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돈 봉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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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돈 봉투 사랑’
  • 입력 : 2023. 04.18(화) 18:04
이용환 전남일보 논설위원
‘봉투를 좋아하는 불량 선생, 김봉두’. 지난 2003년 개봉된 영화 ‘선생 김봉두’의 메인 카피다. 지각을 밥 먹듯 하고, 교장에게 매일 혼나는 문제 선생 김봉두. 술을 좋아하고, 공공연히 학부모에게 ‘돈 봉투’를 강요하는 그는 이름조차 ‘봉두’다. 이름이 상징하듯 학교에서 학생을 대하는 기준도 ‘어쩔 수 없이 받는다는 돈 봉투’ 였다. 돈 봉투 사건으로 오지 시골 분교에 발령 난 뒤에도 그는 ‘봉투’만을 좇는다. “학교에서 돈 봉투만큼 큰 위력을 가진 것은 없다.”는 게 김봉두 선생의 철학이다.

1988년 4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박철언 당시 청와대 정책보좌관을 불렀다. 김 회장은 박철언을 만나자마자 ‘사무실 회식비로 쓰라’며 돈 봉투를 찔러 줬다. 돈 봉투에는 보좌관실 직원 50명이 회식을 수백 번 하고도 남을 큰돈이 들어 있었다. 앞서 1983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집사람 갖다 줘라’며 박철언에게 5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줬다. 당시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20만 원 약간 넘을 때였다. 선생 김봉두의 돈 봉투와는 차원이 다른 돈 봉투다. 박 전 보좌관이 직접 쓴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나오는 내용이다.

학교도 그랬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돈 봉투’는 관행이었다. 소수에게 집중된 정당의 권력구조는 돈 봉투로 후보를 결정하게 만들었고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유권자에게 돈 봉투를 돌렸다. 중앙정치는 물론이고 시장과 도지사, 기초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선거까지 돈 봉투에 엮여 감옥에 간 사람도 부지기수다. 50억을 쓰면 당선되고 30억을 쓰면 낙선한다는 ‘5당(當) 3락(落), 7억을 내면 공천, 6억을 내면 낙천이라는 ‘7당 6락’이라는 말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돈 봉투 사건으로 곤혹을 겪고 있다. 검찰은 2021년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당시 송영길 후보 캠프가 국회의원 등에게 9400만 원을 뿌린 정황을 포착했다. 결정적 증거에는 돈을 만든 사람과 전달한 사람, 받은 사람까지 등장한다고 한다. ‘우리도 주세요’, ‘돈이 최고’ 등의 이야기도 부끄럽다. 아직 수사와 법원의 판결이 남아있지만 법을 무시하고 돈 봉투 몇 개로 선거의 공정성을 해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구태다. ‘봉투 좋아하는 불량 선생, 김봉두’가 웃고 갈 몇 몇 불량정치인의 ‘돈 봉투 사랑’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좀 먹고 있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