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기획시리즈> “80년 5월의 학생들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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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기획시리즈> “80년 5월의 학생들을 기억하라”
●5·18 43주년-학교 내 기념공간 조성하자
<1> 프롤로그
43년간 어디 출신인지 파악 안돼
희생자 모교조차 출신인지 몰라
대학교 역시 피해 명단 조사 시급
“조사 후 선배 추모공간 마련 필요”
  • 입력 : 2023. 05.09(화) 18:32
  •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앞두고 추모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9일 광주지역 초등학생과 시민들이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의 넋을 기리고 있다. 나건호 기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43년이 흘렀다. 현재 광주지역 내 일부 학교에는 5·18 당시 희생당한 선배들을 기리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일상적 계기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모교 출신 희생자가 있는지조차 파악 못 한 학교도 상당하다. 학생기록부 등 입학 증명 자료가 없어 명예졸업장 수여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있다. 이에 전남일보는 5·18 당시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당했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들을 조명하고, 그들의 정신을 미래세대가 계승할 수 있도록 교내 기념시설 정비 캠페인을 진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1980년 5·18 항쟁 기간(5월18일~27일) 동안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수많은 청소년들이 국가폭력에 맞서 직접 총을 들거나 헌혈에 나서는 등 여러 방식으로 항쟁에 참여했다. 당시 수많은 지역민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참혹하게 쓰러졌지만, 그중에서도 청소년들의 피해는 특히 컸다.

지난 2월 5·18민중항쟁고등학생동지회가 펴낸 증언록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에 따르면, 5·18 관련(사망·부상·구속) 학생들(광주와 전남, 부산, 서울도 있음)은 △고등학교 244명(사망 24명) △중학교 37명(사망 7명) △초등학교 12명(사망 2명) 등 293명이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노동자나 학교밖청소년 등으로까지 확대한다면, 10대 피해자의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21년 광주시교육청과 5·18기념재단이 발간한 ‘5·18인정교과서’의 집필진으로 참여한 강남진 신용중 교사(전남대 사회교육학과 박사과정)는 ‘5·18민주화운동에서 청소년의 참여’ 논문을 통해 청소년 열사들을 집중 조명했다. 해당 논문은 학술자료로는 거의 유일하게 5·18 당시 청소년 열사를 독자적으로 다뤘다.

논문에 따르면, 10대 후반 청소년이 다른 연령대에 보다 사망·행방불명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5월27일 최후의 항쟁에서 전체 사망자의 39.3%에 해당하는 11명의 청소년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시민군으로 참여해 도청과 YWCA 등에서 사망한 10대는 8명이다.

강 교사는 “5·18 당시 (타 연령대에 비해) 청소년의 사망·행불자 비율이 높고 시위와 무관하게 사망한 사례도 많았다”며 “무차별적인 국가폭력이 자행된 속에서 청소년들의 시위에 대한 경험 부족, 계엄군의 작전에 대한 정보의 부재 등이 청소년들의 피해를 키운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피해와 관련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 보니, 모교 출신 희생자를 기리는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다.

또 행방불명자 이창현군과 같이 학생기록부가 존재하지 않아(누락 등)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유족 증언 등을 통해 이군이 양동초에 2개월여 다녔다는 사실이 증명됐음에도, 본보 취재 결과 현 양동초에는 이군의 학생기록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몇 년 전 행불자유가족회에서 추진한 명예졸업장 수여가 무산되기도 했다.

대학과 전남지역으로 범위를 넓히면, 모교 출신 희생자 발굴 작업의 필요성이 더 커진다. 80년 5월 당시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이 항쟁의 주축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여타 대학의 학생들 역시 직간접적으로 항쟁에 동참했다. 하지만 5·18과 관련된 대부분의 연구나 기록은 전남대와 조선대 위주일 뿐, 다른 대학교 출신 희생자 명단이 따로 정리된 자료는 없다.

전남에서도 많은 청소년 희생자가 나왔지만, 이들에 대한 자료나 연구는 거의 없다.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 진상규명을 위한 증언자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고, 희생자들의 이름은 출신 학교에서조차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5·18민주화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제대로 된 평가,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건 관련 자료나 통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전수조사로 정확한 피해자 명단과 출신 학교를 파악하고, 학술 연구 및 기념 공간 조성 작업을 추진해 나가야 하는 이유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5·18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폭력에 의해 시민들이 희생되는 비극적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함”이라며 “최소한 희생자 모교에는 작은 기념비 등을 세워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선배를 기리고, 오월 정신을 배울 수 있게끔 해야 한다. 현재 일부 학교에서 동창회 등을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기념비를 세우거나 기념식수를 진행해 모교 출신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선배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 상시적 계기교육 효과도 크다. 교내 기념공간은 학생들에게 ‘큰바위얼굴’인 셈”이라고 말했다.

노 원장은 이어 “먼저 5·18에 참여한 모든 학교와 학생 및 기념공간 관리 현황 등을 전수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토대로 학술 세미나 등 5·18 청소년 연구가 이뤄지면, 기념시설을 정비·확충해 의미 있는 기념행사를 이어 나가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광주지역 3·1운동부터 4·19, 6월항쟁 등 모든 민주화운동으로 그 작업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