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신이 내린 목소리… 예술을 향한 무한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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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신이 내린 목소리… 예술을 향한 무한한 욕망
<오페라계의 전설 ‘파리넬리’>
18세기 이전 거세 성악가 전성기 누려
빼어난 미모에 고음역 자유자재 구사
교황 비오 10세때 금지 ‘역사 속으로’
영화·뮤지컬·연극 통해 후세에 이어져
  • 입력 : 2023. 05.18(목) 09:21
영화 ‘파리넬리’ 스틸 컷
오페라는 간혹 순수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범접하기 어려운 공연예술로 취급 받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오페라를 어렵게 취급되는 예술이 아니라, 우리가 팝콘을 먹으며 쉽게 접하는 영화와 같은 한 장르라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에게 친숙한 장르인 뮤지컬과 사촌이며, 영화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담배 한 갑 가격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을만큼 가장 사랑을 받아왔고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공연예술 장르였기 때문이다.

1597년 야코포 페리(Jacopo Peri)의 ‘다프네’는 악보를 볼 수는 없지만,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오페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3년 후 지금도 연주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인 페리의 ‘에우리디체-1600’가 당시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고 유럽 예술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딸 마리아와 프랑스 앙리 4세의 결혼식 축하연을 위해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오페라는 종합예술로, 작곡가와 성악가뿐만 아니라, 대본, 무용, 무대미술, 분장, 의상 등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 공연예술이었으며, 작은 경제 규모의 도시 국가에서 오페라를 제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볼거리, 들을거리가 전무했던 시대에 파격적인 오페라는 대중을 사로잡았고, 그 엄청난 인기를 지켜봤던 머리 회전이 뛰어난 이들에 의해 극장 건립과 오페라 제작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왕이 지은 오페라 극장뿐만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지 계급들에 의해 앞다퉈 극장이 만들어지고, 많은 극장은 다양한 작품들을 수용했으며, 이는 경쟁을 통한 시장의 확대가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영화 ‘파리넬리’ 스틸 컷
당시 사회는 오페라 중독으로 인한 폐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페라 티켓을 구매하는데 과다한 지출이 큰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으며, 교회에서는 헌금이 걷히지 못할 정도로 문제가 돼 상업적인 목적의 오페라 공연을 금지한다는 교황 이노센트 11세의 칙령이 내리지기도 했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오페라 시장과 시민들의 애착을 막을 수 없었으며, TV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까지 세계 공연예술계를 지배해왔다.

대중음악에서 레전드 가수하면 ‘비틀즈’를 꼽는다. 이전 오페라에서 레전드 가수로는 카스트라토인 파리넬리(카를로 브로스키-Carlo Maria Michelangelo Nicola Broschi,1676~1717)를 말한다. 카스트라토(Castrato) 성악가는 거세된 성악가라는 뜻이다. 변성기가 시작되기 전에 거세해 소년 시절에 지니는 고음역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가수들을 가리키는데, 18세기 이전까지는 이런 성악가가 많았다. 교황청 안의 도시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이 노래를 부르지 못했기에, 카스트라토가 여성의 역할을 대신했다. 카스트라토는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성공하지 않더라도 당시 가족 중 교회에서 성가대로 일할 수 있는 카스트라토가 가족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903년 교황 비오 10세가 마침내 로마 교황청 내에서 인위적으로 카스트라토를 만드는 행위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면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영화 ‘파리넬리’ 스틸 컷
파리넬리는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오직 음악적인 이유로 아버지에 의해 거세를 당하고 카스트라토가 됐다. 파리넬리는 미소년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성인의 힘을 보유해 엄청난 성량과 성역을 연주했으며, 이는 오페라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었다. 거기에다가 그는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가 여장을 하면 미녀 대회에 나가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소유했다고 전해진다. 성악의 나라,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파리넬리는 유럽과 런던에 진출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다. 그는 오페라와 콘서트에서 수려하고 힘이 있는 목소리와 풍부한 기교, 유연한 장식음 등을 소화해 냈으며, 그의 긴 호흡의 발성과 지속음 연주를 듣고 공연 도중 기절하는 관객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서는 무대는 항상 매진이었으며, 이 때문에 유럽 각처의 극장은 흥행 보증수표인 그를 섭외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고 한다. 만인의 스타가 된 파리넬리는 평민부터 귀족, 왕까지 그들의 우상이 됐다. 작금의 시대 한국의 아이돌 그룹 BTS처럼, 그를 보고 그의 노래를 듣는 그 자체가 버킷리스트였다.

파리넬리는 그의 마지막 22년의 연주 생활을 스페인에서 마무리하게 됐다. 1737년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부인 엘리자베타에 의해 초청을 받고 공연을 했으며, 그곳에서 필리페 5세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10년간 4곡을 반복해서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후로도 흥행사로 정치 권력을 등에 업고 스페인에서 꾸준한 활동을 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쌓아놓은 풍족한 재물을 가지고 고향 이탈리아에서 평안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파리넬리’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당시 미디어가 없는 세상에서 인류의 우상이였던 파리넬리는 오페라를 더욱 고도화시키는 역군의 역할을 했다. 모차르트와 글룩을 비롯한 수많은 음악가와 명사들이 그를 찾아왔고, 그의 목소리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파리넬리는 아름다운 소리로 신과 소통하는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줬을 뿐만 아니라,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등 최고의 가수로서 무대의 감동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나눔의 삶으로도 우리에게 감동을 줬다.

근래 가끔 바로크나 고전 오페라에 나오는 카스트라토의 역을 지금은 카운터테너나 메조소프라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직 음악만을 위해 양성된 인위적 성악가 카스트라토는 반인륜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인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인간의 아름다운 소리를 향한 욕망을 채우고자, 그의 목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 그리고 기계음으로 합성해 만든 파리넬리를 부활시켰다. 파리넬리는 스크린과 뮤지컬, 연극무대 안에서 융복합 예술의 소재가 돼 바로크의 명곡 오페라 아리아들을 선보이며, 인간의 예술을 향한 무한한 욕망을 매혹적인 목소리로 표출하고 있다. 특히 영화로 제작된 파리넬리를 통해 우리는 반세기 전의 그를 상상으로 복원해서 오페라의 멋을 무한히 느끼고 있다.

여장한 파리넬리의 케리커쳐. 출처 위키피디아
인간의 미(美)를 향한 탐닉은 끝이 없다. 반세기를 넘어 오페라 가수들의 열정과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청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수도 광주에는 대한민국의 오페라를 선도하는 시립오페라단이 있다. 시민들은 자주, 멋진 감동의 오페라를 만나길 원한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을 통해 이 시대가 품은 희노애락을 멋진 노래의 선율로 시민들의 지친 삶을 위로하고 감동으로 승화시키길 바란다. 광주에서도 파리넬리처럼 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가수의 등장을 기대하며, 2023년에도 광주의 오페라가 이 지역 공연예술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길 소망해본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