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맥주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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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맥주의 도전
  • 입력 : 2023. 04.13(목) 18:02
이용환 논설위원
‘옴천면장 맥주 따르듯 한다’는 말이 있다.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을 많이 내거나, 적게 따라주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1970년대 후반, ‘30대 도지사’로 유명한 고건 전 전남지사가 강진에서도 오지로 이름난 옴천면을 찾았다.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할 귀빈의 방문, 귀한 맥주 정도는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한 옴천면장이 읍내를 모두 뒤졌지만 미지근한 맥주 몇 병이 고작이었다. 결국 옴천면장은 맥주잔에 거품을 가득 채우는 방법으로 모든 손님에게 맥주를 한잔씩 대접했다고 한다.

“화성에서 양조하는 첫 맥주가 될 것이다.” 지난 2017년 미국의 한 맥주 회사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향해 떠나는 무인 우주선에 맥주 재료인 ‘홉’을 실려 보냈다.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주에서도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우주에서 맥주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맥주처럼 지구에서 보편화된 삶의 방식과 문화를 포기한다면 우주 개발은 반쪽이 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었다. 이후 이 회사는 달 착륙 50주년을 맞은 2019년 보이저 홉으로 주조한 한정판 ‘디스커버리 리저브’를 출시했다. 국제 우주정류장에서 실험했던 그 홉이었다.

기원전 4500여 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처음 만들었다는 맥주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음료였다. 맥주에 첨가된 홉은 진정 효과가 뛰어나 수면에 도움을 주고 지친 삶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맥주 예찬론도 끝이 없다. 소설가 이외수는 ‘맥주 맛을 모르면 사는 맛도 모른다’고 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맥주 없이는 소설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영어에 나오는 ‘과자와 에일(cakes and ale·인생의 재미)’이라는 관용어처럼 영국인들에게도 맥주 마시기는 삶의 즐거움이었다.

‘맥주의 본고장’ 독일에서 가루로 된 분말 맥주가 개발됐다. 기존 제조 기술로 맥주를 빚은 뒤 분말로 가공한 이 제품은 추가 공정 없이 물만 부으면 라거 맥주로 바뀐다고 한다. 이 회사가 분말 맥주를 개발한 이유는 맥주의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서다. 맥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물을 빼면 운송에 드는 비용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읍내를 모두 뒤져 미지근한 맥주를 몇 병 밖에 구하지 못한 강진 옴천면장이나 화성에서 맥주를 제조하겠다는 맥주 회사에게 분말 맥주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혁신의 시대, 익숙한 관행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마저 바꾸겠다는 맥주의 도전이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