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코로나 진정… 나는 다시 동아시아 섬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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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코로나 진정… 나는 다시 동아시아 섬으로 간다
341. 바실홀의 항해기, 중국 웨이하이(威海)에서 오키나와(琉球)까지
  • 입력 : 2023. 03.30(목) 15:26
물이 빠진 성남도(조도면) 포구, 이재언 ‘한국의 섬’ 05 진도편에서 캡쳐
바실홀(Basil Hall)의 조도(鳥島) 정박과 만조해(萬鳥海)

“그 외에 우리가 본 네발짐승이라고는 개뿐이었다. 비둘기, 매, 독수리는 있었으나 작은 새들은 거의 없었다. 이곳의 까마귀는 세계 어느 곳보다 많았다.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돌아왔다가 우리가 있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몇 리그 떨어진 곳에 있는 높은 섬으로 소풍을 갔다. 상륙하려는 길에 인공으로 된 수평선과 함께 태양의 자오 고도를 보았다. 우리는 그곳의 고도가 북위 34도 22분 39초라는 것을 확인했고, 두 개의 정밀 계기로 측량한 결과 그곳은 동경 126도 2분 45초라는 것을 알았다.” 영국 해군 대령 바실홀(Basil Hall, 1788~1844))의 기록, 서해 답사기(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중의 일부 내용이다. 지금의 진도 조도에 내려 사람들을 만나 교우하였던 부분이다. 바실홀의 리라(Lyra)호와 멕스웰의 알세스트(Alceste)호 두 척이 한국의 서해안을 답사한 것은 1816년 9월 1일부터 10일까지이다. 지금의 조도군도에 상륙하여 견문한 것은 9월 8일부터 9월 10일까지이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하였다가 강진 병영성에 억류 후 탈출한 것이 1653년(효종 4년)부터 1666년(현종 7)까지 13년간인데, 이로부터 200여 년 지난 후다. 번역본은 신복룡 외, ‘한말 외국인 기록 05’(집문당, 1999)과 ‘조도면지’(2010, 주필 김정호) 등이 있다. 이효웅이 바다 현장을 탐사하면서 쓴 기사(아틀라스뉴스)나 이재언의 ‘한국의 섬’ 시리즈 등도 참고가 된다. James H. Grayson의 ‘영국 해군 장교 바실 홀의 1816년 동아시아 항해기’(대동문화연구 제56집)에 의하면, 9월 1일부터 10일까지 한국 서해안의 여러 섬을 거치는데, 북쪽과 남쪽 섬사람들의 태도가 극단적으로 달랐음을 주목하고 있다. 이유를 해금(海禁)정책이라고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해금으로부터 자유로웠을지 모를 조도군도 풍속묘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탁월하다. 1800년대 섬 풍속의 전형이라는 점을 포함해 차차 여러 방면에서 소개할 생각이다.



바실홀의 리라호 정박지는 진도군 조도면 성남도 앞바다

9월 7일 바실홀이 찍은 좌표가 125°52′45″E 34°42′N이다. 이를 구글 지도에 대입해보면 지금의 신안군 비금도 및 도초도와 우이도 사이이다. 여기서 묘사한 동남 80도에 위치한 섬들은 우이도 안쪽으로 펼쳐진 유무인도들이다. 좌표 기록이 상세하게 나오므로 이를 모두 찍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9월 8일 티슬도(Thistle Island, 내병도)에서 남쪽으로 항해하다가 정박한다. 언급한 좌표 126°2′45″E 34°22′39″N를 구글 지도에 입력해보면 진도군 조도면 하갈도(성남도 부속섬) 앞바다로 나온다. 정북 방향이 성남도이고 정남 방향이 상조도 북편 벼랑이다. 기록에 나오는 “남동쪽으로 몇 리그 떨어진 곳에 있는 높은 섬으로 소풍 간” 위치는 조도 돈대(墩臺)봉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높이가 230.8미터이니 600피트라는 기록과 비슷하다. 본선은 성남도 앞바다에 정박해두고(앙카를 내리고) 보트로 지금의 상하조도와 기타 섬들을 돌아봤다는 뜻으로 ‘소풍갔다’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해발 600피트(약 180미터)의 멧부리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는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눈길이 닿는 한, 올망졸망한 뭇 섬들이 북서에서 동으로 돌아 남쪽으로 뻗어있는 장대한 광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우리들은 그 섬들을 세어보려 애썼다. 한 사람은 확실히 따로따로 있는 섬들만 세고 그 수가 120개라 했다. 저마다 이어져 있는 무리의 섬 숫자를 어림잡아 본 다른 두 사람은 각자 136개, 혹은 170개라 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은 섬의 수를 정확히 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꽤 높은 곳이기는 하지만 중심에서 벗어난 지점에서의 숫자가 120개나 세어진다고 하는 것을 감안하면, 100마일(160Km)을 넘는 조선 서해안의 우리 항로는 이들 섬 이상으로 무리를 지어 있었던 섬들 가운데를 지나온 것이어서 엄청난 크기의 다도해라고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서해 남해의 풍경을 엄청나게 많은 섬, 곧 다도해(多島海)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의 여기저기에 다도해에 대한 찬탄이 나온다. 어디 바실홀 뿐이겠는가. 유네스코에 지정된 갯벌을 포함해 우리가 가진 섬의 가치는 이 경탄을 훨씬 넘어선다는 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 바실홀은 제주도를 거쳐 류큐로 항해하였고, 귀국 전에 나폴레옹을 만나는 등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중국 산동반도의 웨이하이(威海)를 출발해 충청도 도서지역을 거쳐 진도와 제주도, 오키나와로 횡단한 항로가 마치 고려말의 삼별초 항로를 보는 듯하다. 이 부분은 따로 소개하겠다. 나도 발해만의 장산군도를 포함해 펑라이(蓬萊), 옌타이(烟臺), 웨이하이(威海). 시다오(石島), 칭다오(靑島), 나아가 중국에서 섬이 가장 많다는 쩌우산(舟山)군도를 십수 차례 답사하고 연구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북양함대, 군사도시, 동서양간 교류지 혹은 기지 역할을 한 곳이다. 우리나라와도 긴밀한 항로를 유지했던 지역이라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중 가장 탁월한 곳은 누가 뭐래도 한국 서남해 섬들이다. 내가 한국인어서가 아니다. 이유는 차차 풀어 설명한다. 일단 ‘천사의 섬’ 신안처럼 나는 서남해 바다를 만조해(萬鳥海)로 명명해둔다. 풀어 말하면 ‘만개의 새떼같은 섬들이 펼쳐진 바다’이다. 디테일은 섬과 바다와 여성과 물, 그리고 남도를 왜 주목해야 하는지 지난 수십년 간의 내 연구에 스며들어 있다. 코로나도 진정되었으니 나는 이제 다시 동아시아 섬으로 간다.



●남도인문학팁

한국 서남해의 다른 이름은 ‘새떼(鳥島) 같은 섬이 펼쳐진 바다, 만조해(萬鳥海)’

지금도 하조도 돈대봉에 오르면 사방에 펼쳐진 새떼 같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상하조도뿐 아니라 라배도, 병풍도, 대마도, 소마도, 관사도, 옥도 등 섬들이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보일 듯 말 듯 남쪽으로는 제주도에서 이어도로, 북쪽으로는 신안의 섬들과 충청, 경기의 섬들, 아니 북한과 발해의 섬들이 연결되어 있다. 바실홀과는 다른 시선으로 비경을 볼 수 있다. 바실홀은 산동반도에서 출발하여 서해안을 따라 오키나와로 향하는 중, 이 많은 섬을 경탄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물론 ‘발견 항해기’라는 탐험가적 시선을 내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분석하고 풍경은 풍경대로 보면 될 일이다. 정확하게 좌표를 찍어 섬이나 바다를 표시하고 관련 풍경을 묘사한 대목들이 뛰어나다. 당시 영국의 항해기술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바실홀의 빈틈없는 위치 기록 능력에 탄복하게 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진도군에서는 기념탑과 공원 등을 조성해두었다. 번역본과 관련 논문이 몇 편 있다. 내가 생각하는 비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관련 연구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바실홀은 그네들의 전통대로 항해한 섬들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였다. 경기충청의 섬들은 자신들의 가족 이름까지, 상조도는 ‘몬트롤아일랜드’, 하조도는 ‘암하스트’ 등으로 붙였다. 서긍의 <고려도경>을 소개하면서 내가 이름 붙였던 토수양(土水洋)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다. ‘만개의 새떼같은 섬들이 펼쳐진 바다’라는 뜻으로 만조해(萬鳥海)를 제안한다. 신안군의 ‘천사의 섬’, 진도군의 세떼같은 섬들, 조도(鳥島)를 확장시키는 컨셉이다. 차차 새들의 이름을 붙여나간다. 참새섬, 꿩섬, 봉황섬 정도가 아니다. 내 시선은 오래전부터 붕섬(鵬島)과 가루다섬을 향하고 있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조도 성남도 전경, 이재언 ‘한국의 섬’ 05 진도편에서 캡쳐
하조도 전경, 이재언 ‘한국의 섬’ 05 진도편에서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