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신순범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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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신순범의 귀향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08.24(목) 16:37
이용환 논설실장
“한글을 영어와 함께 ‘세계공용어’로 채택해 달라.” 지난 2013년 여수 출신 신순범 전 국회의원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인류 문화의 발전과 행복 증진을 위해 한글을 세계 공용어로 만드는데 앞장서 달라는 내용이었다. 반기문 당시 유엔사무총장과 찰스 랭글 미국 연방하원의원에게도 같은 서신을 보냈다. 한글은 그 효용성이 뛰어나 세계공용어로 제정하면 문맹퇴치 등 인류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비록 채택은 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신순범은 ‘잊혀졌던 정치인’에서 영원한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1933년 여천의 작은 해변에서 태어난 신순범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징글 징글 하다’고 말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3년간 작은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신문배달부터 외판원까지 온갖 힘든 일을 도맡아 했다. 9대와 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느라 가산을 탕진했던 그는 4평짜리 가게를 얻어 200원짜리 라면장사까지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꿈과 용기를 안겨준 동력이었다.”는 게 신순범의 회고다.

신순범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라면장사를 하다 광주의 소식을 들은 그는 밤을 세워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벽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새벽 시간 서대문과 독립문, 아현동 일대 전신주에 부착했다. 1985년 김대중 선생이 미국망명에서 돌아와 찾은 망월동 5·18묘지에서는 “선생님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요”라는 10m가 넘는 현수막을 들기도 했다.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 시절, 국회 본회의에서 5·18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최초의 발언도 했다.

올해 나이 90. 구순의 신순범이 여수로 귀향했다고 한다. 여수에서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신순범은 아들의 결혼식 축의금을 모두 털어 만광장학회를 만들었다.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도 아코디언을 메고 공연을 하며 학생들의 장학금을 모금했다. 그의 인생관도 ‘꿈·깡·꾀·끼·끈’으로 압축된다. 초선 국회의원의 잇따른 일탈부터 거물 정치인들의 ‘돈 파티’가 일상화 된 현실에서 그의 귀향은 어떤 의미일까. ‘영원한 정치인’신순범의 귀향과 백수(白壽·99세)를 향한 그의 여정을 응원한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