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정부 아닌 노동자 위한 직업병 안심센터 돼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정부 아닌 노동자 위한 직업병 안심센터 돼야
강주비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3. 07.04(화) 17:31
  •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강주비 기자
지난해 야심차게 출발한 직업병안심센터가 개소 1년을 넘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센터의 역할은 모호하기만 하다. 이용자와 운영기관이 해석하는 ‘직업병’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직업병안심센터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질병조사 수요가 증가하면서 고용노동부가 관련 데이터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 지난해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전국 10개 지역에 설치돼 있으며, 광주 역시 조선대병원이 지난해 5월부터 센터를 위탁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내원환자를 중심으로 지역 내 직업병 사례를 모니터링·취합해 중앙에 보고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한다.

사례 수집에 앞서 직업병 여부 판단을 위해 환자 질병에 대한 업무 관련성 평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평가 과정에서 센터가 가진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센터가 질병의 업무기인성 판단을 위해 사업장을 대상으로 현장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자체적으로 나설 수 없으며, 지방고용노동청 또는 안전보건공단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수사지원 역시 노동청 근로감독관이나 중대재해수사심의위원회 요청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또, 센터와 별도로 업무 기인성의 최종 판정은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한다. 당연히 산업재해에 승인 절차에 관여할 수도 없다.

즉, 센터는 직업병 여부를 판단해야 하면서도 정작 그 과정에서 필요한 업무를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회사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받기도 어렵다. 실제 광주 센터서 개소 후 1년간 현장조사 등을 나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하지만 센터를 찾는 노동자들은 ‘신속한 직업병 판단’과 더 나아가 ‘산업재해 처리에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이들에게 직업병이란 곧 ‘산업재해’와도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9일 지역 노동계 및 보건 관리자를 대상으로 열린 센터 간담회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노동자들은 “직업병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산재’다”며 “센터가 산재 신청 과정에서 소견서 작성 등을 포함해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정보를 명확히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난감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센터 역시 현장 조사 등에서 애로사항을 느끼고 고용노동부 측에 ‘업무기인성 판정’만이라도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건의했지만, 고용노동부가 “센터는 ‘산업재해’가 아닌 ‘직업병’ 사례를 수집하는 곳이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이 같은 발언은 직업병을 단순히 하나의 사례나 데이터로 치부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운영주체와 이용자가 바라보는 센터의 역할이 판이한 상황에서, 센터가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이라도 이용자와 각 센터의 의견을 수렴해 앞으로의 운영 정책에 반영한다면, 직업병 안심센터가 허울뿐이 아닌 진정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기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