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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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3. 09.03(일) 18:54
최도철 국장
“가라 그리움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 가서 산기슭이나 언덕에 앉아보라/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흙냄새 나는/ 조국 땅, 산들바람 부는 곳에/ 요단강 둑에도 가보고/ 버려진 시온 탑에도 가보라/ 내 조국, 참 아름다우나 잃어버린!/ 추억이여, 참 아름다우나 비참한!” -오페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한 대목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이다.
성경(聖經) 시편 137편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이 오페라의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 6세기이다. 통일 왕국 이스라엘은 3대 왕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절까지 큰 영화와 번영을 누렸지만, 이후 나라가 분열되면서 바벨론 네부카드 네자르(이탈리어식 발음 ‘나부코 도노소르’) 2세의 공격으로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유대인이 바벨론으로 잡혀가 70년 여 동안 노예로 살아야 했고, 그 고단한 삶에 지친 포로들은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고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디아스포라의 노래이다. 디아스포라는 자의건 타의건 살던 땅을 떠나 타향을 떠도는 집단을 의미한다. 2000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유랑하며 살았던 유대인들이 대표적인 디아스포라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디아스포라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한반도에서 만주로, 연해주로, 다시 중앙아시아로 전전한 고려인들이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을 주도하면서 항일투쟁 초기 일본군에 큰 타격을 가했던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 장군도 전형적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다. 젊은 시절 광산과 공장에서 노동을 하던 장군은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하자 함경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동했다. 이후 일본이 한반도를 집어삼키자 만주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무장 투쟁의 선봉에 섰다.
홍 장군은 역사에 길이 남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을 이끈 후 소련의 연해주에 정착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일본의 간첩활동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연해주 한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1937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이어진 ‘극동 조선인 강제이주정책’이다.
짐짝처럼 기차에 실린 고려인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낯선 땅에 내팽개쳐 졌다. 위대한 생애를 살아온 홍범도 장군도 이렇게 해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행렬에 섞여 떠나왔고,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 경비원, 크질오르다 정미소 노동자 신세로 쓸쓸하고 고단하게 살다가 삶을 마쳤다.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난 장군은 1943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75세로 눈을 감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이국땅에 묻혔던 그의 유해는 지난 2021년 78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그의 유해를 송환하면서 ‘장군의 귀환’이라는 이름을 붙여 단출한 의식을 거행했다. 다큐로 만들어져 방영된 귀환 과정은 국민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감개가 끓어 오르게 했다.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두고 온 나라가 소란하다. 독립전쟁 영웅에게 공산주의 망령을 씌워 역사에서 지워내려 하는 무도한 광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역만리 강제이주 당한 홍범도 장군을 또 다시 강제이전하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