쓰러졌다. 바람에 날아간 철 구조물들과 비닐들이 옆에 있던 나머지 3동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며 "2주 전 업자를 통해 비닐을 새로 입히는 등 관리·점검했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 애지중지 키워 당장 다음주 출하될 딸기들이었는데… 이렇게 말라버린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고 씁쓸해 했다.

최근 광주·전남지역 폭설로 인해 농작물 시설물이 붕괴되는 등 농민들의 피해 신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26일 담양의 한 딸기 사육 시설이 붕괴돼 농작물이 모두 고사했다. 정성현 기자

최근 광주·전남에 40㎝ 폭설이 내린 가운데, 지난 23일 담양군 한 오리 농장의 축사 천장이 폭설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독자 제공
담양에선 지난 22일부터 이틀 동안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최고 25.9㎝의 눈이 쌓였다. 이로 인해 장씨와 같은 비닐하우스 농가들의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 담양에서는 비닐하우스 85동·축사 6동 등 총 91동이 재해를 입었다.
같은 날 담양군 가사문학면의 한 오리 농장에서도 폭설 피해가 접수됐다. 해당 농가는 지난 23일 밤 9시께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하우스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로 인해 수 십 마리의 오리가 죽거나 다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오리 농장주 배민정(44)씨는 "'설상가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다"며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안 그래도 속이 타 죽겠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 인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배씨는 "지난 10년간 농장을 운영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축산업의 경우 (원예에 비해) 하우스를 튼튼하게 만들어 이런 경우가 잘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오리들을 당장 다른 시설로 옮겨야 하는 데다 하우스 보수까지 해야 하는데 AI 등으로 사람 출입이 어려워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재해 보험'을 들었다 해도 AI에 자연재해까지 겹친 상황에서 이것을 누가 어떻게 다 보상해 주나. 당장 이번 폭설 피해액만 억 단위로 추정된다"며 "(지자체 등에서) 아직 어떠한 지원책 등을 듣지 못했다. 당장은 오리들을 옮길 수 있도록 방호 인력 등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재해 보상 등은 차후에 생각할 일이다"고 덧붙였다.
담양군은 폭설로 피해를 입은 농가들에 굴착기·군인 등을 투입, 재해 피해 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전했다.
담양군 축산원예과 관계자는 "폭설 이후 '재난 특별팀'을 가동하고 피해 농가에 제설 차량·군인·공무원 등을 파견해 재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복구가 완료된 이후에도 피해 농가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군 단위 행사나 사업에 이들을 우선 배정하는 등 여러 지원책들을 논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전남에 40㎝ 이상의 폭설과 한파로 농작물 시설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26일 담양 대전면의 딸기 재배 시설하우스의 철재 지지대가 무너져 딸기밭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다. 나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