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 본질에 대한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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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 본질에 대한 의문
노병하 논설위원 겸 사회부장
  • 입력 : 2023. 08.10(목) 12:55
노병하 부장
“남들과 똑 같은 기사를 쓸거면 현장에 기자를 왜 보내나. 힘들게시리. 그냥 자료 받아 쓰면 되지.”

사회부장으로서 필자가 부원들에게 현장 취재를 지시할 때 항상 하는 말이다. 똑같은 현장이라 하더라도 기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자를 설명할 때 글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하기 위해선 꽤나 힘든 절차가 필요하다. 정확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제대로 듣고, 제대로 봐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바로 ‘본질’에 대한 의문이다. 어떤 현상에는 항상 본질이 있다. 쉽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숨겨진 경우도 허다하다. 본질을 찾아내는 것, 그게 기자가 할 일이며 그 중에서도 사회부 기자들은 본질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부서다.

특히나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어떤 상황이라면 기자는 올바른 시각과 철학, 취재에 대한 열의와 더불어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자문자답해야 한다. 그것은 구독료를 내는 독자에 대한 예의이며, 직업의 자부심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HDC현대산업개발이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공사현장에서 입주예정자와 만나 현존 건축물 8개동 상가층(지상 1~3층)을 포함한 지상층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12일 해체계획을 공식 발표한 뒤 20여일만의 계획 수정 발표였다. 지난달 현산 관계자는 “상가층과 주거층은 구조가 다를뿐더러 상가층을 포함한 건물에 명확한 결함이 있다기 보다는 주거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주거층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건물의 지상 1~3층을 남겨두고 주거층만 해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지난해 5월 4일 ‘전면철거 및 재시공’ 발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해당 부분을 유일하게 집중보도한 것은 전남일보였다. 취재기자가 현산의 발표 중 ‘존치물’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을 품으면서 시작된 기사였다.

당시 취재 기자는 보고 중 “존치물이 있다는 것은 완전 철거가 아니라는 것 아닐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했고, 그 의문의 답을 추적하니 해당 기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보도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입주자들은 크게 반발했고 전문가들도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현산은 재계획 수립에 들어갔고 20여일만에 새로운 계획을 내 놓았다. ‘상가·주거층 현존 구조물 전면 철거안’이었다.

기자는 “왜?”라는 의문을 달고 사는 직업이다. 나아가 말을 하기 보다 들어야 하고, 들으면서도 계속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이 품위있게 이뤄질수록 신문사의 명예와 신문을 구독하는 독자의 가치도 올라간다. 현산 철거 보도로 전남일보 구독자들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올랐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덧붙여 2023년 제13회 5·18언론상에서 전남일보 사회부가 취재보도부문에서 사진부가 사진부문에서 각각 수상해 2관왕을 차지했다는 소식도 슬며시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