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앓이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봄앓이
최도철 미디어 국장
  • 입력 : 2023. 03.20(월) 17:46
최도철 국장
 겨울 끝자락부터 물기 밴 바람이 불고 벚나무 가지에 붉은 색이 감돌더니, 경칩 지나자 이내 봄의 신열이 대지를 감쌌다.

 마당에 조르라니 심은 수선화는 이미 노란 화관을 썼고, 작약은 불그레한 매니큐어를 칠한 아가씨 손톱같은 새순을 내밀었다.

 순창에서 가져다 심은 자두나무, 살구나무 잔가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꽃망울이 벙글져 금세라도 폭죽을 터뜨릴 듯 수런거린다. 언덕배기 개나리도, 산허리에 실안개처럼 둘러진 매화도 벌, 나비 유혹하느라 교태를 부린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봄이 왔다.

 볕이 좋은 봄날, 오일장에서 사 온 파를 다듬을 요량으로 노모가 마당에 자리를 폈다. 몇 번인가 먹이를 줬더니 제 집인양 드나드는 길고양이도 곁에 앉았다. 뒤안 텃밭에 옮긴 상추 모종에 웃거름을 주고 돌아서는데, 노모도, 고양이도 엷은 졸음에 겨운지 금세 눈을 감고 있다. 시골살이 이태째 아슴한 봄날 풍경이다.

 노모가 좋아하시는 노래를 가만히 틀어 놓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가슴 아리는 봄날, 한 맺힌 정서를 그려낸 노랫말에 백설희의 낭랑한 목소리로 심금을 울렸던 ‘봄날은 간다’이다.

 국민 애창곡 ‘봄날은 간다’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북한강에서’처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노랫말이다.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부른 가수도 여럿 있다.

 1953년 백설희가 선보인 이 곡은 한영애, 나훈아, 조용필, 최백호, 장사익 등 절창들이 각기 다른 음색으로 다시 불렀다.

 제목은 같지만 다른 노래도 있다.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이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노래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대사 한 마디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노랫말에 취한 탓일까.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다보니 찬연한 봄날임에도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와 엉절거리게 된다. 별다른 이유없이 봄에 자꾸 몸이 마르는 슬픔을 춘수(春瘦)라고 하던가. 올해도 봄앓이가 어김없이 찾아온 모양이다.

 눈을 들어 텅빈 하늘을 보니 무단히 어릴 적 동무들이 보고 싶다. 그리운 옛사람들도 만나고 싶다. 이 봄, 저들도 나처럼 한번쯤 내생각 하려는가. 봄바람이 전해준 그리움이 깊어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